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이 있는 구성 II, 1930년(출처 :경향DB)
몬드리안은 자연을 혐오했다. 칸딘스키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고 창을 등지고 앉을 정도였다. 그는 자연의 외형을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것이 너무 변덕스럽고 무질서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몬드리안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초토화되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었으니, 자연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상향에 관한 생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종교적 환상에 빠져 있던 아버지와 자주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서른 살쯤 파리에 정착하게 된 그는 신지학(Theosophy·보통의 신앙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에 관한 지식을 신비한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로 알아가고자 하는 종교철학)이라는 학문에 매료된다. 신지학은 그가 몸담은 데 스틸(de stijl·‘스타일’이라는 뜻) 운동의 모태가 된다.
몬드리안과 동료들이 만든 잡지 명칭에서 유래한 ‘데 스틸’은 신조형주의 미술운동이었다. 개인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디자인적 감각을 중요시했던 신조형주의 작가들은 그림을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다양한 색채의 사용보다는 구성을 중시했다. 이런 경향은 간척사업을 통해 바다로부터 국토의 5분의 2를 직선의 토지로 얻어낸 네덜란드인의 집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고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직선이 인간의 의지이며, 직선이야말로 신 혹은 유토피아를 향한 지향성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몬드리안은 자연과 문명, 여성성과 남성성,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수평과 수직 등 대립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이론에 입각해 수직선(생기 혹은 남성성)과 수평선(평온 혹은 여성성)이 적절한 각도에서 교차하는 그림을 그렸다. 몬드리안은 이런 극단적인 것의 조합을 통해 ‘역동적 평온’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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