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보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180×225㎝ 크기로 전시장에 걸린다.
대형 프린트의 위압감은 본능적으로 이 대상을 육중한 금속성 물질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패너로 조이는 6각 너트란 구경이 밀리미터 단위이거나 커봤자 엄지손가락 마디 정도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물과 그 사물을 확대시킨 사진의 간극은 생각보다 커서, 시각적 긴장감과 함께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유도한다. 이렇듯 EH(김경태)가 사진가로서 갖고 있는 관심은 어떤 사물이 품고 있는 본연의 물성이다. 대신 사진을 통해 특정 장소나 시간에 얽힌 기억을 얘기하는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서사가 없는 그의 사진은 차갑고 중립적이면서도, 대상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에게 사진은 카메라라는 광학 기계와 분리시킬 수 없는 쌍의 개념이기도 하다. 렌즈는 우리 눈이 미처 놓치고 있던 혹은 능력 밖이어서 볼 수 없던 차원까지를 가시화시켜 준다.
그는 처음에는 죽어 있는 작은 곤충을 가까이에서 찍으며 접사의 세계와 마주했다. 그 뒤로는 취미로 모으던 작은 돌들의 입자와 색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터득해갔다.
아주 미세하게 카메라의 위치나 렌즈의 초점을 조정해가면서 때로는 수백 장의 이미지를 촬영한 뒤, 한 장으로 재구성해낸다. 그 결과 실제와는 다른 원근감을 얻은 대상은 강렬한 디테일과 입체감을 드러내면서도 깊이를 잃어버린 2차원의 도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극사실의 정점이자 광학 세계가 탄생시킨 비현실적인 이미지 같기도 한 양극성은 계속해서 긴장감을 발산시킨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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