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4159번지의 방치된 땅에 솟은 듯 있는 봉우리. 2019. 제주. ⓒ임종진
땅이 우는 것을 처음 봤다. 요동 하나 없이 가만히 ‘서서’ 분명 울고 있었다(라고 느껴졌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모른 척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시선을 고정한 채 나 또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허허벌판에 내쳐진 듯 보이는 몰골을 보며 이 땅이 토해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 한라산 아래 중산간을 이루는 조금 솟은 평지였거나 작은 둔덕이었으나, 최근 개발업자들에 의해 사정없이 파헤쳐지다가 어인 일이지 살아남은 자연 원형의 일부였다. 생긴 모습은 언뜻 소박하게 솟은 작은 봉우리 같았다. 대략 2~3m의 높이로 둘레는 양팔을 벌려 두어 번 돌면 가늠할 만했다. 굉음 속에 마구 깎이고 갉혀나갔을 순간들이 고스란히 눈에 보여서일까. 참으로 처연하고 구슬펐다. 이대로 방치된 채 오랜 시간이 흘러왔다. 한순간에 작은 봉우리가 된 이 땅은 수년이 흐르는 동안 홀로 비와 바람을 견디고 서서 이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바로 인근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람사르습지가 있는 이 땅 주변으로 이런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개발광풍이 한번 몰아친 곳이어서일까. 소식을 들으니 앞으로 이 지역 총 58만㎡ 부지에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삽질이 시작된다면 아마 이 봉우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땅의 눈물은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멈추게 될까.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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