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명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부터 중년의 어른들까지 앞사람의 얼굴이 뒷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포즈를 취했다.
그들 앞에는 이민 가방을 포함해 크고 작은 짐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굳이 자기 앞에 둔 짐들이 그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무거운 짐 뒤에서 그들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온 베트남 난민들, 1982년 5월20일, 경향신문사
1982년 5월20일, 베트남 난민 중 41명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부산 난민보호소에 수용됐던 이들은 세 차례에 걸쳐 부산항으로 들어온 베트남 난민 168명 중 일부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전 재산이었을 이민 가방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머물던 부산 난민보호소는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재송동 1008번지에서 운영됐다. 이곳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거나, 미국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났다. 1993년 역할을 다한 부산 난민보호소에서는 난민 환송식과 현판 하강식이 열렸다.
그날 뉴질랜드로 떠날 한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인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제2의 조국’에서 요즘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자가 70만명이 넘는다는 걸 알까? 70만 숫자 앞에서 41명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오래전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