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된 시선은 눈꺼풀을 반쯤 내린다. 나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들을, 그 놀란 듯한 정중함을 좋아했다. 오직 이곳만을 보고 있지 않은 눈. 예전 세계에 중독된 얼굴들. 두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동시대가 아닌 눈. 반쯤 감은 눈. 포식한 사자의 눈. M과 함께 우리는 1997년 여름 반쯤 감은 이 놀라운 눈꺼풀들을 조사하러 갔다. 그것들은 마치 보이는 것을 가리기 주저하는 동시에 드러내지도 않으려고 주저하는 베일, 인간의 두꺼운 피부에 씌워진 매끄럽고 희미한 베일들 같았다.”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의 부분이다. 자전적이면서 문헌학적인, 소설 같지 않은 이 소설을 만났던 경험은 전율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난 여름 나는 L과 함께 키냐르의 길을 따라갔다. 바로 이탈리아의 아레초로 향했던 것. 욕망은 이렇게 매개되는 법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무대이기도 했던 아레초의 산프란체스코 교회에 가면 프란체스카의 기이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아레초 근교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카는 열다섯 살에 화가로 도제생활을 했지만 재능이 뛰어난 수학자이기도 했다. 바로 이 교회 제단벽화인 ‘십자가 전설’은 그의 대표작으로,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파치 가문의 위촉을 받아 ‘황금전설’(서양미술사에서 기독교 도상학을 연구할 때 성서와 함께 가장 중요한 문헌)에 의거한 이야기를 12장면으로 나누어 그렸다.
높고 큰 벽면을 3단으로 나눈, 가로로 긴 그림에 속하는 이 벽화를 통해 프란체스카는 그 시기에 보기 드문 획기적인 양식을 선보였다. 예컨대 이 작품은 거대하고 차분한 공간, 원근법의 정확한 사용, 명석한 빛의 처리, 섬세하고 맑은 색채 배합이 돋보인다. 그중에서도 위용 있는 인체 표현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위엄과 품위를 환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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