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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이스탄불의 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시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이조차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기억할 만큼 그는 이제 국내에서도 두꺼운 관객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아라 귈레르 전시 또한 놓쳐서는 안된다. 비록 이름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아라 귈레르는 터키를 대표하는 국민 사진가다. 자신을 매그넘 회원으로 추천해 준 20년 터울의 카르티에 브레송과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이기도 하다.

아라 귈레르는 포토저널리스트로서 세상 여기저기를 누비며 무려 200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스탄불의 눈’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대표작은 단연코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 이스탄불의 풍경이다. 아라 귈레르는 1928년에 태어나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한 1950년 이후 습관처럼 이 도시를 기록해 왔다. 사진이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시간의 거울이라고 믿는 그의 사진 속에서 이 매력적인 도시는 서서히 변화하고 사라지고 거듭나기를 반복한다. 그 오랜 세월의 궤적 속에서도 물과 뭍 사이를 누비는 사람들의 생기, 안개 낀 도시의 멜랑콜리는 변함없이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초조하고 하릴없이 일거리를 기다리는 부둣가의 짐꾼들, 가득 채운 술잔만큼이나 한껏 취기가 오른 선술집의 술꾼, 안개 낀 밤을 점화시키는 젊은 시인의 우수에 찬 옆모습은 이스탄불의 끈적거리는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요란하고 거추장스러운 꾸밈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라 귈레르의 사진 속에서 이슬람과 기독교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고 뒤섞인 이스탄불의 과거 시간은 오늘로 거슬러 올라와 묘한 매력으로 피어난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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