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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삶은 예술은 바나나

토마스 바움가르텔, 바나나스프레이어, 쿤스트팔라스트 미술관, 뒤셀도르프


토마스 바움가르텔은 1986년부터 미술관 외벽에 스프레이로 바나나 그라피티를 남겨왔다. 한 예술가의 이 ‘비공식적인 인증’ 행위는 ‘가볼 만한’ 예술공간의 표식으로 인정받으며 퍼져 나갔다. ‘바나나’의 ‘보증력’은 세월이 흐르며 퇴색된 감이 있지만, 덕분에 ‘예술 인증’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의문은 커진다.


1967년 앤디 워홀은 적당히 잘 익은 ‘바나나’ 그림을 넣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재킷을 디자인하고는 ‘천천히 벗겨보시오’라고 적어넣었다. 바나나 그림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핑크빛 바나나 알맹이가 등장했고 그의 작업은 ‘외설’ 이슈를 낳았다.


바나나 가격 폭락의 이유를 알기 위해 그 생산·유통 과정을 추적하던 함경아는, 필리핀에서 바나나 대량재배로 땅이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2006년 발표한 작품 ‘허니바나나’를 통해 ‘거대 자본의 힘에 냉소’를 보냈다.


최근,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아트페어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생바나나를 테이프로 벽면에 부착한 작품 ‘코미디언’을 출품했다. ‘바나나’는 ‘세계무역’을 상징했다. 1년 이상 벽에 바나나를 붙여둔 채, 적합한 재료를 고민한 끝에 결국 그는 ‘있는 그대로의 바나나 그 자체’를 선택했다. 그리고, 12만달러에 판매된 이 작품을 데이비드 다투나가 떼어 먹었다. 카텔란의 갤러리 대표는 다투나의 행위에 대해, “더 중요한 건 이런 유의 도발은 새로울 게 없다는 거다. 그것이 무엇이든,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바나나는 또 다른 의미로 빠르게 접속했다. 테이프로 벽에 ‘무엇인가’를 붙이는 행위를 따라하며 제품을 홍보하고, 캠페인을 펼치는 개인과 기관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마이애미의 건물관리노동자연대는 보라색 셔츠 위로 바나나를 붙인 채 거리 시위를 벌이면서 ‘바나나 예술’보다 낮은 그들의 임금과 업무환경을 토로한다. “우리의 노동가치는 왜 인정하지 않는가.” 


‘바나나’에는 이렇게 의미와 명분이 쌓여가고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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