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가 실재보다도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세계로 디즈니랜드를 꼽은 지 오래다. 이미지의 시대에, 이 가상의 공원으로 들어가면 동화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직원들은 모두가 친절하고 어느 구석진 곳을 돌더라도 마치 나의 출현을 기다렸다는 듯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만화 영화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곳은 깨어나기 싫은 꿈속 공간이다. 보드리야르는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이런 허구의 소비 사회인데도, 디즈니랜드로 인해 오히려 나머지 세상은 사실적이라고 믿게 된다고 꼬집는다.
고천봉, Once upon a time in Disney, 2016
이 가상 세계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중국 상하이에 상륙한 지 반년이 지났다. 700명의 디자이너가 설계하고 6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했다는 자랑에 힘입어 이미 560만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3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셈이다. 미국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던 중국마저도 자본을 따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오락국가로의 전철을 밟아가는 것일까.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난 고천봉은 상하이의 디즈니랜드에서 미국 경제가 호황이던 1900년대 초중반의 향수를 읽는다. 판타지에 매료된 들뜸의 공간. 그것은 과거 미국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경제 발전이 어느 지점쯤 이르렀을 때 자본이 만들어내는 소비의 유형이다.
사진 속, 유니폼을 입고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직원들 옆으로는 비눗방울이 짧은 환상의 순간을 장식한다. 혹여 저 쓰레기통이 호박마차로 변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가상의 세계를 움직이는 건 실제의 노동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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