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택, 빈방 0번방 금계동 57, 2015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미술에서는 어둡게 만든 공간이나 상자 안에 구멍을 낸 뒤 밖에서 새들어오는 빛을 따라 맞은편 면에 거꾸로 상이 맺히는 장치를 의미한다. 오래전 화가들이 초벌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한데, 오늘날의 카메라는 이 장치를 간단히 만들기 위한 노력을 거듭한 끝에 태어났다.
조현택은 빈방을 찾아다니며 방 자체를 카메라 옵스큐라로 만들었다. 천을 둘러 암실로 만들고 구멍을 내자 바깥 풍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0번방’이라 이름 붙인 이 방에서 첫 작업의 아이디어와 맞닥뜨렸다. 정작 결과는 성에 차지 않아서, 이미지는 다른 빈방을 전전하며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린 1년 뒤에야 얻어냈다.
생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아 있으되 그마저도 자취를 감출 것 같은 소멸의 공간. 빈방은 기억마저도 망각을 향해가는 어둠의 장소다. 그러나 쇠락 또한 시간이 필요한 법. 방의 축축한 기운을 타고 이끼가 번식하는 그 시간 동안 방문 밖에서는 유채꽃이 피고지고, 바람이 불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정지한 공간과 흐르는 시간, 흩어지는 기억과 다시 솟아나는 생명은 조현택이 빈집에서 목격한 존재의 부조리함이자 이중성이다. 집 앞 유채꽃이 뒤집어진 채로 방 안을 찾아오는 전복은 이런 모순에 동조하는 자연스러운 사건일 뿐이다.
사진은 이 모든 덧없음을 붙들어 그 순간에 영원을 부여한다. 카메라 옵스큐라 안에서는 모든 존재가 상으로만 맺힌다. 빛이 없다면 사라져버릴 허상처럼. 그 잡히지 않는 이미지 혹은 허무한 세계를 붙들어 두는 일이 사진이라고 조현택의 빈방은 일러준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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