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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눈먼 소녀의 센스


눈먼 소녀, 1856년, 캔버스에 유채, 82.5×62㎝, 영국 버밍엄미술관(출처: 경향DB)



존 에버렛 밀레이는 영국이 자랑하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영국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든 진보적 예술가 단체로 르네상스 전성기 화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미술운동) 화가다. 이 그림은 1854년 화가가 영국의 서섹스의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근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중시 사상을 가졌던 라파엘 전파의 거장답게 이 그림은 산업혁명으로 동공화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치밀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시적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고아로 보이는 두 소녀가 가을 들판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남루한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미루어 거리의 악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듯하다. 소녀들 뒤에는 추수가 끝나지 않은 들판이 있고, 방금 소나기가 지나간 듯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건 쌍무지개가 아치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눈먼 소녀는 지금 동생이 보고 있는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볼 수 없다. 반면 소녀가 시력은 잃었지만, 청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은 더욱 섬세해졌음을 느끼게 해준다. 눈먼 소녀가 마치 들녘의 풀냄새를 한껏 흠향하고 있는 듯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있는 것, 고개를 돌려 무지개를 바라보는 동생의 탄성에 응답하듯 동생 손을 꼭 쥐고 있는 것, 풀을 쥐고 있는 다른 한손으로는 자연을 본능적으로 쓰다듬고 있는 것 등이 그렇다. 그뿐 아니다. 소녀는 들녘에서 들려오는 까마귀와 소들의 울음소리를 통해 자연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의 무릎에 놓인 콘서티나(concertina·아코디언 모양의 6각형 손풍금) 역시 그녀가 누구보다 예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특히 눈먼 소녀의 너울 왼쪽에 나비는 그녀가 영적인 인물임을 환기시켜준다. 무지개를 본 아이와 무지개를 상상하는 아이. 누가 더 창의적인 것일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