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폴라이올로, 아폴론과 다프네, 1470~1480년경
아폴론이 월계수로 만든 관을 쓴 이유는 순전히 한 여자 덕분(?)이다. 첫사랑의 여자 다프네! 사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미남
아폴론은 사랑의 아픔이 많은 남신이다. 게다가 첫사랑의 실패는 순전히 올림포스 신궁의 꼬마 악동인 에로스 때문이었다. 신도
사랑에는 속수무책인 거다.
아폴론이 사랑의 신 에로스를 만나 그의 활솜씨를 조롱했다. 장난감 같은 화살로 무얼 하겠느냐며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황금 화살을 쏘아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를 사랑하게 만들고, 다프네에게는 미움의 납화살을 쏘았다. 화살에 맞는
순간, 아폴론은 하필이면 남자에겐 도통 관심이 없는 선머슴 같은 다프네에게 반하여 끈질기게 구애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다프네는 아폴론을 미워하고 피해 다녀야 할 운명이 아니던가!
그러나 스토커와는 한번쯤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게 마련이다. 아폴론의 손아귀에 막 들어오려는 순간, 다프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자 강의 신인 아버지 페네오스에게 SOS를 청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두어 달라고 말이다. 이에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월계수로 변하게 하였다. 그 후 아폴론은 다프네를 잊지 못하여 월계관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쫓
고 쫓기는 아폴론과 다프네를 주제로 한 그림은 여러 점이지만 이 그림만큼 흥미로운 작품은 드물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화가 안토니오
폴라이올로의 그림은 뛰어난 대가의 솜씨는 아니지만, 그 묘사의 어눌함과 어색함은 아주 매력적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원시적인 맛이 훨씬 더 생기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다프네 그림보다 훨씬 큰 월계수를 그려놓은 것부터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아폴론과 다프네의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을 위해 명예를 마다하는 남자 혹은 사랑만을 좇는 남자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폴론이 황금투구를 버리고 월계수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프네를 축성한 것은 분명 명예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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