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캔버스에 오일, 180×180㎝, 1907~1908년(출처 :경향DB)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복제품이 만들어진 그림 중 하나는 클림트의 ‘키스’다. 그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화가의 그림인 것이다. 그러나 이 ‘키스’가 지닌 의미를 은밀히 감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명성이란 항상 오해의 총합에 지나지 않으니까.
‘키스’는 클림트의 나이 45세, 그의 완숙기에 만들어진 주옥같은 작품이다. 형식을 보면 황금색 색채와 아르누보 문양으로 되어 있다. 빈분리파(Wien Secession·‘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됐음을 의미)의 우두머리인 클림트가 인상주의와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려준다. 인상주의로부터는 빛의 사용법을, 아르누보로부터는 자연의 형태에서 따온 곡선과 패턴을 차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찬란한 황금색이 시선을 압도한다. 금은 태양이 쪼개져 땅 깊숙이 박힌 것이라고 한다. 서양인의 금에 대한 숭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사실 황금색은 서양인에게 서양정신의 진수인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론적인 것의 상징인 동시에 기독교 미술의 요체인 비잔틴 성상화의 색채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일본 그림에서 보이는 황금색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좀 더 손과 손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감정의 표출에 주목해보자. 이미 여자는 전율의 상태다. 얼굴은 미열로 달아오르고, 오른손은 마비상태를 예비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이미 구분되지 않을 만큼 서로 스며들고 녹아 있다. 두 사람 뒤의 후광은 무엇인가? 발기된 남근 모양이 아닌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화해는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이라는 의미인 걸까. 클림트의 그림이 에로틱한 반면 성스럽다는 느낌도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시 배경을 보라. 온통 카오스, 즉 혼돈이다. 사랑은 혼돈인 것이다. 이성과 질서는 사랑을 방해한다. 또한 꽃이라는 생명과 우주라는 혼돈에 둘러싸인 연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 바로 벼랑 끝이다. 모든 사랑은 언제나 벼랑 끝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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