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사진 집단 땅당스 플루(Tendance Floue)는 프랑스어로 ‘흐릿한 경향’을 뜻한다. 흐릿하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의 불확실성일 수도 있고, 그 세계를 담아낸 자신들의 사진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망설임은 세상의 이면과 사진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서 오히려 진솔하다. 그런 땅당스 플루 사진가들이 한국을 드나들며 촬영한 작업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서구 사진가들이 바라본 한국에서는 당연히 분단과 샤머니즘과 음주와 성형 등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사진가 12명은 자기만의 변주와 해석을 가미해 소재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있다.
Alain Willaume, 위/아래, 탈 혹은 지하왕국, 지하, 2015
알랭 빌롬이 한국에 왔을 때는 메르스가 빠르게 번지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는 질병과 불안으로 점철된 세계의 폭력성과 그에 대처하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목격했다. 알랭은 마스크의 우리말인 탈이 가면이자 병을 뜻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얼굴에 쓴 탈은 과연 탈이 난 사회 속에서 나를 격리시켜낼 수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안전에 대한 강박이 만들어낸 위약 효과일지도 모른다. 지하철 안 마스크를 쓴 승객은 지상의 세계를 방황하다 지하의 세계로 숨어들어간 미래 세계의 시민처럼 보인다. 그러나 탈 아래 얼굴을 감춘다고 해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듯, 지하의 세계 또한 지상의 도피처가 될 수는 없어 보인다. 한국인의 현대판 탈을 통해 알랭이 감지한 경향은 흐릿하다 못해 전 지구적 불길함이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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