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울프스, 채색된 조각-조울증/사랑/진실/사랑, 2016 ⓒ조던 울프스, 데이비드 즈비너, 사디콜
2m 남짓한 꼭두각시는 정수리, 왼손, 오른발을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앙 다문 이빨을 드러낸 소년의 얼굴을 한 이 인형은 1950년대 미국 어린이들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우디 두디쇼>의 마리오네트를 닮았다. 트러스의 도르래에 매달린 쇠사슬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인형의 팔이며 다리, 머리가 그에 따라 휘청거린다. 그는 사슬을 밀고 당기는 이의 손길에 따라 일어서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느 순간, 거꾸로 매달려 허공을 휘젓던 그의 몸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사슬은 쉬지 않고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간혹 마이클 볼턴의 노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흘러나오면,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은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이 툭 끊어지는 순간, 사랑의 이름으로 대상을 동여맨 자의 폭력성은 더 역하게 드러난다.
그는 비록 ‘인형’에 불과하지만,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꺾이는 그의 몸을 보는 관객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LCD 모니터로 만든 그의 푸른 눈동자 뒤편에 심어 놓은 센서가 전시장 안에 들어온 사람의 움직임을 추적하며 시선을 맞춘다. 인형의 몸에 가해지는 진짜 폭력 앞에 노출된 관객들은 스크린 눈동자가 쏟아내는 눈빛에 섬뜩하다. 허공에 매달려 관객을 내려다보는 그가 “둘째, 너를 죽이고, 셋째, 너를 붙잡고, 넷째 피를 흘리고…”라면서 열여덟가지의 폭력적인 행동을 시처럼 읊조릴 때, 관객은 그의 모습에서 사탄의 인형 ‘처키’가 불러일으킬 법한 공포를 본다. 부자연스럽게 꺾인 몸통, 페인트가 벗겨진 얼굴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조던 울프슨이 애니메트로닉스 인형으로 제작한 이 작품 ‘채색된 조각’이 제시하는 공포의 시간은, 너무 많은 유형의 고통이 존재하는 이 세상,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폭력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의 액면을 난폭하게 드러낸다. 그 앞에서의 불편함은 보는 자의 몫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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