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토템적 식사

프란시스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1823년


서양미술사에서 사투르누스(로마식 이름, 그리스 신화는 크로노스)는 큰 낫을 든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사투르누스는 그 낫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인간의 소중한 시간을 무자비하게 베어가는 늙은 거인으로 묘사되곤 했던 것. 이 시간의 노인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태초에 혼돈(카오스)에서 가이아(대지의 여신)가 생겨났고,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교접해서 사투르누스를 낳는다. 그러나 가이아가 100개의 팔을 가진 거인들과 외눈박이 거인들을 낳으려고 하자 우라노스가 그들을 땅속에 다시 밀어넣었다. 이런 우라노스의 폭압에 분개한 가이아는 아들 사투르누스를 사주해 우라노스를 낫으로 거세해 죽인다.

우라노스가 죽어가면서 남긴 말 한마디는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게 될 거야”라는 예언이었다. 이 말을 듣고 두려워진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인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집어삼켜버렸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사투르누스도 자기 아들인 제우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고야의 그림은 서양미술사상 가장 처절한 카니발리즘(식인주의)을 보여준다. 어둠 속을 뚫고 튀어나온 사투르누스는 아들의 얼굴과 한쪽 팔을 이미 먹어버렸고,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짐승 같은 포효가 울려나오는 듯하다. 고야는 애초에(결국 지워버렸지만) 이 작품에 사투르누스의 발기한 성기까지 그렸다고 전해진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이 신화는 토템적 의미의 식사를 의미한다. 원시시대, 아들들은 아버지를 먹는 식인행위로 아버지와 동일시하였고, 아버지가 구현하는 힘을 소유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 그림은 아들에게 먹히기 전에 아들을 먹어치우는 행위를 묘사한 거다. 신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 스토리는 사실상 인류 역사의 집단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영원한 숙적 관계에 대한 상징이 담겨 있다. 아비와 아들이기 이전에 남자 대 남자,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관계에 담긴 치명적인 논리 말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