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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시인과 사진가의 우정

권철, 손녀의 연을 맺은 재일교포 3세 김정미씨와 부산 국제시장에서, 2001


일본에서 소포가 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다. 겉봉을 열자 보자기가 나온다. 소탈한 무명천 보자기인데 마치 이제 막 묶어서 보낸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다. 보자기 안에는 원고지에 붓펜으로 쓴 편지 한 통과 흑백 사진들이 담겨 있다. 빼어난 필체의 편지는 곡진하고, 프린트는 한 점 한 점 정교하다. 혼자였는데도 보자기를 풀 때부터 마지막 사진을 덮을 때까지 예를 갖추듯 조심스러웠다. 보낸 이와 사진 속 주인공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았다. 12년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 권철은 일본 한센병 시인 텟짱의 사연을 이렇듯 정성스럽게 전해왔다.

텟짱의 본명은 사쿠라이 데쓰오. 열여덟 살 때인 1941년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 수용된 뒤 2011년 생을 등지고서야 고향에 묻힌 한센병 회복자. 요양원에서 강제로 이뤄진 임신중절 수술로 인해 배 속의 아이도 아내도 떠나보내고, 약물 후유증으로 시력까지 잃어버린 비운의 주인공. 그러나 오십이 넘은 나이에 깊은 삶의 성찰을 말로 토해낸 손가락 없는 시인. 그의 시가 한센병에 대한 서러운 편견을 넘어서게 한다면, 반대로 권철의 사진은 한센병을 겪은 이의 얼굴과 표정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훔쳐보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니, 텟짱의 뭉그러진 이목구비 위로는 맑은 웃음이 번져 있다. 이제껏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권철이 지난해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이라는 책을 펴낸 데 이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같은 제목의 전시를 연다.

시인은 떠났지만 이제 중년의 사내가 된 사진가가 풀어놓은 보자기 속 그는 여전히 해맑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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