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나, 초상-풍경’, 1890년
앙리 루소는 미술사상 가장 특이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세관원 출신의 그는 세관원이라는 뜻의 ‘두아니에(Le
Douani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렇지만 그의 업무는 거창한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센강을 타고 올라온 상선들에 통행료를
징수하는 단순하고 지루한 일이었다.
이처럼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리던 루소는 40세경 작업실을 마련하고 공식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49세가 되어서야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22년간 몸담았던 세관을 떠나게 된다. 이렇듯 정식으로 미술대학을 나온 적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었던 일요화가회 출신의 루소는 자신을 아주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후배였던 피카소와 자신만이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말했을 만큼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루소의 작품은 사실과 환상을 교차시킨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초기에는 미술계의 냉대를 받았지만,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와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는 영감을 주었다. 그들은 루소의 작품이 살롱전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그림에서
뿜어나오는 낯설고 싱싱한 분위기, 신비롭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좋아했다. 이런 루소의 진가는 사후에야 비로소 조명되었다.
1890
년 낙선전에 출품한 자화상 ‘나, 초상-풍경’은 루소의 자부심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센강을 배경으로 턱수염, 베레모, 팔레트와
붓 등 화가를 상징하는 소도구로 무장한 자기자신을 그렸다. 팔레트에는 사별한 두 아내 ‘클레망스와 조세핀’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후경으로는 에펠탑과 만국기와 자신이 디자인했다던 깃발을 단 화물선, 열기구를 등장시켰다. 이로써 그는 자기 특유의
박람회와 신기술에 대한 관심과 애국심까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통과해온 톨게이트의 징수원을 자세히 보았는가? 누가 아는가! 그도 차량이 드문 시간에 시를 쓰거나 드로잉을 하면서 자신이 아주 괜찮은 예술가라고 생각할지 말이다. 한번쯤 유심히 볼 일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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