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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욕먹어도 싼 ‘지역 상징 조형물’

청계천 복원 1주년 기념 조형물 ‘스프링(Spring)’은 높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위용에 약 35억원이라는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서울시 최악의 환경조형물이라는 오명도 안고 있다. 세계적인 작가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만들었음에도 도시 정체성과 청계천이라는 장소성 및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강남구 싸이 ‘말춤’ 조각도 곧잘 도시 흉물 상위에 오른다. 싹둑 잘린 손목 형상의 이 황금색 ‘엽기조각’은 강남구의 기대와는 달리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커녕 심미성조차 심어주지 못한다. 정책 관계자들의 단순한 발상과 미숙한 창의성이 낳은 결과이다.


클래스 올덴버그, ‘스프링(Spring)’, 2006, 청계천 ⓒ홍경한


이들 조형물 외에도 한국엔 보편적 대중 정서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먼 조형물이 넘쳐난다. 공공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인들의 전시행정 사례이자 혈세 낭비로 인해 욕먹어도 싼 조형물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지역 상징 조형물’에 이르면 더욱 심해진다.


경북 군위군의 ‘대추화장실’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공중화장실 겸 조형물이다. 특산품인 대추를 홍보하기 위해 2016년 약 7억원의 예산을 들여 세웠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위치해 파리만 날린다. 강원도 고성군의 ‘항아리 조형물 겸 건축물’의 처지도 ‘대추화장실’과 유사하다. 논두렁에 자리한 16m짜리 이 기괴한 조형물엔 무려 15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됐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뿐더러 관람객도 드물다.


이 밖에 밥도 못 짓는 괴산군의 ‘대형 무쇠솥’(약 5억원)을 비롯해, 전복산업의 활력을 돋우고 관광객들에게 복의 기운을 전달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완도군의 ‘황금전복’ 조형물(약 2억원), 성의 상품화라는 논란에 휩싸인 강원 인제군 소양강 둔치의 황금 ‘마릴린 먼로 동상’(5500만원) 등도 세금 누수의 대표적 사례이다. 전북 고창군의 ‘주꾸미 미끄럼틀’(약 5억원)이나, 읍·면 상징 대형 포도조형물과 대형 붓 등을 잇달아 설치한 화순군(약 17억원)도 예외는 아니다. 모두 내 돈이라면 저랬을까 싶은 것들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조악하고 상상력 부족한 지역 상징 조형물들은 계속 만들어질 예정이다. 전북 무주군이 추진 중인 ‘태권브이’ 조형물과 인천 월미도의 ‘사이다병’ 조형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재정자립도 최하위인 신안군의 100억원짜리 ‘황금 바둑판’, 비난 여론에 밀려 현재는 다소 잠잠해진 1000억원짜리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도 동일한 범주에 든다.


지자체들이 상징 조형물 건립에 혈안인 데에는 지자체장의 임기 중 성과주의와 근거 없는 경제 진흥 낙관론이 있다. 그들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프라 구축 없이 상징 조형물만 세우면 관광·홍보·경제 활성화가 절로 될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 상징 조형물은 무관심의 대상이자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채 지자체장 개인 상징물로 그치기 일쑤다.


지자체 관계자들의 수준 낮은 미의식도 문제다. 미술에 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유치한 지역 상징 조형물들을 보면 정치를 한다는 이들의 인문학적 수준이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지역 상징 조형물에 내재된 고질적 병폐를 해결하려면 사용자 관점을 우선하는 정책 관계자들의 의식 변화가 이뤄져야 하며, 공동체에 의견을 묻고 협업하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릇된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감시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적지 않은 세금을 쓰면서도 욕이나 먹는 지역 상징 조형물의 난립을 막을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