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맞짱 뜰 수 있는 예술

피에트로 페루지노,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39×29㎝, 캔버스에 오일, 1483년

어느 날 아테나는 자기가 만들어 불던 아울로스(aulos: 일종의 피리)를 천궁 아래 낭떠러지로 던져 버린다. 피리를 불면 입이 불룩해지는 것이 여신으로서 여간 민망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 강의 정령이자 반인반수인 마르시아스가 여신이 버린 피리를 줍는다. 입에 대고 불어보니 솔솔 소리가 나는 것이 여간 청명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피리 부는 재미에 푹 빠진 마르시아스는 실력이 급진전을 보이자, 아폴론의 리라 연주보다 자신의 아울로스 연주가 더 낫다고 떠들고 다닌다.

화가 난 아폴론은 미다스왕을 포함한 인간들을 모아놓고 연주대결을 하자고 한다. 벌칙은 지는 자가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 연주가 끝나고 모든 심판들은 아폴론의 리라 연주에 손을 들어준다. 단지 미다스왕, 그러니까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기를 원했던 그 왕만큼은 마르시아스를 승자로 인정한다. 심한 노여움을 느낀 아폴론은 음악을 제대로 들을 줄 모른다며 미다스에게 당나귀 귀를 붙여준다. 마르시아스에게는 생피박리 즉 산 채로 껍질을 벗겨 죽이는 벌을 내린다.

신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가진 이 신화는 고대 이래 수많은 미술작품에 등장한다. 그만큼 화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주제인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의 스승이었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그림은 여느 그림과 좀 다르다. 그만큼 마르시아스를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는 없다. 페루지노는 예술가로서 신의 경지를 추구했고, 그런 까닭에 신에 도전한 마르시아스를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 같다.

보라! 마르시아스는 죽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에 몰두한다. 아폴론의 시선이야 어찌되었건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기예는 예술의 사라지지 않는 귀감이요, 예술가의 비극적인 자유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저기 마르시아스를 향해 날아오는 새들을 보라! 또 그 주변의 꽃들을 보라! 이미 자연의 생명조차 예술가에게 매료되었다. 마르시아스는 죽었지만 승리했다. 예술가의 도전은 무죄!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