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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두 사람

해변에 앉아 여유로이 평온에 젖어 있는 아내와 딸. 코타키나발루. 2017. ⓒ임종진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사람의 밀착감이 한몸으로 느껴질 만큼 보기에 좋았다. 요동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엄마가 아이와 눈빛을 맞추는 정도의 움직임이 잠깐 있기는 했으나 몸짓의 변화가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고요함에 거의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 나는 없지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이 간간이 뒤를 돌아 내 눈빛에 섞이기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두 사람은 파도 건너 저 먼바다 끝을 향해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내 나는 두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말을 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디를 보든 무엇을 보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뿌듯한 평화가 내 감정을 일렁이게 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아늑함에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몰입의 즐거움은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바다의 파열음에 시달리기도 했다. 문득문득 양 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유혹도 있었다. 그 덕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이 하염없이 커져갔다. 정지된 화면처럼 숨죽인 고요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앉아 있을 뿐 우리 셋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곁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나의 아내와 딸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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