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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아트스쿨 프로젝트

박희자는 교환 학생으로 체코의 예술학교에 머물렀다. 또 다른 경험을 택해 떠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생기 넘치는 표면적인 관계를 거둬내고 나면 두렵고 무기력한 자신이 있다. 낯선 환경, 처음 접하는 수업은 그것들에 익숙해 보이는 학생들과 스스로를 더욱 구분 짓게 만든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것들은 도대체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예술이란 도대체 무얼까.

 

작업에 대한 부담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일상에서 예술을 둘러싼 현란한 수사나 비장한 결심은 덧없을 뿐이다. 그래서 박희자는 예술 자체가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실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박희자, 아트스쿨 프로젝트, 2015

 

미대의 작업실. 학교라는 공적 공간 안에 놓인 창작자들의 사적 공간의 경계는 예술만큼이나 모호하고, 쉽게 교란된다. 누군가의 전시작 혹은 습작이었을 토르소의 무릎은 깨지고 좌대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목재 소품이 막아선 지 꽤 된 것으로 보아 사실상의 방치를 짐작하게 한다. 장식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쓸모없다 말할 수도 없는 이 토르소 곁에서 머물던 어떤 이가 무심코 놓고 간 빈 병 하나. 우연히 생겨난 야릇한 포즈와 함께 빨간색 뚜껑의 산뜻함은 존재감을 상실하던 조각상에마저 다시금 시선을 머물게 한다.

 

심혈을 기울였으나 무심하게 잊혀지던 작품과 무심하게 흔적을 남겼으나 의외로 시선을 끄는 사소한 사물의 엇박자와 긴장감이야말로 정직하고 소박하게 창조적 영감을 부추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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