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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장애·비장애 경계 허문 예술가들

내가 사는 마을은 공기 맑고 조용한 데다 교통이 편리하여 쉼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이들이 많이 찾는다. 요양원을 비롯한 요양병원, 노인복지시설이 여럿 터를 잡고 있고, 장애인복지관 및 발달장애인 직업재활기관 역시 다수 둥지를 틀고 있다.


좁은 동네 특성상 난 그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조금의 불편함도 느낀 적이 없다. 간혹 방죽을 걷다 어정쩡한 인사를 나눈 경우는 있어도 대개는 숱하게 스치는 타인과 나처럼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존재이거나 이웃으로 여길 뿐이다.


신이피·최일준·홍세진 공동작품 ‘병풍풍경’, 영상·설치·회화, 2019


그러나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생각마저 같은 건 아닌 듯싶다.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 그들이 마을 분위기를 망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왕왕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시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는 소문에 설립 반대 시위까지 벌일 태세이다. 집값이 떨어지고 유배지처럼 인식된다는 이유이다.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복지도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거북해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내 이웃보다 내 집값을 먼저 걱정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일부 주민에게 장애인시설은 납골당이나 화장터처럼 기피·혐오의 대상인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정말 집값이 떨어질까. 2017년 교육부가 전국의 특수학교 167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전체 16개 지역 중 14개 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에 변화가 없었고, 나머지 2개 지역은 오히려 땅값이 올랐다. 결국 주민들의 장애인학교 반대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특수학교를 포함한 장애인 시설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시설로 인해 집값이 하락한다는 주장의 실체는 ‘편견’이다.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정상과 정상으로 구분하는 미성숙한 의식이 편견을 확장시킨다. 여기엔 동등한 인격체로서 공동공존의 개념은 들어 있지 않다. ‘차별’이라는 형태 없는 폭력만이 부유할 따름이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문화재단이 기획한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의 ‘공동창작 워크숍’은 고유한 조형방식을 넘어 새로운 창작방식과 예술적 가치탐구의 과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유무형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조경재, 김환, 신이피, 홍세진 등 장애 및 비장애예술가 7명이 함께한 지난 5개월간의 기록은 심신의 장애보다 무서운 부정적 편견에 따른 사회적 장애를 공동작품을 통해 스스로 해체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6일 개막한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를 주제로 한 전시는 인간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란 배려와 존중임을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무대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개념을 시각예술로 재확인시킨 공동창작 워크숍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다양성 존중에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내적으론 ‘동등한 예술생산자’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재조성하고, 외적으론 대중들이 나와 다른 삶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는 융합의 길을 제시했다. 참여 작가 중 한명인 최챈주의 말처럼 장애인을 낯선 사람 혹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 같이하는 사람으로 대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훨씬 건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물론 그때가 오면 장애인 교육시설로 인해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