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뉴욕과 런던 도심 일대 건물 옥상에서 목욕과 영화감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목욕탕 극장(Hot tub cinema) 행사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이 이색 행사는 방치되었던 건물 옥상을 시민에게 개방하여 소형 튜브 욕조를 다수 설치하고 그 안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도시 야경을 배경으로 영화와 음료를 즐기는 것이었다. 새로운 문화 플랫폼으로서 옥상이 수용하는 콘텐츠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며,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 또한 한계가 없다.
하늘 문화 마당으로서 옥상(콜라주).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20세기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종을 이루었던 경사지붕이 역사적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바로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방수법의 대두였다. 전자는 평활하고 거주성이 주어진 옥상이 가능토록, 후자 덕분에 빗물이 머물지 못하는 가파른 물매의 경사지붕이 필요 없게끔 만들었다. 건축사적으로 분명 지붕이 진화한 옥상은 부재의 공간이었다. 건축행위에서 옥상은 목적 결과물이 아닌 부산물적 공간이기도 하다. 또일상에서 길을 걷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옥상을 대면할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옥상의 존재를 잊고 살고 있다.
옥상은 자연, 경관과 문화, 공동체의 가치를 배양하는 장소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지난 세월 숨가쁘게 도시가 개발되면서 마당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그것은 만남과 소통, 사유와 휴식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사라진 마당의 기능을 다시 옥상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해내는 하늘 마당이 될 수 있다.
천년고도 서울을 예로 들어보자. 도처에 산재하는 옛길들과 하천, 문화자원들을 방치된 옥상과 결부하면 매력적인 도시 활력소가 될 것이다. 남산과 종묘를 남북으로 잇는 세운상가 옥상, 종묘와 북악을 배경으로 인사동과 익선동의 옛 도시조직을 동서로 잇는 낙원상가 옥상, 청계천과 동대문을 마주하는 평화시장 옥상 등. 그러한 옥상에서 만나는 수려한 자연풍경과 역사경관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여가 문화활동의 터전으로 만든다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차가 아닌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머물며 쉬고 바라보는 장소가 필요하다. 시민을 위해 곳곳에 마련된 하늘 마당은 보행을 위한 도시 서울을 완성하는 기저가 될 것이다. 살아 있는 역사의 전망대이자 시민을 위해 열린 문화의 마당, 또한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 거점으로서 도시의 마지막 미답지인 옥상에 대한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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