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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쿠델카의 집시

1968년 소련이 탱크를 몰고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진입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꿈꾸며 개혁을 펼치던 체코 지도자 둡체크의 노력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탱크에 맞서 싸웠지만, 그들 손에 들린 화염병과 돌멩이로는 역부족이었다. 당시의 절망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담은 이는 요세프 쿠델카였다. 그 스스로가 ‘비극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라고 말했듯,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사진가의 사진은 위태로운 상황을 몹시도 시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가족을 향한 보복이 두려워 서방 세계에 그 사진들을 공개할 때, 체코 사진가라는 의미의 이니셜 CP를 써야 했을 만큼.

 

Slovakia, 1967 ⓒJosef Koudelka/Magnum Photos

 

그해는 마침 그가 자신의 첫 대표작 ‘집시’를 전시로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를 선언한 때였다. 비행기를 좋아하던 엔지니어는 공대 재학 시절부터 체코와 루마니아, 프랑스 등지의 집시를 찍으러 다녔다. 배낭을 메고 떠돌며 잠은 노숙으로 해결했다. 프라하의 봄 이후, 그 자신 또한 망명길에 올라 집시처럼 떠돌며 살았다. 프랑스 국적을 얻은 건 오래전이지만 여전히 습관처럼 석 달 이상을 같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한미사진미술관에서의 ‘집시’ 전시를 위해 서울에도 들렀다. 까다로운 성미로 유명한 그가 국내에서 선보이는 첫 개인전이자 그의 첫 작업. 화각이 넓게 나오는 25밀리 렌즈를 사용하고, 강한 명암 대비를 둔 그의 집시 사진은 프라하 침공 사진보다 구도가 불안정하고 질감도 거칠지만, 그 특유의 끈적거림이 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가 집시의 삶의 조건 때문인지 아니면 20대의 쿠델카가 품은 첫 작업의 뜨거운 순도 때문인지 분리하기 어렵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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