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1890~1894년,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출처 :경향DB)
세잔의 사과는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이빨이 작살날 것 같다. 그만큼 딱딱하고 견고해 보인다. 보통 세잔은 사과 하나로 미술계를 제패한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사과와의 인연은 부르봉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훗날 프랑스 유명 문학가로 성장하게 될 에밀 졸라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파리에서 온 졸라는 특유한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그때마다 세잔은 졸라를 두둔했다. 그런 어느 날, 졸라가 세잔의 집으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사과로 진짜 우정이 시작되었던 것!
그러나 세잔이 사과를 그린 것은 단순히 우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잔의 작업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물화 한 점을 그리기 위해 100번 이상 작업했고, 인물화를 그릴 때도 모델을 150번 이상 한자리에 앉혀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세잔의 모델을 서는 것을 싫어했고 심지어 두려워했다. 세잔은 모델이 움직이면 정물이 움직이는 거 봤냐며 호통을 쳤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지저분하고 흉측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세잔이 정물을 그린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정물이 인간에 비해 문제를 훨씬 덜 일으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과일은 수백번 자리에 앉혀도 군말이 없으니까. 그런 까닭에 그는 복숭아나 살구, 버찌, 멜론보다는 사과, 오렌지, 레몬을 더 선호했다. 사과와 같은 과일이 훨씬 느리게 부패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덧칠하는 동안 과일은 썩어버리기 일쑤였고, 마침내 그는 밀랍으로 만든 모형 과일로 대체하여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잔은 사과의 에로틱한 형태라든지, 아담을 유혹했던 상징적 의미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사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중요했다. 세잔은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 외양의 기저에는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구조가 있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사과와 같은 구축적인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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