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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장막이 걷히고 나면

경기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개 속 도시풍경. 2019. 파주. ⓒ임종진


바람 시린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1월이 아직 며칠 남아 있는데 목을 타고 스미는 기운이 한겨울처럼 제법 차다. 굳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자꾸 타고 든다. 최근 들어 가까이 여기는 지인들의 전화나 만남의 시간들이 연이어 그리고 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내용은 모두 자신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슬프거나 마음 아픈 일들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를 찾을까 싶어 두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들을 대하려 애를 쓴다.


며칠 전에도 귀히 여기는 한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주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는 후배이자 인생친구라 여기는 사이였다. 웃을 일이 없는 구닥다리 농담으로 늘 쾌활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가라앉아 있기에 금방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너머로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갑자기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궁금함이 컸지만 그의 눈물이 멈추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성급히 이유를 묻거나 섣부른 위로로 그를 보챌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연이든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 스며든 탓이기도 하지만 실제 마음의 곁을 나누며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말이라도 몇 마디 털어냄으로써 그 스스로 위안이 될 일이라면 다행이라 안도할 뿐이다.


차가운 계절이 다가와서일까. 가슴 시려 하는 이들이 주변에 자꾸 보인다. 별반 도움이 될 노릇은 없지만 그저 힘들 내시라고 어깨 한번 다독이고 싶다. 짙게 드리운 장막이 걷히고 나면 원래의 환한 세상이 한결 눈에 보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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