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유섭 카쉬, 1965년
<걷는 남자> 알베르토 자코메티, 1960년
실연을 한 후 몽유병 환자처럼 어떤 의지도 없이 미술관에 갔다. 그때 내 심경의 이마주는 길고 가느다란 자코메티의 걷고 있는 인물상과 접촉했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절망을 안고 찾아가기엔 미술관만 한 곳이 없다. 거기엔 나보다 더 예민하고 민감하고 처절하게 삶과 사랑에 배반당한 존재들의 환대(?)가 있으니까.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기다랗고 야위고, 날카롭고 납작하고, 의식 없이 출몰하는 조각으로 파리의 미술가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이후 뉴욕에서 열린 두 차례의 전람회(1948, 1950년)와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작품론으로 미국에서 더 명성을 떨쳤다.
절친이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혹은 유섭 카쉬가 찍은 자코메티의 얼굴은 그대로 그의 작품이다. 꾸미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 조각처럼 울퉁불퉁한 양괴감이 있는 얼굴과 깊게 파인 주름, 그의 얼굴은 마치 그의 삶이 빚어놓은 살아 있는 조각 같다. 사실 자코메티는 말이나 용모 모두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과 정직성, 엄격성, 기민성, 단순성을 고루 갖춘 그는 명성과 부를 거머쥔 후에도 몽파르나스의 초라하고 허름한 작업실을 고집했다.
파리로 유학 온 자코메티는 처음에는 부르델의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조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사실적인 묘사를 중단하고 추상적이며 상징적인 오브제를 제작했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높이 평가되었지만, 1935년 이후 다시 사생에 입각한 조각에 몰두, 오랜 고독과 침묵의 탐구 끝에 길고 가느다란 인물상을 발표했다. 이 응결된 조각은 철사를 엮어 만든 것처럼 주위에 강렬한 동적 공간을 내포한 날카로운 조각이었다. 번번이 얻어맞은 삶 속에서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비워낼 것을 모두 비워낸 사랑의 끝이 자코메티의 인물상처럼 형해와 같은 것일까. 그럼에도 사랑의 에너지의 총량을 아낌없이 써야 하지 않을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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