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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9.02.15 진실이 있는 자리
  2. 2019.02.08 사진 한 장 느낌 둘
  3. 2019.02.01 천 개 언덕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
  4. 2019.01.25 나의 방
  5. 2019.01.18 남영동 대공분실의 숨겨진 주인공
  6. 2019.01.11 따뜻한 겨울
  7. 2019.01.04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

2016년 3월23일. 자신을 고문했던 505보안대를 찾은 5·18유공자 이성전씨가 36년 만에 지하 고문실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딛고 있다. ⓒ임종진


“저게 뭐이냐믄 나를 의자에 앉혀 묶어놓고 몇 시간씩 벽을 보게 하고 고문하던 그 자리요. 암튼 밤낮으로 맞고 터지고 그랬으니께! 참말로 나도 여그서 죽겄구나 싶응거이 반항은 생각도 못혔제.” 한 낡고 오래된 건물 지하계단에 내려선 이성전씨(70)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시의 기억을 토로했다. 몇 해 전 자신을 고문했던 ‘505보안대’를 처음 찾아간 그는 훼손되고 억압되던 ‘자기’를 직면했다. 칠성판에 묶인 채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으로 몸서리치던 자신을 36년 만에 다시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80년 오월 당시 시민군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들을 오가며 온갖 고문수사를 받았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고문에 의한 뇌졸중으로 몸의 반쪽까지 마비된 상황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매진해 온 이씨는 최근 다시 절망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얼마 전 오월정신을 폄훼하는 일부 정치권력자들의 국회 발언이 알려진 직후였다. 그는 ‘부서진 몸이라도 벌떡 일으켜 역사의 진실을 남기는 일에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지팡이를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겨우 삶의 의지를 회복해 가던 터에 또다시 분노와 좌절감으로 치를 떨게 된 것이다. 진실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신의 몸을 강제적으로 유린당했던 이들에게 회복의 이유이자 살아갈 명분이다. 내년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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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상황 하나. 사진 속 누군가의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거나 한 점 잡숴 봐아! 배고프잖여어?” 오랜만에 만난 옛 지인을 향한 반가움 가득하게 건네셨을 말인사가 그대로 들렸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우셨던 듯 쑤욱 팔을 내밀어 가래떡 한 점을 권하시는 어머니의 온정이 방앗간의 후끈한 열기를 더욱 채워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가진 기운이 모락모락 따사롭기만 했다.

 

전남 장흥군 장평면 선정리의 동네 방앗간에서 조희철씨가 찍은 어머니의 모습. 2013·12.

 

상황 둘. 이 사진을 찍은 당사자이자 주인공 어머니 아들의 마음도 말을 걸어왔다. “아휴! 초점도 나가고 빛 노출도 안 맞고. 엉망이네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을 놓다가 부랴부랴 셔터부터 눌렀다는 그는 내심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엉망일 이유도 잘 못 찍은 사진도 아닌, 사진 자체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눈길이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에둘러 표현한 아쉬움마저 당신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2013년 12월28일 오전. 한 시골 동네 방앗간의 소박한 풍경이다. 관악구청 주무관으로 있는 조희철씨(46)는 울컥거리는 감동이 있는 그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로한 두 부모님을 가슴에 담는 시간을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그사이 부친은 임종하셨지만 올해 여든이 되신 위질순 어머니는 평생 하시던 대로 여전히 농사일로 소일하신다. 지금까지 희철씨의 사진들에는 무엇이 담겨졌을까. 몸과 마음을 함께 들일 때 사진은 도구가 아니라 사랑이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진은 사랑’이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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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커피모종을 다듬고 있는 쿠카무커피협동조합 농부들. 르완다. 2018. ⓒ 임종진

 

‘천 개 언덕의 나라’로 불리는 곳이 있다. 해발 1500m의 고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국토가 수많은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데다 그 모습이 구름언덕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에 콕 끼어 있는 이 작은 나라 ‘르완다’의 역사는 기구하다. 서구 열강의 분열적 식민지배로 심각한 민족 간 갈등을 겪으며 수백만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던 가슴 아픈 내전의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몇 장의 사진들은 송곳처럼 가슴에 박혀 오래도록 남아 있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딛게 된 날 아련한 감흥이 먼저 일렁였다. 얼굴을 스치는 사람들마다 같은 느낌이 반복되었다. 과거의 상처에 기댔던 아픈 마음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천혜의 지역적 특성으로 커피 재배에 최적이라는 르완다의 시골 마을들을 두루 살피던 중, 수도 키갈리에서 서쪽으로 다섯 시간을 달린 뒤 큰 호수까지 건너 도착한 쿠카무 지역의 한 농장 풍경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손가락 마디마디 주름 가득한 이들이 주거니 받거니 손을 나누는 모습이 평화롭게 다가왔다. 커피모종을 매만지며 일일이 물을 주거나 섬세하게 모종을 다루는 솜씨는 정성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서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그들의 몸짓에 고개를 잠시 숙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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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삼척고정간첩조작사건 고문피해자 고 김태룡씨가 처음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찍은 사진. 2017.2.


38년 만에 다시 바라본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 창문. 지난주 이야기의 주인공 고 김태룡씨가 생전에 직접 찍은 사진이다. 처음에 그는 자신에게 고문수사가 행해졌던 취조실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욕조와 세면대, 침대 등 고문도구로 쓰인 내부 시설 일체가 대부분의 모든 취조실에서 사라져 있기 때문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으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509호를 자신의 방이라 ‘우기는’ 촌극도 있었다. 


그는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당시 수사관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 겨우 주먹 하나 들어갈 넓이의 저 창문에 얼굴을 댔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가늠할 길 없는 이곳이 전철역 어디쯤이구나 싶었다던 기억. 열다섯 개의 취조실 중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은 서쪽 끝부분에만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방’을 찾았다. 온몸이 해체되는 고통이었다는 짧은 증언이 좁은 내부를 흔들었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다가 난데없이 고정간첩이 되어 ‘시커먼’ 차림의 기관원들에게 끌려갔던 곳. 자신만을 바라보던 순한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과도 헤어져야 했던 잃어버린 세월이 시작된 곳. 그곳을 계속 마주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억누른 공간과 끊임없이 ‘직면’하면서 도리어 안정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실로 당당하고 용감했다. 두려움과 분노를 조금씩 덜어내면서 되살아난 그의 웃음은 젊은 청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맑았다. 허망하게 명을 접은 고인의 삶을 기리며 그가 보여준 생의 의지를 되새겨 본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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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대공분실을 다시 찾아 자신이 고문당했던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고 김태룡씨. 2017.

 

영화 <1987>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지 않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이곳은 32년 전 대학생인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사망한 곳이면서, 오래도록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수사를 빙자한 고문으로 극심한 고통이 가해진 비극의 현장이다. 평소 찾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던 이곳은 영화가 ‘뜬’ 후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개봉 이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979년 삼척고정간첩사건 피해자 고 김태룡씨. 그는 군부정권 시기 수도 없이 조작된 간첩사건의 한 희생양이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받은 실제 당사자다. 간첩이라는 사회적 매장의 그늘 아래 모진 삶을 살아온 그는 2017년 2월 38년 만에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치욕스러운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던 그는 격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을 토해 냈었다. 이후 반복적으로 현장을 찾으면서 심리적 트라우마를 덜어내기까지 그가 보여준 자기회복의 과정은 처연하면서도 대단한 용기 그 자체였다. 대법원 무죄판결로 간첩의 오명을 벗어내기도 했다.

 

온전히 자기 삶의 가치를 회복해가던 그는 지난해 말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또 다른 ‘김태룡’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그를 기억하고 싶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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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국내외 여기저기 인연 닿는 대로 다닐 때 종종 누군가의 어머니들과 수다를 떨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만히 숨을 교환하며 그들의 나직한 음성과 몸짓에 집중하다 보면 눈과 귀부터 들뜨기 마련이다. 어머니들은 낯선 이방인이 쑥스럽게 내민 손을 넉넉하게 품어주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자식이라도 된 듯이 아기웃음을 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만난 누군가의 어머니들을 내 어미 못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상황에 따라 함께 기뻐하거나 아파하기도 하고 웃거나 울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숨소리를 듣는다. 


1월은 참 춥다. 겨울 한가운데이니 당연한 소리인데 몇 겹의 옷을 껴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몸보다는 가슴에 고인 찬바람이 더 시린 이유는 그리움 탓이다. 


2년 전 이맘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늘 ‘아줌마’의 젊은 형상으로 남아 있으려니 생각했는데 어느새 할머니의 모습이시더니 여든네 해의 삶을 거두시고는 급작스레 먼 길을 떠나셨다. 때마다 “밥은?” 하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고스란히 여운으로 남아 있는데 어째 겨울바람이 비수처럼 날카롭다. 


잠시 어미 품이 그리워 옛 추억들을 들추다가 15년 전 고향 들녘의 숲가에서 찍은 어머니의 흑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앉으셔서는 어떤 상념에 빠져 한동안 말없이 계시던 어머니. 문득 그때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진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가 그립다.


<임종진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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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잠시 걸음을 멈췄다. 홀리듯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 양손에 낡은 사진앨범을 든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앨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과 탄식의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세월 가득한 당신의 뺨도 발그레 웃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진앨범 빼곡하게 가족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무에 그리 즐거우셨던 걸까. 내친김에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방긋 웃어댔더니 여든세 해를 살아오셨다는 ‘플로라 링가하르’ 할머니의 얼굴에 반가움이 더해진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47㎞ 떨어진 ‘사말 바시아오’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2013년 태풍 ‘하이옌’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이 조성된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신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모두 나갔고 가끔 찾아온단다. 적적한 삶 속에서 잠시 추억을 되살려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 낡은 사진앨범을 고이 쥐고 있는 당신의 굽은 손마디에 한없이 눈길이 머문다. 더 이상 훼방꾼이 되고 싶지 않아 마당을 벗어나는데 할머니는 다시 앨범 속으로 눈을 묻으며 웃고 계셨다.

 

세상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출 때가 그렇게 있다. 시선이 고인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 별다를 것 없는 일이건만 가슴이 뜨끈해지는 특별한 순간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누군가의 ‘오늘 하루’는 평범하지만 늘 특별하다.

 

<임종진 | 사진작가·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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