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텔 브륀 1세,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목판에 유채, 61×51㎝), 16세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전도서 1장 1절).” 라틴어 ‘바니타스(vanitas·영어로는 vanity)’는 허무, 무상, 허영을 뜻한다. 바니타스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거의 모든 정물화의 기본 주제다. 그중에서도 해골이 등장하는 정물화를 특별히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부른다. 인생이 허무한 건 인간이 죽음 앞에 무력하기 때문이고, 해골만큼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티프는 없기 때문이다.
초기 바니타스 정물의 대표작인 바르텔 브륀 1세가 그린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에는 두개골이 벽감(니치)에 놓여있다. 두개골은 이미 턱뼈가 빠져 있는데, 인체가 점차 해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의 표현이다. 두개골 위로 파리 한 마리가 앉아있는데, 이는 부패와 욕망 그리고 유혹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죄에 얽매인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해골의 주인공 역시 그런 고뇌와 번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왼쪽 앞에는 촛대에 반쯤 타다만 양초가 있다. 아마 예기치 못하게 빨리 찾아온 죽음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압정으로 고정된 메모에는 고대 로마의 에피쿠로스학파 루크레티우스의 “모든 것이 죽음과 더불어 썩어지고, 죽음은 사물의 마지막 경계선이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핵심 모토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다. 화가들은 왜 ‘죽음을 기억하라’고 종용했을까? 사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 뒤에는 ‘신이 주신 삶의 순간, 지금 현재를 맘껏 살고 즐기라’는 심오한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 즉 카르페디엠(carpe diem)하라는 것! 내 솔메이트의 남편이었던, 남들의 몸은 보살폈으나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았던 아직은 너무 젊은 의사가 며칠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3년 반 동안의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천직이라 여기던 자신의 일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현존하는 삶이 더 중요했던 아름다운 이들을 애도하며….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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