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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

20세기 그들의 이상과 21세기 우리의 망상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와 어떠한 기능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 위대한 근대 건축가로 칭송받는 르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어로에의 주된 건축적 사상이다. 지난 20세기 건축은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 두 가지 생각에 기초했다. 전자는 철저한 기능 분리에 따른 고밀도화, 후자는 특색 없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모습으로 우리의 거주 풍경을 지배하였다.


르코르뷔지에의 부아쟁 계획(1925·왼쪽 사진)과 미스 반데어로에의 프리드리히가 계획(1922)


르코르뷔지에는 1925년 역사 도시 파리 한복판에 거대한 간선도로에 인접하고 빛과 녹음이 풍부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을 상상하고 설계했다. 그는 이를 이상적인 미래 도시로 보았다. 이보다 3년 앞선 1922년 미스 반데어로에는 베를린의 낮은 석조 건물들 사이에 유리로 된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초고층 건축물을 제시했다. 두 작품 모두 어느 건축가도 시도한 적이 없는 ‘새로운 건축’ 그 자체였다. 양대 건축가의 1920년대 이념들은 1950년대 초반 마르세유와 시카고에서 실현되었다. 


우리의 고층 아파트는 1964년 비로소 처음 엘리베이터가 들어간 11층 힐탑아파트를 효시로 1970년대 대단지 고층인 반포주공, 잠실 주공 등이 완공됐다. 우리나라의 주택 갱신주기는 30년으로 세계적으로 매우 짧다. 실제 구조물 수명보다도 지난 시대의 개발 우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잠실 5구역이나 중계동 백사마을 재개발의 경우 조합과 국제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의 마찰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함께 사는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치밀한 고민은 소수의 조합이 내세우는 편향된 이기심 앞에 진통을 겪고 있다. 건축이 가지는 공적 가치와 사유재산권 사이 갈등 속 우리의 사회적 합의는 아직 요원할 뿐이다. 


양적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난 시대에 이러한 개발에 의한 고층 고밀화는 큰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서울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은 100년 전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꿈의 결실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모든 도시민의 생활환경이나 복지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점차 줄어드는 인구에 지속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모델일까? 


그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보다 높게’는 ‘보다 싸고 폭넓게 제공될 수 있음’이 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다 높게’는 단지 ‘보다 비싸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어디서나 똑같은 방식의 외관이 유리로 된 고층 아파트가 유행이다. 더 화려하게 보여야 내 아파트가 더 좋고 비싸고 가치 있다는 잘못된 망상. 땅의 문맥, 지역의 특색을 무시한 어디서나 균질하게 진행되는 방식은 도시의 특성과 활기를 평준화시키고 나아가 사람들의 표정까지 균질화시킨다. 


‘보다 (나만) 편하게, (남들)보다 높이, 보다 화려하게’ 프레임만으로는 인간은 결코 함께 행복해질 수 없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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