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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설근체조

이윤정, 설근체조, 2019. ⓒ 박해욱


혀의 움직임은 당신의 표정을 바꾸고, 턱선을 바꾸고, 얼굴형을 바꾼다. 몸짓을, 말투를, 음색을, 발음을, 어쩌면 마음의 위치를 바꾼다. 유연한 세치 혀라면, 당신 아닌 타인의 마음마저 능숙하게 움직인다. 혀가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면, 운동성을 과시하면서 어설프게 움직인다면, 그 혀는 당신의 치열을 밀어내고, 구강구조를 망가뜨리고, 숨쉬기마저 방해할 것이다. 그런 혀일지라도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을 보겠고, 말을 쏟아 내겠고, 타인의 마음을 유린할 테지만, 그런 혀는 마침내 당신의 턱관절을 비틀고, 얼굴의 윤곽을, 몸통을 뒤틀고 말 것이다.


어느 날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이윤정은 혀뿌리를 움직여보던 중, 혀근육이 턱근육, 심장근육, 전신으로 뻗어 있는 온갖 근육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혀뿌리를 움직이자 내장기관도 미세하게 움직였다. 혀의 근육을 의식한 뒤로 그에게는 온몸의 근육운동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움직임이 이끌어내는 표현의 세계, 그 당위성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혀는 늘, 원래 하던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혀의 운동은 과거와 달라져 버렸다. 제12뇌신경이 촘촘하게 감싸고 있는 혀근육으로는 미처 춤추지 않았던 무용수가 이제, 혀뿌리로부터 춤을 추기로 한다.


‘설근체조’라 명명한 퍼포먼스의 시간, 무용수의 입안에서 왼쪽 오른쪽 위아래, 다시 치열을 고르며 워밍업을 시작한 혀뿌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발음하며 낯선 움직임을 훈련한다. 혀의 운동은 이제 목으로, 어깨로, 손으로, 몸통으로, 다리로 이어져 온몸의 근육으로 퍼진다. 내장기관이 꿈틀댄다. 매끈한 얼굴 아래, 목구멍 뒤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이던 혀의 존재를 의식하니, 댄서의 움직임이 다르다. 목구멍 너머의 세계를 온전히 고려하면서 바라보는 시간이 만드는 긴장감에 혀뿌리의 침은 마를 새가 없다. 척추동물의 입속에서 꿈틀대는 30㎝짜리 근육다발이 끌고가는 춤 앞에서, 이유가 있는 움직임이 비로소 아름답다는 것을 알겠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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