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7획, 2018, 캔버스에 템페라, 120×100㎝ ⓒ 송현숙, Zeno X Gallery
캔버스 천 위를 스치는 화가의 붓질은 또 다른 결을 만든다. 한때, 송현숙의 붓질은 삼베나 모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유화보다 맑고 생생한 색을 낸다는 템페라 특유의 딱딱한 색조가 식물성의 담백한 질감에 닿아 있었다. 이제 그의 ‘획’은 식물의 뉘앙스를 넘어 실크 특유의 동물성 광택마저 담는다. 하늘과 땅을 가르는 하나의 붓질은 농사를 지으며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는 항아리의 형태가 되었다.
안료를 달걀, 송진, 물과 기름에 혼합하는 시간, 그는 생각을 채우거나 비우기를 반복할 것이다. 곧 마주할 빈 캔버스 위로 기록할 숨결에 의미를 부여하고 걷어내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떤 결정을 마치고 나면, 또 하나의 손처럼 호흡을 맞춰 왔을 크고 납작한 붓을 들고 한 호흡에 한 획을 긋는다. 수정하기 곤란한 그 순간의 움직임이 한 번 살아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의 결정들처럼 캔버스를 덮는다.
그의 작품은 별도의 제목을 취하기보다, 호흡과 획이 스쳤을 숫자가 된다. 태어나면 소멸하고 마는 목숨들의 운명처럼, 단순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담백한 선택이다.
그의 작업 과정을 기꺼이 ‘수행’이라고 이름 붙여도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생사의 속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예술에 집중을 하되, 세상과 일상을 외면하지 않으며 분노할 줄 아는 작가의 현실감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허무하게 설명하는 수행이 아니라 ‘화면’이 포착한 그 수행의 숨결은 쉽게 외면할 수 없다. 유기물과 무기물이 순환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곧 소멸할 인생을 반복해서 그으며 역사를 만드는 생명의 몸짓처럼, 획 하나에 모든 것을 내거는 일은 무겁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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