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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6.07 너의 집이자 우리 모두의 도시
  2. 2019.05.09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은 가깝다
  3. 2019.01.03 설계공모전의 ‘웃픈’ 추억

역사도시 공주의 구도심 속 하천변 보행로 한쪽에 주민을 위한 한점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는 업무시설 제민천 앱스(Apse). ⓒ신경섭


만약 당신이 교도소를 설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건축가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우선 당신은 감옥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범죄자를 벌주기 위한 장소일 것인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그들이 악한 일을 못하게 격리하는 장소이어야 할 것인가? 혹은 나쁜 사람들이 치료되어 구제될 수 있는 장소여야 할 것인가? 물론 각 결정은 전혀 다른 모습의 설계 방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첫째 것은 냉혹한 지하 감옥과 같은 결과일 것이고, 두 번째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창고, 반면에 셋째 것은 아마 자연 속의 요양소의 성질과도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의 결정은 건물이 완성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교도관들뿐 아니라 수천명에 달하는 죄인을 인간적으로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요구사항뿐만이 아니라 한편으로 그 시대와 사회를 보아야 한다. 건축사의 설계 행위에는 변호사가 지녀야 할 사회정의나 의사의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과 맞먹는 공공적 가치가 있다.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을 하지만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하는 게 바른 윤리관이다. 왜냐면, 건축주가 자기 재산으로 개인의 건물을 짓는다 해도 길가는 행인이나 주변 사람도 그 공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시민들의 이익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건축물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물이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0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며 행한 연설의 한 부분이다. 건축과 우리 삶의 관계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 없다. 건축 대신 책, 음악, 영화, 음식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창조 행위로 바꾸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건축은 우리의 생활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게 되면 좋은 사람이 되게 마련이고 좋은 도시공간에서 살면 서로 악다구니 하지 않고 공감하는 소통사회가 되기 마련이다.


<조진만 건축가>

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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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가난한 가정에서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난 소년의 부모는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울 형편이 못되어 첫째를 외할머니에게 입적시킨다. 


소년은 자라면서 건축가를 꿈꾸었다. 할머니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 형편에 성적도 좋지 않아 대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접지 않은 채 공고 졸업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건축 책을 탐독하였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은 한참 부족했다. 매일 선 채로 보다 남이 사갈까 살며시 책방 구석 책더미 아래 숨기고 돌아섰다. 다음 날 책이 밖으로 나와 있으면 다시 책을 숨기는 일을 반복했다. 


안도 다다오(사진 Nobuyosho Araki)와 빛의 교회 1989(사진 Mitsuo Matsuoka).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기어코 그 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책 속의 도면과 스케치를 필사적으로 베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20대에 막노동을 하며 모은 돈으로 유럽으로 떠나 작품집 속의 건축물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오감을 총동원해 소화하였다. 훗날 그는 안도 다다오란 이름의 건축가로 세계 곳곳에 건축을 만들고 하버드대와 도쿄대의 강단에 섰다.


그의 인생은 그의 건축보다 더 흥미롭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아무런 배경도 없이 혼자 건축가로 일했으니 순조로울 리가 없다.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하나를 움켜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늘 역경 속에 있었고, 그 역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궁리하며 활로를 찾아내왔다. 그는 10년 전 암으로 무려 여섯 개의 장기를 적출하였다. 웬만한 철인이라도 움츠러들 법하지만 늘 그래왔듯 멈춤 없이 전진하는 중이다. 


그는 자서전 말미에 다음과 같이 인생의 의미를 짚고 있다. “가령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


<조진만 건축가>

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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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서울시청사-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독일 국회의사당-파리 퐁피두센터-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차이점으로 전자는 20세기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후자는 20세기 인류문화유산. 공통점은 모두 설계 공모전을 통해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한 해 세금을 들여 짓는 공공건축물들의 총공사비는 약 30조원에 육박한다. 상당수가 설계 공모를 통하고 있지만 명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웃픈’ 역사적 사건을 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931년 스탈린은 레닌 사망 후 입지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에트 의회의 건축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에 착수한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를 필두로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획기적인 제안들이 쏟아졌다. 두 번에 걸친 공모 과정은 불투명했고 당선작으로 무명에 가까운 자국 건축가팀이 선정된다.

 

19세기 러시아 모스크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왼쪽)과 2000년 복원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이는 이후 정부가 설계과정에 개입하기 위함이었다. 확정된 설계안은 무려 100층 495m 규모. 당시 최고 381m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도 비교 불가했다. 다음은 건물이 들어설 부지 확보가 문제였다. 당시 모스크바 중심부는 역사적인 건물들로 넓은 빈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낡은 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던 그리스도 대성당을 즉각적으로 폭파한다. 40년간 축조한 19세기 유적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기초공사를 시작하지만, 곧바로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건물의 기초는 해체되어 대전차 방어용으로, 나머지 자재들은 전후 건물들 복구에 사용되고 만다. 새 정부는 스탈린의 과장된 기획의 피로감에 계획을 백지화한다. 성당이 철거된 공터는 쓰레기장으로 방치되어 골칫거리가 되었다. 거대 부지를 적은 예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뜬금없이 야외 수영장으로 탈바꿈 시킨다.

 

시간이 흘러 지난 시대의 반달리즘을 자성하며 원래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다시 짓자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결국 1994년 재건축을 시작하여 스탈린의 망상을 뒤로한 채 18세기 모습을 회복했다. 70년간 일어난 이 일련의 해프닝은 어마한 삽질이 아닐 수 없다.

 

근래 세종시의 정부 신청사와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설계 공모전 결과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훌륭한 설계는 지어진 후 100년을 지나서도 기능한다. 발주자와 설계자는 100년 후 쓰임까지 의무가 있지만, 미래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아이디어를 모색하기 위해 공모를 하는 것이다. 근시안적 조건들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그것이 적당히 만들어 쓰다 부수고 다시 짓는 태도와 건축을 지역의 문화를 상징하는 미래 인류의 자산으로 만들고자 하는 태도의 차이일 것이다. 새로운 건축의 체험을 통해 우리들의 의식은 변화하고 사회는 발전한다. 우리는 지금 시대의 건축 공모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미래에 전할 것인가. 그것은 분명히 후대에 기록될 것이다.

 

<조진만 | 건축가>

 

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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