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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아몬드 나뭇가지에 핀 꿈

빈센트 반 고흐, Almond Blossom,1853년, 반고흐미술관


아몬드 꽃은 매화처럼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이다. 이 작품은 1890년 반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과의 불화 끝에 귀를 자르고, 자발적으로 들어간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조카의 탄생을 기념하는 선물로 주려고 그린 것. 그것도 파란 눈을 가진, 자기와 똑같은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조카를 위해서 말이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처럼 조카가 고통을 잘 극복하고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반 고흐가 자살한 해의 마지막 봄에 그려진 그림이다. 반 고흐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몸져누워 몇 주간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은 탄생과 죽음이 공존하는 기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 같다.

삼촌도 죽고, 겨우 반년 만에 아버지도 잃은 이 꼬마 빈센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삼촌은커녕 아버지도 본 적이 없는 이 아이는 박사학위를 받은 엔지니어가 되었다. 어머니가 지켜온 삼촌의 유산을 보존해야만 했던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그 어떤 그림이나 드로잉도 팔기를 거부하는 단호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삼촌의 작품을 알리는 데 성스러울 정도로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였고, 전시를 위해 반세기 동안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그 덕분에 흩어져 있던 반 고흐의 컬렉션이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관에 안전히 보존되고 있다.

때로 이 그림은 내게 반 고흐보다 먼저 성 프란체스코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책에는 넋을 잃게 만들 정도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성 프란체스코가 “신이시여, 당신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더니, 옆에 있던 아몬드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는 얘기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활짝 핀 아몬드 꽃처럼 화사하고 싱그러운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으로 올봄은 이미 행복하다. 우리 인생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다. 꿈꾸기만 하면 인생은 늘 새로운 봄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