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위에 불빛과 불빛이 서로 스치며 겹쳐진다. 오늘의 풍경 위에 어제의 풍경이 투사된다. 도로 위에서 서로 포개진 어둠과 불빛 그리고 풍경은 유령 이미지처럼 차원이 다른 시공간을 부유하면서 반짝거린다. 모든 존재들이 사라지기 직전에 발산하는 투명한 빛처럼.
조준용, 1996 동대문운동장 Ⅱ, 2016 갤러리룩스 제공
조준용의 사진연작 ‘4.9mb Seoulscape’은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에 아득한 기분을 불어넣는다. 그 아득함은 투명한 불빛과 반투명한 이미지들이 중첩된 시각성에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대문운동장의 희미한 그림자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등 서울의 9개 순환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도로 한가운데에 사라진 서울의 풍경들을 빔프로젝터로 투사한 뒤 촬영했다. 어두운 허공에 쏘아올린 이미지는 199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경관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서울연구데이터 서비스’에서 찾았다. 이 사이트에 저장된 2만5000장의 사진은 모두 4.9mb 크기 이내로만 전송할 수 있다. 빨리 보내고 빨리 받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4.9mb의 사진 용량에 삼풍백화점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많은 추억을 충분히 저장(기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무엇인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속도보다 우리의 기억과 망각이 더 빠른 것은 아닐까. 압축성장의 눈부신 속도에 동기화된 우리의 기억은 불과 몇 년 전의 사진 앞에서 언제나 아득한 기분에 빠져들고 만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