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저널리스트 아녜스 데르비. 프랑스 작은 도시에서 양부모의 외동딸이자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 아이로 자랐다. 오랜 망설임 끝에 그녀가 한국에서 자신의 생모를 찾아나선 건 3년 전. 출생의 비밀을 아는 일이 생모와 자신에게 상처가 될까봐 두려웠으나 과연 한국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을 수나 있을는지도 미지수였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가 자신의 입양 서류를 뒤지는 한편, 여러 가지 사연으로 자식을 입양시킨 채 평생 부채감에 시달려온 어머니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 분주함 사이로, 문득 거리에서 엄마와 아이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눈에 밟혔고, 과거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딛고 훌쩍 발전해 버린 한국의 풍경이 낯설어지기도 했다. 발길을 멈추게 한 그 순간들 또한 즐겨 쓰는 낡은 롤라이 필름 카메라에 담겼다. 생모를 찾고자 방송에도 출연했지만 아직 어머니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자신의 입양을 도와준 수녀님을 만나 출생지에 다녀올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작업 중 만난 숱한 어머니들 중에는 생모의 분신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 일련의 과정을 엮은 작업에 ‘으므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Agnes Dherbeys, ‘으므니’ 연작 중 ‘부모미상’, 2013
그렇다면 이제 아버지를 찾아나서야 할 시간. 한국에서의 시간은 길러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깊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 서먹하던 둘의 관계는 더 많이 어색해져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설수록 스스로의 정체성이 프랑스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평범하게 늙어가는 아버지 데르비를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잔잔한 일상을 다룬 작업 ‘은퇴(Retired)’는 은퇴 후 여전히 작은 마을에서 삶의 은퇴를 준비해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헌사다.
한미사진미술관이 이 두 작업을 함께 소개한다. 전시 제목 ‘#K76-3613’은 아녜스의 입양 서류 번호이기도 하다. 아녜스의 한국 이름은 송동희. 그녀의 존재 덕분에 이질적인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지난 시간을 인정받는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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