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라 모더존 베커, 늙은 농부, 캔버스에 오일, 1903년, 함부르크시립미술관, 독일
너무 일찍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여성화가가 있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20세기 최고의 화가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당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도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한 존재였다.
1898년 독일 브레멘 근교의 예술인 공동체 마을 보르프스베데에 정착한 모더존은 그곳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미술가들을 만나고 우정을 쌓는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그의 부인이 된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난 곳도 그곳이다. 모더존은 동료 화가였던 오토 모더존과 결혼했고, 짧은 공동작업 시간도 가지지만, 결혼과 작업에 회의를 느껴 파리로 떠난다. 표현에 있어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하고자 했던 그가 선택한 파리는 예술적 영감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목도한 고전, 고딕, 이집트 미술에 전율했다. 세잔, 반 고흐 등 인상파의 작품을 보았고, 그중에서도 나비파의 에두아르 뷔야르와 고갱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특히 고갱으로 하여금 남태평양 연안을 여행하게 만들었던 원시주의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표현주의 양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림이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보는 행위를 통해 얻어낸 정서를 그리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모더존은 늘 자연의 단순함을 표현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다. 농촌생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화폭으로 옮기던 시절 그렸던 ‘늙은 농부’는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났던 해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모델링이라는 조각적 기법처럼, 견고하며 투박하고 둥글고 소박하다. 노동을 단념한 채 피곤한 듯 앉아 있는 늙은 여성 농부는 굵은 윤곽선과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굵은 윤곽선은 인물의 자연스러운 외관으로부터 인물의 본질, 특히 여인의 눈에서 두드러지는 풍부함을 추출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기막힌 표현주의적 묘사력을 지녔던 여자가 겨우 10여점의 작품만을 남기고, 첫 아이 출산 후 심장마비로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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