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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앉아 여유로이 평온에 젖어 있는 아내와 딸. 코타키나발루. 2017. ⓒ임종진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의 밀착감이 한몸으로 느껴질 만큼 보기에 좋았다. 요동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엄마가 아이와 눈빛을 맞추는 정도의 움직임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몸짓의 변화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요함에 거의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 나는 없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간간이 뒤를 돌아 내 눈빛에 섞이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두 사람은 파도 건너 저 먼바다 끝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내 나는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를 보든 무엇을 보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뿌듯한 평화가 내 감정을 일렁이게 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아늑함에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몰입의 즐거움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바다의 파열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문득문득 양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유혹도 있었다. 그 덕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하염없이 커져갔다. 정지된 화면처럼 숨죽인 고요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앉아 있을 뿐 우리 셋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곁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의 아내와 딸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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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개 속 도시풍경. 2019. 파주. ⓒ임종진


바람 시린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1월이 아직 며칠 남아 있는데 목을 타고 스미는 기운이 한겨울처럼 제법 차다. 굳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자꾸 타고 든다. 최근 들어 가까이 여기는 지인들의 전화나 만남의 시간들이 연이어 그리고 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내용은 모두 자신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슬프거나 마음 아픈 일들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를 찾을까 싶어 두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들을 대하려 애를 쓴다.


며칠 전에도 귀히 여기는 한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주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는 후배이자 인생친구라 여기는 사이였다. 웃을 일이 없는 구닥다리 농담으로 늘 쾌활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가라앉아 있기에 금방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너머로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갑자기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궁금함이 컸지만 그의 눈물이 멈추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성급히 이유를 묻거나 섣부른 위로로 그를 보챌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연이든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 스며든 탓이기도 하지만 실제 마음의 곁을 나누며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말이라도 몇 마디 털어냄으로써 그 스스로 위안이 될 일이라면 다행이라 안도할 뿐이다.


차가운 계절이 다가와서일까. 가슴 시려 하는 이들이 주변에 자꾸 보인다. 별반 도움이 될 노릇은 없지만 그저 힘들 내시라고 어깨 한번 다독이고 싶다. 짙게 드리운 장막이 걷히고 나면 원래의 환한 세상이 한결 눈에 보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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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로 알려진 폭압의 시대를 마치고 지난 30년 동안 장애를 지닌 수많은 이들과 함께한 ‘반티에이뿌리웁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 재봉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소피아’. 2011. 캄보디아. ⓒ임종진


굶주리는 이들 앞에 서서 배가 얼마나 고프냐고 이제 묻지 않는다. 절망과 고통에 쌓인 이들 앞에 서서 얼마나 살기 힘드냐는 질문도 하고 싶지 않다. 병들어 누워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을 생각 또한 없다. 장애를 지닌 이들 앞에 서서, 그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묻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의 시선을 어떻게 견디어 내느냐는 질문은 정말이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한때 그런 질문과 염려에만 거의 100% 기대고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답을 들은 뒤 마치 세상을 다 바꾸어줄 듯 섣부른 약속으로 그들을 탐해왔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나의 시간들이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은 질문의 내용과 방식이 바뀌었다. 고단한 인생살이의 수위와 척도를 묻는 질문 대신 살며시 곁을 지키거나 함께 걷는 일이 더 많다. 말을 건네야 할 때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때를 구분하면서 의미 없는 충고와 조언 따위로 마음을 훔치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시선을 거두지 않거나 귀 또한 열어둔 채 살피고 또 살피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시간이 채워지면 보이지 않던 귀한 삶의 형태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나의 작은 심장은 그 형태에 쿵쿵 울리고 들뜬다. 이러한 지금의 내 심장은 10여년 전 캄보디아의 한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에서 1년 동안 머물렀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몸의 일부는 잃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는 것에 아무런 저해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감동스럽게 지켜본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달에 다시 이곳을 찾아간다. 옛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고 오랜만에 그들의 곁에 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들썩거린다. 미리 가늠만 해도 기분이 들뜬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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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4159번지의 방치된 땅에 솟은 듯 있는 봉우리. 2019. 제주. ⓒ임종진


땅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요동 하나 없이 가만히 ‘서서’ 분명 울고 있었다(라고 느껴졌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모른 척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한 채 나 또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에 내쳐진 듯 보이는 몰골을 보며 이 땅이 토해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 한라산 아래 중산간을 이루는 조금 솟은 평지였거나 작은 둔덕이었으나, 최근 개발업자들에 의해 사정없이 파헤쳐지다가 어인 일이지 살아남은 자연 원형의 일부였다. 생긴 모습은 언뜻 소박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 같았다. 대략 2~3m의 높이로 둘레는 양팔을 벌려 두어 번 돌면 가늠할 만했다. 굉음 속에 마구 깎이고 갉혀나갔을 순간들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일까. 참으로 처연하고 구슬펐다. 이대로 방치된 채 오랜 시간이 흘러왔다. 한순간에 작은 봉우리가 된 이 땅은 수년이 흐르는 동안 홀로 비와 바람을 견디고 서서 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바로 인근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람사르습지가 있는 이 땅 주변으로 이런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개발광풍이 한번 몰아친 곳이어서일까. 소식을 들으니 앞으로 이 지역 총 58만㎡ 부지에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삽질이 시작된다면 아마 이 봉우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땅의 눈물은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멈추게 될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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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집회에 참석한 한 공무원노조 노동자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딸이 담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2014. ⓒ정기훈


한 사람이 그가 속한 노동조합 집회에 참석해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다. 또 한 사람인 사진가가 그의 곁에 머물며 서성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노동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딸의 얼굴을 한동안 살펴보았다. 바로 이 순간을 사진가는 놓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 거친 음성과 구호가 떠다니는 현장에서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사람’임을 이루는 시간을 꽃처럼 틔워냈다.


둘 중 하나인 사진가 ‘정기훈’은 늘 남다른 솜씨로 꽃을 틔운다. 머문 자리 자체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일 뿐인데도 탁월하게 틔워낸 그의 꽃들은 예외 없이 경탄스러울 만한 자태를 품는다.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쉼터가 된 낡은 미장원 등등 그가 주시하고 머무는 거리의 토양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럼에도 그가 틔워낸 모든 꽃은 메마른 아스팔트를 촉촉하게 만드는 살내음으로 가득하다. 때론 아픔이 웃음으로, 때론 웃음이 아픔으로 승화된 그 향기는 오롯이 보는 이들의 시선까지 끌어안는다.


학생운동으로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 불의의 사고로 절친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지켜봤던 기억 탓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성정 때문일까. 그가 사람을 살피는 시선은 항상 자신과 다르지 않은 귀한 삶이라는 성찰에서 비롯되고 다시 형상으로 구현된다. 그래서 정기훈이 피우는 모든 꽃은 사람꽃이요 사진이 아니다. 사진가 정기훈을 계속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러하다. 그의 통찰력 깊은 솜씨로 틔운 사람꽃 얘기들이 곧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사람으로 사람을 만나는 그의 시선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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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저수지 완공을 앞두고 마지막 가을을 맞이한 광대리 풍경. 1995. 청양. ⓒ임종진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칠갑산 자락 아래 예스러운 정취가 가득했던 이 마을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아낙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로 빨래를 하고 종종 냄비며 밥솥을 씻던 풍경도, 갈 데 없는 동네 꼬마들이 ‘니캉내캉’ 멱을 감고 숨바꼭질 놀이로 시간을 때우던 그 풍경도 전부 마찬가지다.


산 좋고 물 좋기로는 어디 빠질 데가 없다는 이 동네를 처음 찾아간 때가 대략 25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가뭇해진 기억을 더듬으니 떠오르는 그 아름답던 정경들이 꽤 된다. 큰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광대리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어찌어찌 듣게 되어 아마도 마지막 추석이 될 그해 가을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마을을 찾아갔던 기억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했지만 동네 주민들의 아쉬움은 너무나 컸었다. 밥도 얻어먹고 동네 어른들이 터놓는 안타까운 추억의 넋두리도 들으면서 며칠 머물던 기억이 어제처럼 가깝다. 밤하늘의 별은 또 어찌나 총총히 박혀 있었는지 그저 한 번 들른 동네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달 청양의 한 기관이 요청을 해 강연을 다녀왔다. 마침 버스가 광대리 근처를 지나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옛 기억의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눈에 들 일이 없었다. 그 당연함이 진한 아쉬움을 불렀다. 


“잘 모르겄슈. 인자 물이 다 찼응게 떠나야 하는디 어디 딴디로 가서 사능 게 쉬운 일인가유. 평생 살아왔응게 기냥 이렇게 살다가 가믄 좋겄는디.”


밥과 잠자리를 얻었던 동네 할머니의 음성만 생생하게 살아 귓가를 흔들었다. 그 많던 귀한 삶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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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이사영씨. 2016. ⓒ이사영

한 늙은 사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부인을 찾아온 길. 적막이 흐르는 납골당 안에서 그는 자신을 주목했다.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그대로 셔터를 눌렀다. 과거 군사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1974년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무자비한 고문과 15년에 이르는 수감생활로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두려움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거울 속 자신의 형상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의 무죄판결로도 깊게 파인 내면의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는 그였다.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벽 속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일까. 팔순을 넘긴 초로의 그는 몇 해 전부터 카메라를 들고 몸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세상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고문했던 옛 중앙정보부 조사실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아픈 기억의 공간들과 수차례 직면하는 것은 물론 고궁, 바다, 동물원, 야구장 등 평소 가고 싶었으나 위축감으로 망설이던 곳들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카메라를 들었다. 교도소 철창 바깥을 바라보며 한없이 그리워했던 자유를 이제야 즐기게 되었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 담아 찍는 게 사진이기 때문에 점점 흐뭇해진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에게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스스로 자기감정을 확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어찌보면 그가 거울 속에서 바라본 것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억압될 수 없는 존엄성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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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산보안대를 둘러싼 담벼락이 있던 자리에 서서 자신이 몸을 숨겼던 주택가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2017. 부산. ⓒ최양준


이 자리에 다시 서기까지 35년이나 걸렸다. 무려 일만삼천 날이 넘는 긴 세월을 떠나보낸 뒤에야 이 작은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근처에는 절대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올해 나이 여든의 최양준씨. 두려워서 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자리를 찾아 한 장의 사진까지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2년 간첩 혐의로 부산보안대에 끌려간 그는 무자비한 고문수사를 견디다 못해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다. 철망과 창살로 둘러쳐진 3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일을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가 가능케 했다. 


온몸이 찢겨나간 채 피가 철철 흐르는 몸으로 그가 섰던 자리. 막 내려선 담벼락 앞에 서서 이제 살 수 있지 않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자리. 잘못된 국가권력에 탈출이라는 저항으로 맞섰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자신의 그림자 끝이 향한 주택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체포되었지만 희한하게 그때부터 고문을 안 하더라고 그는 다시 회상했다. 고문사관들이 놀라서 꼬리를 내린 거라고,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배시시 그가 웃었다. 그 자리에 서보니 맘이 후련해지더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사실이 그러했다.


2011년 오랜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그는 몇 해 전부터 사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간첩이 되어 모진 고문과 10여년의 교도소 생활을 감내해야 했지만 아픈 기억에만 빠져 자신을 묶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걸음, 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최양준 선생이 말하는 카메라를 든 이유는 그랬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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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보 선생이 찍은 제주시 화북동 자신의 외갓집 돌담. 2019. ⓒ강광보


노인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표정 너머 잔잔한 실웃음이 퍼져 있었다. 그가 사유하듯 가만히 바라보는 곳은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끊임없이 철퍼덕거리는 파도의 울림을 등 뒤에 두었지만 그는 아무런 요동 없이 고요했다. 잠시 뒤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낸 노인은 시선이 고인 그 집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세상에 남겨졌다. 


그에게 어떤 감흥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가 어릴 적 우리 외갓집이라오. 건너편 우리집에서 거의 벌거숭이처럼 뛰어와 바다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허허허.” 한결 얼굴이 활짝 핀 노인은 “저 돌담 위에 올라앉아 바다 구경도 하고 해 떨어지는 노을풍경 보던 때가 바로 며칠 전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70여년 전 자신의 모습처럼 해맑은 웃음을 내어 보였다.


제주시 화북동 작은 어촌이 고향인 ‘강광보’ 선생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추억을 되살려냈다. 그의 생애는 기구한 고통 속 삶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 밀항했다가 197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런 죄없이 체포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가 결국 ‘간첩’으로 낙인찍힌 채 7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조작된 간첩사건의 희생양이 된 그는 재심 끝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잃어버린 세월을 품고 살아야 할 그는 가슴에 드리워진 상처를 달래면서 다시 평화로운 삶의 꿈을 펼쳐가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의 공간들을 찾아 자기 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당신의 걸음을 보며 이 아름다운 ‘자기와의 동행’에 큰 박수를 드리고 싶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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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자주 들른 서울 성동구 가래여울 마을에서 고향 들녘의 흙길과 비슷한 감흥을 얻곤 했다. 2010. 서울. ⓒ임종진


고향 친구가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낮술 몇 잔 걸치고는 불콰해진 목소리로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때도 많다. 내용이 어떠하든 친구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도 냉큼 멈추게 된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걸쭉한 막걸리 내음이 가득하다. 찐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아련하면서도 흥겨운 감흥에 젖어 들게 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 들녘을 여기저기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며 묻지도 않은 고향 소식이 실려 오기라도 하면 아련함까지 한층 더해진다. 돌이 많은 산동네였던 ‘돌팍모랭이’, 밤 까먹느라 정신없던 ‘밤동산’, 골짜기에 고인 샘물에서 멱을 감곤 했던 ‘고리동’ 등등. 지금은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으나 어린 시절 대부분 몸을 맡겼던 터전들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여러 연유로 고향을 멀리 한 지 오래되었지만 친구의 전화 이후 가뭇해진 기억을 일부러 더듬는 일이 잦아졌다. 그 많은 흙길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려나. 한 번쯤 들러 추억 속 한자리에 서고 싶은 맘이다. 친구는 내려오면 자기 집에서 자야 한다며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고향 들녘의 흙길들을 찾아 한번 거닐어보고 싶다. 혹시 40여 년 전 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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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조작간첩 사례인 1979년 삼척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씨가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던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아 처음으로 찍은 사진. 2017. ⓒ김순자


전시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이루어낸 심정적 회복에 관한 전시인데 모두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하는 중이다. 준비과정 속에서 사진의 치유적 역할을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접하곤 한다.


특히 나는 대면이라는 행위를 주목한다. 사진은 마주함, 즉 무언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다. 하나의 존재가 또 다른 존재와 만날 때 구현될 수 있고 대부분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성의 형질을 갖기 어렵다. 카메라를 든 이가 사람 또는 사물이나 풍경 등 실재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일체를 이루고, 셔터를 눌러 물성화된 결과물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상으로 삼는 피사물은 어김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의 형태로 마주하게 되는데, 사진의 치유적 기능을 접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성을 먼저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자신의 깊은 심연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 그것이다. 기억은 모두 특정한 경험에서 비롯되어 기쁨, 환희 등의 긍정적이거나 절망, 슬픔,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형성화되어 자기 안에 저장된다. 특히 부정적 기억은 외면하거나 회피하기 마련인데 지금 준비 중인 전시의 참여자들은 바로 이 감정에 주목한 사람들이다. 모두 과거 국가권력의 불가항력적 폭력에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었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지탱해왔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었을까.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내면에 드리워진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담아낸 사진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듯 아프면서 또한 감동적이다. 이제 세상이 이들을 기억해 줄 차례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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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앉은 채 가을하늘을 품고 있는 잠자리들. 2019. 충남 천안시 북면 운용이리. ⓒ윤지영


가을이 아주 깊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이내 가슴에 들어와서 눌어붙으니 뻥 트인 가슴에 파란 물이 줄줄줄 흘러넘친다. 


품 넓은 가을하늘이 성큼 내 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모처럼의 평온함에 몸을 기댔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마침 지쳐 있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 잠깐 눈에 밟힌다. 목표를 두었으니 이루려고 매달린 시간이 안쓰럽게 쌓여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낸 것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날들이다. 더 할 노릇도 안되니까 그만 포기하자는 체념이 한숨으로 토해지는 요즘이었다.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본다. 짙게 푸른 가을하늘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듯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내 맘을 읽은 때문일까. 옆에 있던 아내가 손가락으로 하늘 한편을 가리켰다. 때마침 전깃줄에 앉아 쉬고 있는 몇 마리의 잠자리들이 쑤욱 눈에 들어왔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에 살살 흔들거릴 뿐 잠자리는 별다른 요동 없이 가만히 쉬고 있었다. 그래. 너희도 힘이 들면 잠시 날갯짓을 멈출 때가 있어야지. 곧 다시 날아갈 수 있을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웃음이 절로 솟는다. 


각자 어딘가에 딛거나 기대어 앉은 가을 오후. 온몸에 흐르는 평화로운 기운에 용기를 얻어 오늘 이후의 삶을 헤아려 본다. 따사로운 햇살까지 더해진 가을하늘이 선물처럼 스며들었다. 참으로 깊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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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한 평원에서 만난 말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다. 2019. 몽골. ⓒ임종진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다. 반려로 삼아 직접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TV를 통해서였지만,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는 모습을 항상 경탄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서부영화나 국내 역사 드라마 등의 전투 장면 중 이 동물이 “히히힝”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안달이 났었다. 단단해 보이는 데다 수려하기까지 한 근육질 자태에 매혹당한 꼬맹이 시절 내내 나는 스케치북이 닳도록 말 그림을 그려댔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에 절절거리는 오십 대의 나이까지 이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우연히 말 무리를 본 순간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수십마리의 말들이 땅을 굴려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멀찍이서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어느새 나는 무리 한가운데로 냅다 뛰어들었다. 건장한 말들이 옷깃을 스치듯이 가까이 왔다가 겨를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뽀얀 먼지구름이 푸른 공기를 뒤엎었고 거친 숨소리들은 급기야 온몸이 짜릿하게 곧추서게 했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을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소년이 된 듯 잃어버린 동심이 되살아나는 특별한 느낌을 얻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말 무리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 짙푸른 하늘과 드넓은 대지 안의 말 무리. 대자연이 내어준 장엄한 풍경의 일부라도 된 양 우쭐해진 가슴을 다독이고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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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송이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들풀의 힘을 느끼다. 2019. ⓒ임종진


승부욕에 빠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학업을 이루는 시기에도 친구들과 경쟁해서 앞서겠다는 생각을 크게 한 적이 없다. 아둔한 머리 탓이기도 하지만 일등이라는 지위 역시 남의 것이라 여길 뿐 피곤하게 거기까지 갈 욕심도 없었다.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날을 새운 기억도 많지 않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00m 달리기를 해도 악착같은 경쟁심보다는 뜀박질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등수가 뒤처져도 그러려니 했다. 나름 경쟁자들 틈 속에서 뛰어야 했던 직장전선에 있을 때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천성적으로 남과 승부를 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다. 맨 앞자리보다는 중간쯤이 편하고 조직의 리더보다는 보좌의 역할을 하는 것에 더 만족한다. 


그렇다고 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등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들이는 행복한 몰입 자체를 좋아할 뿐이다. 그러니 높은 자리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려 남의 명망을 탐할 일이 별로 없다. 


남들 잘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박수를 치며 웃는 일이 즐겁다. 나이 쉰을 넘겨서도 화려한 꽃송이보다는 그 꽃을 돋보이게 하는 주변의 들풀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중심보다는 주변의 아름다움이 내게는 더 크다. 주인공이 되기보다 뒷자리에 설 때가 여전히 맞춤옷을 입은 듯 편안하기만 하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내 성정에 만족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등바등하며 상대를 견주어 바라보지 않는 지금의 삶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런 내 생각이 바뀌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된다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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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철원역 터의 끊어진 철로 위에 겨울눈이 쌓여 있다. 철원. 2011. ⓒ임종진


철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된 뒤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제국주의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하던 시절 지어져 그들을 위해 쓰였음을 역사는 모르지 않는다.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북녘땅 원산까지 223.7㎞에 이르는 경원선의 중간역이자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 철로의 시발점으로 남과 북을 아우르는 교통요지였다. 당연히 그 시기 건설된 모든 철길의 이용목적에 ‘걸맞게’ 철원역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80명에 이르는 역무원들이 종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반도 전역에서 수탈한 물자들의 반출처이자 일본 본토의 배를 불리는 젖줄기로서 그 역할이 참으로 지대했을 터다. 땅을 빼앗은 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땅을 빼앗긴 이들은 절망의 눈빛으로 머문 자리. 땅은 되찾았으나 갈라진 반도 한가운데에서 쓰임새를 잃은 지 오래인 자리.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철원역 터에는 적막한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여러 연결 선로들이 얽힌 흔적만이 이곳이 기차역이었음을 알게 할 뿐이었다. 


괜한 상념으로 서성거리던 걸음은 칼로 자른 듯 뚝 끊긴 철길 앞에 이르러 저절로 멈추게 됐다. 쌓인 눈에 덮인 탓에 겨우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땅을 잃었던 그 시절 바로 여기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을 이들이 상념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자리를 가벼이 스쳐가기엔 송구스러운 마음이 컸다. 몇 해 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선하다. 그 자리에서 왜 그들을 떠올렸을까. 다시 제국주의 망령이 춤을 추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이 기억이 되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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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미아 3동 일대 한 재개발지역의 풍경. 2019. ⓒ 임종진


큰길 건너 동네 안 풍경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손으로 휘갈긴 듯 붉은색 글씨로 거칠게 쓰인 현수막들이 한때 이곳의 절박했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 우이경전철 삼양역 1번 출구 앞 골목길 초입. 우연히 접한 이끌림의 기운에 응해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삭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전제품들, 전깃줄에 흉물스럽게 걸쳐진 전기매트, 자물쇠를 채운 것도 모자라 나무판자에 X자 형태로 못이 박힌 채 봉쇄된 모든 주택과 상가건물들, 벽과 담장 현관문마다 붙여진 출입금지 경고문, 험한 욕설과 이별의 서운함이 담긴 낙서들, 쓰임새를 잃은 채 머루포도 잎새 넝쿨로 완전히 뒤덮인 CCTV 그리고 사람 키 가까운 높이로 온 사방 발 디딜 데를 다 막고 자란 잡초들까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동네 한가운데 선 나는 마치 영화 속 버려진 도시의 한복판에 홀로 선 듯 외롭고 허전했다. 두려움과 고립감에 뒤엉킨 낯선 느낌에 당혹해서일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파리 떼들을 핑계 삼아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왔다. 


차량과 행인들이 빚은 소음이 반갑게 느껴질 즈음 한 상가 사이 골목을 가로막은 의자 하나가 눈에 들었다. 사람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 오래도록 주인장의 쉴 몸을 지탱해 주었을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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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경기 양평의 한 폐공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작가들의 ‘SPRING’ 전시장을 찾은 비덕 최정은씨. 2019. ⓒ임종진


가만히 한 사람의 이름을 ‘바라본다’. 그녀를 아는 사람 대부분은 본명인 ‘최정은’보다 ‘비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 뜻이 꽤 알차다. ‘비빌 언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그녀의 품 넓은 언덕은 보통 밥상 위에 펼쳐진다. 건강한 식재료를 모아 온갖 정성으로 빚어낸 음식들이 마치 예술작품인 양 고고한 자태를 발광한다. 바라보는 순간부터 밥상을 물리게 될 때까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 밥상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주며 어루만져주기까지 하는 느낌을 예외없이 받는다. 세월호 유가족, 국가폭력 고문피해자들을 포함해 사회적 그늘 아래 힘겨워하던 더 많은 이들이 그랬다.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밥상, 사람을 절로 행복하게 하는 치유의 밥상이다.


지난 5월 경기 양평의 한 폐공장에서 열린 발달장애 작가들의 작품전시회에서 비덕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날 이미 참여작가들과 전시장을 찾은 이들을 위해 푸짐한 밥상을 제공했던 그녀는 이튿날 다시 전시장을 찾아 작품들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단지 밥 한 끼 대접하려는 것이 아니라 온 맘을 들여 사람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일까.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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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김혜민씨가 찍고 다시 내가 찍어 남긴 두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2019. ⓒ임종진


아끼는 지인이 며칠 전 먼 여행길에 나섰다. 아마 지금쯤이면 커다란 배낭에 한 짐 가득한 여행보따리를 꿰차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옛스러운 골목길을 돌며 동네 주민들과 희희낙락거리고 있을 듯싶다. 출국 전 일부러 찾아온 그녀의 표정은 기대심에 잔뜩 부푼 어린 소녀처럼 맑고 화사했다. 1년 정도 생각하지만 끝날 즈음이 되어 혹시 마음이 내킬 경우 귀국일을 훨씬 뒤로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에 무조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등을 떠밀었다. 


오래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아갈 꿈을 꾸어온 것을 잘 알기에 드디어 실행에 옮긴 그녀의 선택과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한 장 찍어드릴게요!” 악수를 나누고 떠나기 전 그녀는 가방 속에서 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찰칵’ 소리와 함께 금방 내 손으로 만져지는 사진 한 장의 느낌이 반갑고 고마웠다. 여행하는 내내 관광객이기보다는 현지 주민들과 마음을 섞고 싶다는 그녀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꽤 훌륭한 도구가 될 일이었다. 뒤를 이어 나도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 얼굴. 30대 후반의 전문직 여성이 지인들 대부분의 만류(?)를 무릅쓰고 가진 모든 것을 털어버리며 떠나는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생의 길 위에 선 그녀는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사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한 10년쯤 지난 뒤 이 두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펼쳐놓고 틔워낼 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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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구의 한 모임터에서 강연을 마친 뒤 어머니들로부터 받은 노란 선물 꾸러미들. 2019. ⓒ임종진


안산에 다녀왔다. 홀로 다녀온 적은 있지만 초대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2014년 4월16일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을 접할 때마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 얹힌 느낌이 항상 있었다. 초대한 이는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이름의 시민모임. 그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에게 사진을 건네다>라는 제목의 치유적 사진에 대한 강연을 준비했다. 


단순한 기념이나 유희적 기록을 넘어 스스로 이루는 행위적 매개물로 사진을 재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피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강연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에 맺힌 파란 멍을 어루만지는 느낌이었다. 사진과 심리상담을 접목한 사진치유자로 활동해 오면서 지난 5년 동안 늘 마음이 쓰인 곳이 안산이었기 때문이다. 


강연 분위기는 뭉클하면서도 따뜻했다. 어릴 적 사진으로 자신을 향한 내리사랑도 확인해 보고 습관적으로 찍어 온 스마트폰 사진 속에서 대상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것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자기’라는 존재성을 확연히 느껴서일까. 애초 약속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세 시간 반 가까이 지나서야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웃음이 가득한 유쾌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여러 어머니들이 쥐여준 노란 선물 꾸러미들이 주머니를 한가득 채웠다. 가슴으로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고마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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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 지역인 ‘앙수놀’ 들녘에서 바라본 ‘소 가족’의 귀갓길 풍경. 2009·4. 캄보디아. ⓒ임종진


하루 소임을 다한 태양이 아직 빛을 잃기 전이었다. 얼마 전 모내기를 마친 너른 들녘은 초록의 기운을 가득 품은 상태였고 사이사이 놓인 논둑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딛는 산책길은 꽤나 평화로웠다. 


한가로이 풀을 뜯던 소 떼가 눈에 띄었다. 두세 마리씩 따로 모여 여러 무리를 이루었기에 처음엔 각자 주인도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평화로운 저녁풍경을 만끽하게 하는 자연의 일부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덩치가 가장 큰 소 한 마리의 ‘음메에’ 하는 울음소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른 소들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 색다른 풍경에 집중했다. 소들의 행동은 마치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엉키거나 거침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덩치 큰 수소가 무리의 맨 앞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미로 보이는 암소가 어린 송아지들을 가운데로 몰아 한 줄로 길게 늘어서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맨 뒤에 자리 잡은 암소는 주변을 한번 살피더니 이내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람인 주인장 없이 소들끼리 펼쳐 보인 이 풍경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한 줄로 걸어가니 수를 세기도 간편했다. 모두 열한 마리의 소가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끝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치 즐거운 저녁 외식을 마친 일가족들이 어린아이들을 챙기면서 여유롭게 귀가하는 이 풍경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생명을 품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울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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