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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이름 모를 들꽃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대부분 화려하지도 않은 색깔에 시선을 끌 만한 자태를 지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주하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어떨 때는 아예 세월아 하고 시간을 보내는 날도 꽤 있다. 좋으니까 그렇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일 없이 진득하게 서 있는 그 순간이 참으로 기쁘다. 어지러운 일상도 내려놓고 입도 지그시 다문 채 그저 지금 그 순간을 즐긴다. 평화에 젖어드는 느낌이랄까.

 

몽골 초원에서 긴 시간 마주했던 이름 모를 들꽃. 2019. 몽골. ⓒ임종진

 

내 성정이 평화로워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들꽃 자체의 기운으로 내가 평온을 얻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에서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 당당히 서 있지 않은가. 눈에 띄지 않는 그 평범함이 오히려 진득한 아름다움으로 변해 유난히 내 눈에 든다. 세상 어디에도 하찮게 여길 사물이란 없다는 것을 이 작고 이름 없는 들꽃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온전하게 지켜가는 삶이길 소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들꽃으로 인해 느낀 이 위로와 평화의 기운을 나는 누구에게 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시간의 흐름이 참 빠르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곧 세월이라더니 그야말로 실감이 난다. 기해년(己亥年) 365일의 ‘오늘하루’를 다 채우고 어느새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의 문이 열리는 지금, 새해 인사를 겸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9년 1월 첫 주에 이 지면을 통해 ‘임종진의 오늘하루’를 시작하면서 끝을 길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1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모두 채우고 마치게 되었다. 지면을 허락해준 경향신문과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듬뿍 받으십시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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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 크게 위로를 받았다는 나의 책 <천만개의 사람꽃>. 2019. ⓒ임종진


나의 사진이 가진 쓰임새는 과연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무는 날에 이르러 숙연한 마음으로 지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허허로운 생각이 커지면서 이내 삼고초려의 심정을 벗 삼아 스스로 맘을 달래본다. 그나마 얼마 전에 있었던 가슴 뿌듯한 기억 하나가 크게 위로가 되었다. 무척 바라긴 했으나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졌다. 민망함에 손사래를 쳤지만 말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두 눈가가 벌게지기까지 했다. 그것은 세상에 내놓은 지 너무 오래되어 절판까지 된 나의 책 <천만개의 사람꽃>을 읽은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믿고 따르는 한 인생 선배가 주선한 모임 자리에 참석했다가 내 이름을 알아본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암투병을 하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그녀는 이 책을 읽고 크게 위로를 받았으며 그로 인해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내게 말했다. <천만개의 사람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8개 나라를 오가면서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이 지닌 가치를 사진과 짧은 글로 담담히 풀어낸 책이다. 출판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으며 이제 구할 수도 없는 이 낡은 책 한 권이 그녀에게는 생의 희망을 찾는 동력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는 오히려 내게 커다란 위안의 메시지였다. 세상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는 지금, 그동안 나의 곁을 지켜준 모든 이들에게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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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자격으로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인 ‘반티에이프리업(Banteay Prieb)’의 마지막 졸업식을 지켜보던 ‘소꾼’이 나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있다. 캄보디아. 2019. ⓒ임종진


햇살 가득 품은 얼굴이 내게로 왔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은 눈인사에는 오랜 인연으로 빚은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꾼’. 내가 이 나라를 찾아 NGO활동가로 머물던 2009년에 처음 만났으니 벌써 10년을 꽉 채운 인연이다. 바늘과 실을 처음 눈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녀는 지금 꽤 능숙한 솜씨를 지닌 전문 재봉사가 되어 있다. 2년 전쯤 왔을 때와는 달리 눈가에 살짝 잔주름이 얹히는 걸 보면서 세월을 함께 나눈 인연이란 생각에 든든해지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캄보디아에 이런 친구들이 꽤 많다. 2004년에 처음 이 나라를 찾은 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어 아예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달려와 몸과 맘을 들여 살았던 때문이다. 그 시절에 맺어진 친구들과의 인연들을 생각하면 늘 기분이 흥겹다.


특히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인 ‘반티에이 프리업(Banteay Prieb)’에서 만난 인연들은 기억 한가운데 각별하게 남아 있다. 이 기술센터는 지뢰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었거나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이들에게 전자 및 기계수리, 재봉 등의 기술을 무료로 전수시켜주는 곳이었다. 30년 동안 매해 100여명에 이르는 졸업생을 배출했으니 이곳에서 기술을 배워 자신의 꿈을 찾아간 친구들만 수천명에 이른다. 그들 중 ‘소꾼’과 같이 입학과 졸업이라는 1년의 시간을 통째로 지켜본 친구들과는 그만큼 나눈 정이 깊고 크기만 하다. 올해가 마지막 졸업이라는 소식에 만사를 제치고 달려온 지금 그 귀한 인연들과 두루 눈빛을 섞으며 마냥 웃고 있다. 서로의 주름살까지 세어주며 더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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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에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바그다드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져서 엉덩이를 델 거라고 농담을 걸던 이라크인 친구 카심. 2003. 이라크. ⓒ임종진


그는 나의 안전을 염려하고 있었다. 폭격이 시작되면 혹시나 내가 화를 입게 될까 하는 마음에 진심을 다해 당장 떠나주기를 원했다. 2003년 3월18일 저녁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거리.


“지금 떠난다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이대로 남는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친구로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달라는 그를 바라보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심’. 전쟁취재를 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라크를 찾은 나에게 그는 현지 안내인이면서 길동무였다. 


멋지게 기른 턱수염에 희끗거리는 반백의 머릿결이 잘 어울리던 카심은 머무는 기간 내내 마치 아버지처럼 사려 깊은 성정으로 내 동선을 살펴주었다. 이런저런 요청을 할 때마다 항상 “No problem!”을 외치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던 그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들었던 카심의 정중하고도 감동스러운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최근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자꾸 보게 된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최근 이라크에서 들려오는 심각한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의 안위가 무척이나 염려스러운 탓이다.


이라크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카심은 모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반전집회에 참석해 글을 쓰거나 읽지 못하는 거리의 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손바닥에 직접 ‘PEACE’라는 글자를 써서 보여주던 모습 또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친구의 무사안위를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꽉 믿어보련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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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앉아 여유로이 평온에 젖어 있는 아내와 딸. 코타키나발루. 2017. ⓒ임종진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의 밀착감이 한몸으로 느껴질 만큼 보기에 좋았다. 요동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엄마가 아이와 눈빛을 맞추는 정도의 움직임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몸짓의 변화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요함에 거의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 나는 없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간간이 뒤를 돌아 내 눈빛에 섞이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두 사람은 파도 건너 저 먼바다 끝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내 나는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를 보든 무엇을 보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뿌듯한 평화가 내 감정을 일렁이게 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아늑함에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몰입의 즐거움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바다의 파열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문득문득 양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유혹도 있었다. 그 덕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하염없이 커져갔다. 정지된 화면처럼 숨죽인 고요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앉아 있을 뿐 우리 셋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곁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의 아내와 딸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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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개 속 도시풍경. 2019. 파주. ⓒ임종진


바람 시린 날이 점점 늘고 있다. 11월이 아직 며칠 남아 있는데 목을 타고 스미는 기운이 한겨울처럼 제법 차다. 굳이 연결지을 일은 아니겠지만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자꾸 타고 든다. 최근 들어 가까이 여기는 지인들의 전화나 만남의 시간들이 연이어 그리고 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화내용은 모두 자신의 현실에서 빚어지고 있는 슬프거나 마음 아픈 일들이다. 얼마나 답답하면 나를 찾을까 싶어 두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그들을 대하려 애를 쓴다.


며칠 전에도 귀히 여기는 한 지인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주 볼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는 후배이자 인생친구라 여기는 사이였다. 웃을 일이 없는 구닥다리 농담으로 늘 쾌활하게 말을 건네던 그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가라앉아 있기에 금방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너머로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갑자기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궁금함이 컸지만 그의 눈물이 멈추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성급히 이유를 묻거나 섣부른 위로로 그를 보챌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연이든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 스며든 탓이기도 하지만 실제 마음의 곁을 나누며 조용히 귀를 기울여 듣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말이라도 몇 마디 털어냄으로써 그 스스로 위안이 될 일이라면 다행이라 안도할 뿐이다.


차가운 계절이 다가와서일까. 가슴 시려 하는 이들이 주변에 자꾸 보인다. 별반 도움이 될 노릇은 없지만 그저 힘들 내시라고 어깨 한번 다독이고 싶다. 짙게 드리운 장막이 걷히고 나면 원래의 환한 세상이 한결 눈에 보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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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로 알려진 폭압의 시대를 마치고 지난 30년 동안 장애를 지닌 수많은 이들과 함께한 ‘반티에이뿌리웁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 재봉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소피아’. 2011. 캄보디아. ⓒ임종진


굶주리는 이들 앞에 서서 배가 얼마나 고프냐고 이제 묻지 않는다. 절망과 고통에 쌓인 이들 앞에 서서 얼마나 살기 힘드냐는 질문도 하고 싶지 않다. 병들어 누워 있는 이들 앞에 서서 어느 정도 아프냐고 물을 생각 또한 없다. 장애를 지닌 이들 앞에 서서, 그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묻는 일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의 시선을 어떻게 견디어 내느냐는 질문은 정말이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한때 그런 질문과 염려에만 거의 100% 기대고 매달려왔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답을 들은 뒤 마치 세상을 다 바꾸어줄 듯 섣부른 약속으로 그들을 탐해왔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나의 시간들이 몹시 부끄럽고 안타까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은 질문의 내용과 방식이 바뀌었다. 고단한 인생살이의 수위와 척도를 묻는 질문 대신 살며시 곁을 지키거나 함께 걷는 일이 더 많다. 말을 건네야 할 때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때를 구분하면서 의미 없는 충고와 조언 따위로 마음을 훔치려 하지 않는다. 가만히 시선을 거두지 않거나 귀 또한 열어둔 채 살피고 또 살피는 일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시간이 채워지면 보이지 않던 귀한 삶의 형태들이 내 앞에 펼쳐진다. 


나의 작은 심장은 그 형태에 쿵쿵 울리고 들뜬다. 이러한 지금의 내 심장은 10여년 전 캄보디아의 한 지뢰피해장애인기술센터에서 1년 동안 머물렀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몸의 일부는 잃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는 것에 아무런 저해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감동스럽게 지켜본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달에 다시 이곳을 찾아간다. 옛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해후를 나누고 오랜만에 그들의 곁에 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들썩거린다. 미리 가늠만 해도 기분이 들뜬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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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4159번지의 방치된 땅에 솟은 듯 있는 봉우리. 2019. 제주. ⓒ임종진


땅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요동 하나 없이 가만히 ‘서서’ 분명 울고 있었다(라고 느껴졌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모른 척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한 채 나 또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에 내쳐진 듯 보이는 몰골을 보며 이 땅이 토해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 한라산 아래 중산간을 이루는 조금 솟은 평지였거나 작은 둔덕이었으나, 최근 개발업자들에 의해 사정없이 파헤쳐지다가 어인 일이지 살아남은 자연 원형의 일부였다. 생긴 모습은 언뜻 소박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 같았다. 대략 2~3m의 높이로 둘레는 양팔을 벌려 두어 번 돌면 가늠할 만했다. 굉음 속에 마구 깎이고 갉혀나갔을 순간들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일까. 참으로 처연하고 구슬펐다. 이대로 방치된 채 오랜 시간이 흘러왔다. 한순간에 작은 봉우리가 된 이 땅은 수년이 흐르는 동안 홀로 비와 바람을 견디고 서서 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바로 인근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람사르습지가 있는 이 땅 주변으로 이런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개발광풍이 한번 몰아친 곳이어서일까. 소식을 들으니 앞으로 이 지역 총 58만㎡ 부지에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삽질이 시작된다면 아마 이 봉우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땅의 눈물은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멈추게 될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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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개악저지 집회에 참석한 한 공무원노조 노동자가 휴대폰으로 자신의 딸이 담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2014. ⓒ정기훈


한 사람이 그가 속한 노동조합 집회에 참석해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다. 또 한 사람인 사진가가 그의 곁에 머물며 서성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노동자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바탕화면에 깔아놓은 딸의 얼굴을 한동안 살펴보았다. 바로 이 순간을 사진가는 놓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 거친 음성과 구호가 떠다니는 현장에서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이 만나 ‘사람’임을 이루는 시간을 꽃처럼 틔워냈다.


둘 중 하나인 사진가 ‘정기훈’은 늘 남다른 솜씨로 꽃을 틔운다. 머문 자리 자체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일 뿐인데도 탁월하게 틔워낸 그의 꽃들은 예외 없이 경탄스러울 만한 자태를 품는다.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노동자의 단식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그리고 동네 노인들의 쉼터가 된 낡은 미장원 등등 그가 주시하고 머무는 거리의 토양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럼에도 그가 틔워낸 모든 꽃은 메마른 아스팔트를 촉촉하게 만드는 살내음으로 가득하다. 때론 아픔이 웃음으로, 때론 웃음이 아픔으로 승화된 그 향기는 오롯이 보는 이들의 시선까지 끌어안는다.


학생운동으로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 불의의 사고로 절친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지켜봤던 기억 탓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성정 때문일까. 그가 사람을 살피는 시선은 항상 자신과 다르지 않은 귀한 삶이라는 성찰에서 비롯되고 다시 형상으로 구현된다. 그래서 정기훈이 피우는 모든 꽃은 사람꽃이요 사진이 아니다. 사진가 정기훈을 계속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러하다. 그의 통찰력 깊은 솜씨로 틔운 사람꽃 얘기들이 곧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사람으로 사람을 만나는 그의 시선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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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저수지 완공을 앞두고 마지막 가을을 맞이한 광대리 풍경. 1995. 청양. ⓒ임종진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칠갑산 자락 아래 예스러운 정취가 가득했던 이 마을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아낙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로 빨래를 하고 종종 냄비며 밥솥을 씻던 풍경도, 갈 데 없는 동네 꼬마들이 ‘니캉내캉’ 멱을 감고 숨바꼭질 놀이로 시간을 때우던 그 풍경도 전부 마찬가지다.


산 좋고 물 좋기로는 어디 빠질 데가 없다는 이 동네를 처음 찾아간 때가 대략 25년 전쯤이나 되었을까. 가뭇해진 기억을 더듬으니 떠오르는 그 아름답던 정경들이 꽤 된다. 큰 저수지가 들어서면서 광대리가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어찌어찌 듣게 되어 아마도 마지막 추석이 될 그해 가을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마을을 찾아갔던 기억이다. 지역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했지만 동네 주민들의 아쉬움은 너무나 컸었다. 밥도 얻어먹고 동네 어른들이 터놓는 안타까운 추억의 넋두리도 들으면서 며칠 머물던 기억이 어제처럼 가깝다. 밤하늘의 별은 또 어찌나 총총히 박혀 있었는지 그저 한 번 들른 동네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달 청양의 한 기관이 요청을 해 강연을 다녀왔다. 마침 버스가 광대리 근처를 지나쳤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옛 기억의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당연히 눈에 들 일이 없었다. 그 당연함이 진한 아쉬움을 불렀다. 


“잘 모르겄슈. 인자 물이 다 찼응게 떠나야 하는디 어디 딴디로 가서 사능 게 쉬운 일인가유. 평생 살아왔응게 기냥 이렇게 살다가 가믄 좋겄는디.”


밥과 잠자리를 얻었던 동네 할머니의 음성만 생생하게 살아 귓가를 흔들었다. 그 많던 귀한 삶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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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이사영씨. 2016. ⓒ이사영

한 늙은 사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부인을 찾아온 길. 적막이 흐르는 납골당 안에서 그는 자신을 주목했다. 천천히 카메라를 들어 그대로 셔터를 눌렀다. 과거 군사정권의 대표적 조작사건인 1974년 울릉도 간첩사건 피해자 이사영씨. 무자비한 고문과 15년에 이르는 수감생활로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두려움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거울 속 자신의 형상에서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의 무죄판결로도 깊게 파인 내면의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는 그였다. “더 이상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홀로 벽 속에 갇혀 있었던 기억 때문일까. 팔순을 넘긴 초로의 그는 몇 해 전부터 카메라를 들고 몸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세상과 조우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고문했던 옛 중앙정보부 조사실을 비롯해 서대문형무소와 같은 아픈 기억의 공간들과 수차례 직면하는 것은 물론 고궁, 바다, 동물원, 야구장 등 평소 가고 싶었으나 위축감으로 망설이던 곳들도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그때마다 카메라를 들었다. 교도소 철창 바깥을 바라보며 한없이 그리워했던 자유를 이제야 즐기게 되었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 담아 찍는 게 사진이기 때문에 점점 흐뭇해진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에게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스스로 자기감정을 확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어찌보면 그가 거울 속에서 바라본 것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억압될 수 없는 존엄성 그 자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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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산보안대를 둘러싼 담벼락이 있던 자리에 서서 자신이 몸을 숨겼던 주택가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 2017. 부산. ⓒ최양준


이 자리에 다시 서기까지 35년이나 걸렸다. 무려 일만삼천 날이 넘는 긴 세월을 떠나보낸 뒤에야 이 작은 둔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 근처에는 절대 얼씬거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올해 나이 여든의 최양준씨. 두려워서 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자리를 찾아 한 장의 사진까지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2년 간첩 혐의로 부산보안대에 끌려간 그는 무자비한 고문수사를 견디다 못해 틈을 타 탈출을 시도했다. 철망과 창살로 둘러쳐진 3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일을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그가 가능케 했다. 


온몸이 찢겨나간 채 피가 철철 흐르는 몸으로 그가 섰던 자리. 막 내려선 담벼락 앞에 서서 이제 살 수 있지 않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자리. 잘못된 국가권력에 탈출이라는 저항으로 맞섰던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자신의 그림자 끝이 향한 주택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체포되었지만 희한하게 그때부터 고문을 안 하더라고 그는 다시 회상했다. 고문사관들이 놀라서 꼬리를 내린 거라고,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배시시 그가 웃었다. 그 자리에 서보니 맘이 후련해지더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사실이 그러했다.


2011년 오랜 재심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그는 몇 해 전부터 사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간첩이 되어 모진 고문과 10여년의 교도소 생활을 감내해야 했지만 아픈 기억에만 빠져 자신을 묶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걸음, 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최양준 선생이 말하는 카메라를 든 이유는 그랬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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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보 선생이 찍은 제주시 화북동 자신의 외갓집 돌담. 2019. ⓒ강광보


노인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표정 너머 잔잔한 실웃음이 퍼져 있었다. 그가 사유하듯 가만히 바라보는 곳은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다. 끊임없이 철퍼덕거리는 파도의 울림을 등 뒤에 두었지만 그는 아무런 요동 없이 고요했다. 잠시 뒤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낸 노인은 시선이 고인 그 집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그렇게 세상에 남겨졌다. 


그에게 어떤 감흥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가 어릴 적 우리 외갓집이라오. 건너편 우리집에서 거의 벌거숭이처럼 뛰어와 바다에서 멱을 감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허허허.” 한결 얼굴이 활짝 핀 노인은 “저 돌담 위에 올라앉아 바다 구경도 하고 해 떨어지는 노을풍경 보던 때가 바로 며칠 전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70여년 전 자신의 모습처럼 해맑은 웃음을 내어 보였다.


제주시 화북동 작은 어촌이 고향인 ‘강광보’ 선생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자신의 추억을 되살려냈다. 그의 생애는 기구한 고통 속 삶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 밀항했다가 197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런 죄없이 체포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모진 고문에 시달리다가 결국 ‘간첩’으로 낙인찍힌 채 7년 동안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조작된 간첩사건의 희생양이 된 그는 재심 끝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잃어버린 세월을 품고 살아야 할 그는 가슴에 드리워진 상처를 달래면서 다시 평화로운 삶의 꿈을 펼쳐가고 있다. 어릴 적 추억의 공간들을 찾아 자기 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당신의 걸음을 보며 이 아름다운 ‘자기와의 동행’에 큰 박수를 드리고 싶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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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자주 들른 서울 성동구 가래여울 마을에서 고향 들녘의 흙길과 비슷한 감흥을 얻곤 했다. 2010. 서울. ⓒ임종진


고향 친구가 근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온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묻는 일이 대부분이다. 종종 낮술 몇 잔 걸치고는 불콰해진 목소리로 보고 싶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할 때도 많다. 내용이 어떠하든 친구의 전화벨이 울릴 때면 반가운 마음에 하던 일도 냉큼 멈추게 된다.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걸쭉한 막걸리 내음이 가득하다. 찐한 충청도 사투리가 들려올 때마다 소설 속 어린 왕자를 만난 듯 아련하면서도 흥겨운 감흥에 젖어 들게 된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친구들 무리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 들녘을 여기저기 뛰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며 묻지도 않은 고향 소식이 실려 오기라도 하면 아련함까지 한층 더해진다. 돌이 많은 산동네였던 ‘돌팍모랭이’, 밤 까먹느라 정신없던 ‘밤동산’, 골짜기에 고인 샘물에서 멱을 감곤 했던 ‘고리동’ 등등. 지금은 더 이상 부를 일이 없으나 어린 시절 대부분 몸을 맡겼던 터전들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여러 연유로 고향을 멀리 한 지 오래되었지만 친구의 전화 이후 가뭇해진 기억을 일부러 더듬는 일이 잦아졌다. 그 많은 흙길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려나. 한 번쯤 들러 추억 속 한자리에 서고 싶은 맘이다. 친구는 내려오면 자기 집에서 자야 한다며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고향 들녘의 흙길들을 찾아 한번 거닐어보고 싶다. 혹시 40여 년 전 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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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조작간첩 사례인 1979년 삼척고정간첩단 사건 피해자 김순자씨가 당시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던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인권기념관)을 찾아 처음으로 찍은 사진. 2017. ⓒ김순자


전시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이루어낸 심정적 회복에 관한 전시인데 모두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구성하는 중이다. 준비과정 속에서 사진의 치유적 역할을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들을 접하곤 한다.


특히 나는 대면이라는 행위를 주목한다. 사진은 마주함, 즉 무언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다. 하나의 존재가 또 다른 존재와 만날 때 구현될 수 있고 대부분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성의 형질을 갖기 어렵다. 카메라를 든 이가 사람 또는 사물이나 풍경 등 실재하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삼아 일체를 이루고, 셔터를 눌러 물성화된 결과물을 남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상으로 삼는 피사물은 어김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의 형태로 마주하게 되는데, 사진의 치유적 기능을 접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성을 먼저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자신의 깊은 심연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 그것이다. 기억은 모두 특정한 경험에서 비롯되어 기쁨, 환희 등의 긍정적이거나 절망, 슬픔, 분노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형성화되어 자기 안에 저장된다. 특히 부정적 기억은 외면하거나 회피하기 마련인데 지금 준비 중인 전시의 참여자들은 바로 이 감정에 주목한 사람들이다. 모두 과거 국가권력의 불가항력적 폭력에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었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지탱해왔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었을까.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내면에 드리워진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담아낸 사진들은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듯 아프면서 또한 감동적이다. 이제 세상이 이들을 기억해 줄 차례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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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앉은 채 가을하늘을 품고 있는 잠자리들. 2019. 충남 천안시 북면 운용이리. ⓒ윤지영


가을이 아주 깊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이내 가슴에 들어와서 눌어붙으니 뻥 트인 가슴에 파란 물이 줄줄줄 흘러넘친다. 


품 넓은 가을하늘이 성큼 내 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모처럼의 평온함에 몸을 기댔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마침 지쳐 있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 잠깐 눈에 밟힌다. 목표를 두었으니 이루려고 매달린 시간이 안쓰럽게 쌓여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낸 것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날들이다. 더 할 노릇도 안되니까 그만 포기하자는 체념이 한숨으로 토해지는 요즘이었다.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본다. 짙게 푸른 가을하늘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듯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내 맘을 읽은 때문일까. 옆에 있던 아내가 손가락으로 하늘 한편을 가리켰다. 때마침 전깃줄에 앉아 쉬고 있는 몇 마리의 잠자리들이 쑤욱 눈에 들어왔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에 살살 흔들거릴 뿐 잠자리는 별다른 요동 없이 가만히 쉬고 있었다. 그래. 너희도 힘이 들면 잠시 날갯짓을 멈출 때가 있어야지. 곧 다시 날아갈 수 있을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웃음이 절로 솟는다. 


각자 어딘가에 딛거나 기대어 앉은 가을 오후. 온몸에 흐르는 평화로운 기운에 용기를 얻어 오늘 이후의 삶을 헤아려 본다. 따사로운 햇살까지 더해진 가을하늘이 선물처럼 스며들었다. 참으로 깊은 가을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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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한 평원에서 만난 말 무리가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다. 2019. 몽골. ⓒ임종진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다. 반려로 삼아 직접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TV를 통해서였지만,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을 내달리는 모습을 항상 경탄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서부영화나 국내 역사 드라마 등의 전투 장면 중 이 동물이 “히히힝”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안달이 났었다. 단단해 보이는 데다 수려하기까지 한 근육질 자태에 매혹당한 꼬맹이 시절 내내 나는 스케치북이 닳도록 말 그림을 그려댔다. 성년이 되고 사회생활에 절절거리는 오십 대의 나이까지 이른 지금에야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서 우연히 말 무리를 본 순간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수십마리의 말들이 땅을 굴려 들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몸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멀찍이서 바라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어느새 나는 무리 한가운데로 냅다 뛰어들었다. 건장한 말들이 옷깃을 스치듯이 가까이 왔다가 겨를도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뽀얀 먼지구름이 푸른 공기를 뒤엎었고 거친 숨소리들은 급기야 온몸이 짜릿하게 곧추서게 했다.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을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소년이 된 듯 잃어버린 동심이 되살아나는 특별한 느낌을 얻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말 무리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눌렀다. 짙푸른 하늘과 드넓은 대지 안의 말 무리. 대자연이 내어준 장엄한 풍경의 일부라도 된 양 우쭐해진 가슴을 다독이고는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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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송이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들풀의 힘을 느끼다. 2019. ⓒ임종진


승부욕에 빠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학업을 이루는 시기에도 친구들과 경쟁해서 앞서겠다는 생각을 크게 한 적이 없다. 아둔한 머리 탓이기도 하지만 일등이라는 지위 역시 남의 것이라 여길 뿐 피곤하게 거기까지 갈 욕심도 없었다.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날을 새운 기억도 많지 않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00m 달리기를 해도 악착같은 경쟁심보다는 뜀박질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등수가 뒤처져도 그러려니 했다. 나름 경쟁자들 틈 속에서 뛰어야 했던 직장전선에 있을 때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천성적으로 남과 승부를 내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싫다. 맨 앞자리보다는 중간쯤이 편하고 조직의 리더보다는 보좌의 역할을 하는 것에 더 만족한다. 


그렇다고 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등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들이는 행복한 몰입 자체를 좋아할 뿐이다. 그러니 높은 자리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부려 남의 명망을 탐할 일이 별로 없다. 


남들 잘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박수를 치며 웃는 일이 즐겁다. 나이 쉰을 넘겨서도 화려한 꽃송이보다는 그 꽃을 돋보이게 하는 주변의 들풀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중심보다는 주변의 아름다움이 내게는 더 크다. 주인공이 되기보다 뒷자리에 설 때가 여전히 맞춤옷을 입은 듯 편안하기만 하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내 성정에 만족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등바등하며 상대를 견주어 바라보지 않는 지금의 삶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런 내 생각이 바뀌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된다면 참 다행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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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 철원역 터의 끊어진 철로 위에 겨울눈이 쌓여 있다. 철원. 2011. ⓒ임종진


철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된 뒤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제국주의 일본이 이 땅을 강점하던 시절 지어져 그들을 위해 쓰였음을 역사는 모르지 않는다. 서울 용산에서 시작해 북녘땅 원산까지 223.7㎞에 이르는 경원선의 중간역이자 금강산 내금강까지 116.6㎞ 철로의 시발점으로 남과 북을 아우르는 교통요지였다. 당연히 그 시기 건설된 모든 철길의 이용목적에 ‘걸맞게’ 철원역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80명에 이르는 역무원들이 종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반도 전역에서 수탈한 물자들의 반출처이자 일본 본토의 배를 불리는 젖줄기로서 그 역할이 참으로 지대했을 터다. 땅을 빼앗은 이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땅을 빼앗긴 이들은 절망의 눈빛으로 머문 자리. 땅은 되찾았으나 갈라진 반도 한가운데에서 쓰임새를 잃은 지 오래인 자리.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던 몇 해 전 어느 겨울날 철원역 터에는 적막한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여러 연결 선로들이 얽힌 흔적만이 이곳이 기차역이었음을 알게 할 뿐이었다. 


괜한 상념으로 서성거리던 걸음은 칼로 자른 듯 뚝 끊긴 철길 앞에 이르러 저절로 멈추게 됐다. 쌓인 눈에 덮인 탓에 겨우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땅을 잃었던 그 시절 바로 여기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을 이들이 상념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자리를 가벼이 스쳐가기엔 송구스러운 마음이 컸다. 몇 해 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이 선하다. 그 자리에서 왜 그들을 떠올렸을까. 다시 제국주의 망령이 춤을 추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이 기억이 되살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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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미아 3동 일대 한 재개발지역의 풍경. 2019. ⓒ 임종진


큰길 건너 동네 안 풍경이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신호를 보내왔다. 손으로 휘갈긴 듯 붉은색 글씨로 거칠게 쓰인 현수막들이 한때 이곳의 절박했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서울 우이경전철 삼양역 1번 출구 앞 골목길 초입. 우연히 접한 이끌림의 기운에 응해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고 뒤틀어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어지러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삭막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전제품들, 전깃줄에 흉물스럽게 걸쳐진 전기매트, 자물쇠를 채운 것도 모자라 나무판자에 X자 형태로 못이 박힌 채 봉쇄된 모든 주택과 상가건물들, 벽과 담장 현관문마다 붙여진 출입금지 경고문, 험한 욕설과 이별의 서운함이 담긴 낙서들, 쓰임새를 잃은 채 머루포도 잎새 넝쿨로 완전히 뒤덮인 CCTV 그리고 사람 키 가까운 높이로 온 사방 발 디딜 데를 다 막고 자란 잡초들까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동네 한가운데 선 나는 마치 영화 속 버려진 도시의 한복판에 홀로 선 듯 외롭고 허전했다. 두려움과 고립감에 뒤엉킨 낯선 느낌에 당혹해서일까.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드는 파리 떼들을 핑계 삼아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왔다. 


차량과 행인들이 빚은 소음이 반갑게 느껴질 즈음 한 상가 사이 골목을 가로막은 의자 하나가 눈에 들었다. 사람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 오래도록 주인장의 쉴 몸을 지탱해 주었을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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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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