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세상은 어지러웠다. 4·19 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959년, 나라 밖에서는 쿠바가 혁명을 완수했고 바비 인형이 태어났다. 미국 우주선 익스플로러 6호가 우주에서 찍은 최초의 지구 사진을 인류에게 선물하던 그해, 그들 또한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꽃 시절에 친우를 부여잡고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실제 꽃 시절에 주름살 없이 단아한 꽃다운 나이의 인생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이른 봄, 배경 속 흙바닥은 아직 버석거리는데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사진 한 장 속에서 설레는 봄기운을 맡는다.
전순자씨와 번암 친구들, 1959년
사진가이면서 지역의 시각 자료 수집에도 공을 들여온 전북 전주 서학동사진관의 김지연 관장이 그동안 모은 옛 사진들로 ‘꽃 시절’이라는 전시를 연다. 전시를 위해 사진에 글귀가 남아 있는 것들만을 추려내니 오히려 보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사진은 한때를 붙들어 두기 위한 방편이지만, 흐릿해지는 기억과 함께 사진에 얽힌 이야기도 각색되기 마련이다. 얼굴 가득 생기가 가득한 그날이 단기 4292년 3월5일이었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은 선연하게 남아 있는 글의 힘이다. 대개는 사진을 찍은 이들이 찍힌 이들을 위해 새겨 넣었던 말들은 한 장의 사진을 또 다른 분위기로 이끌고 간다. 예쁘게 쓰려 한 흔적이 역력하나 글씨체가 못나서 안타깝기도 하고, 푸근하고 정감 있는 장면과 달리 써놓은 문구가 너무 비장해서 우습기도 하다. 이 글들은 기억과 기념을 위한 정보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으로 들어온 또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 들어와 그림이 된 문장들로 인해 전라도 번암 아가씨들의 한때는 모두의 그리움으로 남는 꽃 시절이 되었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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