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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8.10.19 강력한 열망
  2. 2018.10.12 80년생 아파트
  3. 2018.10.05 아는 얼굴
  4. 2018.09.28 동물원과 권총
  5. 2018.09.21 서울의 목욕탕
  6. 2018.09.14 검은 장갑
  7. 2018.09.07 로우-컷
  8. 2018.08.24 장면과 날짜
  9. 2018.08.17 빛나지 않아도
  10. 2018.08.10 떠나는 시선
  11. 2018.08.06 빛났던 목소리
  12. 2018.07.27 겉과 속
  13. 2018.07.20 제2의 조국
  14. 2018.07.13 노동자의 가면
  15. 2018.07.06 장면의 단면
  16. 2018.06.22 빌보드 별곡
  17. 2018.06.15 잊힐 기억
  18. 2018.06.08 시선의 갑질
  19. 2018.06.01 분노의 거리
  20. 2018.05.25 러브 라이프

1899년 8월 어느 달 없는 밤, 해양생물학자 루이 부탕은 프랑스 남부 바뉼쉬르메르 지역의 바닷가에서 배에 짐을 싣고 있었다. 산소를 채운 커다란 나무통과 수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램프 등 온갖 장비를 싣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대단한 해양탐사가 시작되는 낌새를 풍겼던 루이 부탕의 목표는 당연히 미지의 해양생물일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바닷속에서 연구한 대상은 바로 ‘사진’이었다.

 

에밀 라코비차, 1899년 ⓒ루이 부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중사진’이 바로 그날의 연구 결과다. 루이 부탕은 수심 50m에서 루마니아의 해양학자 에밀 라코비차를 촬영했다. “Photographie Sous Marine(수중사진)”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모델과 촬영자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수심 50m에서 30분 동안 질소마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신식 장비를 갖춘 현대의 스쿠버다이빙이라도 수심 50m에서는 3분 이내로 잠수 시간을 제한한다. 이를 감안하면 루이 부탕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그 무모함은 강력한 열망의 방증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낯설어서,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하고 싶었다. 늘 바닷속에서 본 풍경을 수면 밖으로 건져내기를 갈망했다.” 루이 부탕이 했던 말에서 어떤 힌트를 얻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말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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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우거진 나무들은 녹색 파도처럼, 아파트는 떠다니는 하얀 배처럼 보인다. 녹색 바다를 이루는 나무들은 아파트의 나이테 역할을 한다. 몸집의 크기로 아파트 연령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을 앞둔, 1980년생 둔촌주공아파트는 철거를 진행 중이다.

 

둔촌주공아파트, 2016년 ⓒCDAPT

 

오래된 아파트가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해야만 도시는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생애주기를 아파트 단지와 동기화한 이들에겐, 그저 ‘흔한 일’로만 단념할 수 없다. 이곳이 고향이자 기억의 뿌리인 80년대생 아파트 키드를 중심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최종언 또한 아파트 키드이자 아파트 덕후다. 트위터에서 ‘CDAPT’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찍은 아파트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CD’는 그가 살고 있는 창동의 약자이며, 우연한 계기로 아파트 단지를 순례하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통적으로 또는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와 풍경을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분류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철거 예정일에 맞춰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를 확인하는 그의 사진은 사적인 애호로 출발했지만, 국내 아파트 생활과 문화의 공적인 기록·기억으로 자리 잡기에도 손색이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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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코닐리어스, 셀프 포트레이트, 미국회도서관 소장

 

한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1839년에 촬영된 낡은 사진은 비록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오뚝한 콧날, 진지한 눈빛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코닐리어스, 미국 사진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럼, 이 사진의 촬영자는 누굴까? 바로 코닐리어스 자신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표한 1839년과 같은 해에 벌써 셀카 사진이 등장한 셈이다. 코닐리어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램프 가게 뒤편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10분가량 꼼짝 않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얻었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촬영된 이 사진은 세계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간주된다.

 

170여년 전 코닐리어스의 첫 장 이후, 오늘날 셀카 사진은 하루에 3억5000장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이미지라 그런지 별의별 사건도 발생한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사망하거나, 한 10대 소년은 셀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셀카 중독 등의 부작용이 언급되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욕망이다. 사진이론가 존 택은 “사진이란 그저 자신들이 아는 이들의 얼굴 사진을 획득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 또는 알고 싶은 얼굴이라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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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크스 동물원의 오타 벵가, 1906년, 미의회도서관 소장

 

1906년 이색적인 구경거리를 준비한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은 흥행 중이었다. 나이 23세, 키 150㎝, 몸무게 45㎏, 난생처음 본 동물 앞에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던져주며 환호했다. 몇몇 구경꾼들은 내심 기대했던 눈요깃거리가 못 되자 야유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격렬한 환호와 야유를 한몸에 받은 새로운 구경거리는 바로 인간이었다.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Ota Benga)는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전시됐다. 그는 1904년 콩고를 침략한 벨기에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후 생포되어 노예 상인에게 팔렸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됐다. 동물원에 온 이후, 처음에는 사육사를 도와 침팬지에게 먹이를 주며 동물들을 돌보기도 했지만, 차츰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구경거리이자 동물원에 갇힌 신세라는 것을. 1910년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풀려난 벵가는 교육을 받고 담배공장에 취직하는 등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1916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타향에서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오타 벵가가 처음 전시됐던 박람회의 전시명은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사진 속의 청년 벵가가 우리를 응시하며 묻는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 그는 자살하기 전, 홀로 피그미족 전통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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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오래되고 낡은 목욕탕 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물함과 텔레비전, 냉장고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손님이 줄었거나 혹은 자판기라도 들여와서 퇴역했을 냉장고는 본연의 임무 대신 텔레비전 받침대로 사용된다. 플러그가 꽂혔던 왕년에는, 목욕을 마친 꼬마들이 저 냉장고에 뽀얀 얼굴을 들이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 사이에서.

 

서울의 목욕탕, 산호탕 ⓒ박현성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6699프레스, 2018)에 담긴 장면 중의 하나다. 책은 서울에 위치한 30년 이상 된 목욕탕 10곳의 일상적인 풍경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전달한다. 시간의 무게에 부서지고 허물어지는 목욕탕의 외관에서, 대야와 앉은뱅이 의자 등 더 이상 새것으로 바뀌지 않을 목욕탕 기물에 묻은 손때까지 모두 사진에 살뜰하게 담겼다. 그 이미지들은 이곳이 내일 사라질 것이다, 현실을 일러주는 동시에 이곳이 어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환상을 부풀린다.

 

그러나 내일의 현실이든 어제의 환상이든, 개의치 않을 서울의 목욕탕은 오늘도 ‘목욕합니다’와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 사이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러한 목욕탕의 일상을 가만히 멈춰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사진책에는 특별한 일화도 없고,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바람 잘 날 없는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들어서는 목욕탕의 미덕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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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1968년 10월17일 멕시코 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200m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영광스러운 자리인 시상식에는 기쁨과 환호 대신 한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시상식 장면. AP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상대에 맨발로 올랐다.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검은 장감을 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른바, 흑인 저항운동 ‘블랙파워’에 지지를 표시하는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였다. 스미스의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는 흑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며, 카를로스가 지녔던 묵주는 희생당한 흑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이후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촌에서 추방됐다.

 

50년 전의 그들을 닮은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미국이 시끄럽다. 2016년 그는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 꿇는 행동을 했다. 이듬해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은 괘씸죄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해 선수 활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그가 광고에 나오자 뜨거운 지지와 함께 나이키 매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도 SNS에 올라온다. 아직도 백인 중심의 세상에는 여전히 ‘검은 장감’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용기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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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로우-컷 #07, 피그먼트 프린트 위에 흰 먹선, 140x180cm, 2018 ⓒ김천수

 

김천수의 사진전 <로우-컷, 로우-패스>(일우스페이스, ~10·2)는 강북의 한 고급아파트를 독특하고 기묘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작가는 개발 당시 갈등과 논란이 빚어졌던 그 아파트를 다양한 거리와 앵글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아파트가 완공되기 이전의 풍경들 또는 설계도와 평면도에서 차용한 아우트라인을 사진 위에 흰색 먹줄로 튕겨 중첩시켰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탐색하려는 문제는 ‘현대 도시의 과밀성’이다.

 

도시는 한정된 공간 안에 다양한 편의 시설과 많은 인구를 집중시키며 발전한다. 고층 건물, 주차 타워, 상업 지역, 역세권 등 또한 효율성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작은 폭탄이 터져도, 잠시 정전되어도 도시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효율을 극대화한 도시 재개발이 심각한 갈등을 낳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효율성이 오작동되는 도시를 디지털 이미징 프로세스와 견준다. 최신 기술이 집약된 고해상도의 디지털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는 유령을 닮았다. 사진마다 건물의 형체가 보이지만, 어느 것도 온전한 이미지는 없기 때문이다. 흐릿하거나 휘어진 건물의 형상은 어둡고, 선명하고 곧게 뻗은 실선은 희다. 흐릿하거나 선명하고, 휘어지거나 곧고, 검거나 하얀 대비 속에서 온전히 보이지 않는 유령 건물을 바라볼수록 환시처럼 불길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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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 경기도 김포의 모심기 참석. 1980년 5월 28일. 정부기록사진집 11권.

 

논 옆에 밀짚모자를 쓰고 바지를 걷어붙인 남자가 걸어간다. 농부라고 하기에는 밝은색 점퍼 안에 입은 셔츠와 뿔테 안경이 어색하다. 아무리 봐도 농부가 아니라 관료에 가까운 남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모심기에 참석했다. 매년 봄 신문에 등장할 만한 사진으로, 특별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촬영된 날짜를 살펴보면 모멸감이 치밀어 오른다. 1980년 5월28일, 5·18민주화운동이 진압된 다음날이다. 27일 새벽 3시 광주에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진입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애절한 가두방송이 채워지고, 오후 4시10분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들에게 사격했다. 무려 2만5000여명의 군인이 투입되어 오후 5시10분 진압 종료가 선언되었다. 5월29일 망월동에서는 129구의 장례식이 일제히 진행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또 수많은 시민들이 슬픔에 빠졌던 27일과 29일 사이 국가의 수장은 모심기에 참석했다. 모를 심으면서 정종택 농수산부 장관에게 전남 및 광주의 모내기 작업 현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모습은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수록되지 않은 정부기록사진집에서 1980년 5월의 시간을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사진에 보이는 현실보다 숨겨진 현실, 사진에 기록된 장면보다 배제된 장면에서 비롯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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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사진에는 눈부신 제주도의 하늘이나 싱그럽게 푸른 야자수가 없었다. 햇빛이 표백된 회색빛 하늘, 활력 없이 타들어가는 야자수, 모든 것은 볼품없이 회색빛으로 말라갔다. 사람의 얼굴마저도 회색빛으로 보였다. 남성도 여성도, 원주민도 이방인도 아닌, 모두 생기가 빠진 회색인일 뿐이었다. 하늘과 야자수, 사람들까지 사진 속에서는 모두 빛을 잃어가는 회색의 존재였다.

 

빛나는 백(白)으로 태어나 빛을 잃고 어두운 흑(黑)으로 향하는 회색. 백과 흑, 어느 쪽도 아니면서도 둘을 동시에 지닌 회색. 흙과 먼지가 묻고 점점 녹아가면서 다시 하얗게 빛날 수 없는 눈사람의 회색. 그런 회색빛만 가득한 사진은 ‘모든 존재는 빛난다’거나 ‘저마다 빛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빛나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인지 환기한다. 회색 사진은 오히려 빛을 잃어도,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회색의 존재라고, 모두 빛을 잃어가며 점점 녹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생이란, 눈사람이 빛을 잃고 더러워지며 녹는 과정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로 애써 반짝거릴 장면을, 빛나는 순간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그것이 잠깐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빛을 잃지 않거나 녹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색의 존재가 회색의 얼굴과 나무를 회색으로 수긍하는 회색 사진에는 결연한 의지와 산뜻한 체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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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고 유능한 패션 사진가 로맹은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 어긋난 관계만 남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인, 여동생, 아버지 등 모두 그에게 분명 소중한 이들이지만,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조차 털어놓지 못할 만큼 관계가 소원하다. 유일하게 할머니에게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한 그는 홀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죽음 앞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매우 사진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영화는 죽음을 선고받은 후, 콤팩트 카메라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로맹을 자주 보여준다. 화해하지 못한 연인, 여동생, 아버지 앞에서도 카메라를 드는 그의 모습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모두 기록하려는 것만 같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지만, 계속 죽음을 앞둔 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로맹은 마지막으로,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처럼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일광욕과 수영을 한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카메라를 들고 주변 풍경을 알뜰하게 찍는다. 모래사장에 누워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린 후 눈을 감은 그는 무엇을 바라봤을까?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떠나야 하는 시간 앞에서.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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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추도식, 연세대 대강당, 2018년 7월26일 ⓒ김흥구

 

솔직히 노회찬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좋아했다면, 결국 그가 했던 말을 좋아한 것이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 가장 알아듣기 쉽게 말했던 그의 화법은, 정치 고수로 통용되던 김종필식 선문답과 매우 대조적이다. 고도의 복선이 깔렸다는 김종필씨의 말에서 무엇을 했다는 건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파악할 수 없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화법으로,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에 유용한 방식이다. 고수끼리는 통한다는 이 화법에는 시민은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특권의식이 숨어 있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식 동문서답도 노회찬의 화법과 대비된다. 기자의 질문에 횡설수설했던 박 전 대통령의 대답에는 논리가 없다.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면 논리가 필요하며, 그래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지시와 명령에 익숙하다면, 레이저 눈빛을 쏘거나 헛기침으로 심경 경호를 받아왔다면, 굳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알아들을 비유를 구사하고, 누구의 잘잘못인지 분명한 노회찬의 화법은 자기 발언에 책임지는 말하기 방식이다. 상대가 누구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대화 방식은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특권의식과 권위의식에 젖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노회찬의 목소리가 빛났던 이유다. 그의 말을 너무 오래 공짜로 들었던 우리의 마음은, 안녕을 고하는 건지 붙잡는 건지 모를 사진 속의 손처럼 검고 쓰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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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아주 옅은 살색 벽면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미묘한 차이로 빛난다. 그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네모난 구멍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왜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판이 벽면의 겉과 속을 가로지른다. 색감과 재질로 보아 벽면과 같은 자재로 보인다. 벽면의 겉이 되는 판이 벽면의 속을 침투한 모양새라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구멍을 통해 벽 속에 다양한 자재가 숨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얇디얇은 판 하나를 경계로 눈에 보이는 ‘겉’과 보이지 않는 ‘속’이 나뉜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정지현의 사진 연작 ‘CONSTRUCT’는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는 마감재의 표면에 가려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감춰지는 건축 자재와 공법 등을 가시화한다. 그동안 건물의 해체 과정에서 신축 현장까지 건축의 생애주기와 도시의 변화를 기록했던 작가는 최근 건축 공정의 신속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얇고 가벼워지는 건축 자재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건축 과정에서 건축물의 일부로 변화하는 자재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면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건물의 속살이 드러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하고 육중한 건물에는 보이진 않지만 얇고 가벼운 소재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하나의 건물이 생성-소멸하듯이 변화하는 도시에서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겉과 속’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상상하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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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명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부터 중년의 어른들까지 앞사람의 얼굴이 뒷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포즈를 취했다.

 

그들 앞에는 이민 가방을 포함해 크고 작은 짐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굳이 자기 앞에 둔 짐들이 그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무거운 짐 뒤에서 그들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온 베트남 난민들, 1982년 5월20일, 경향신문사

 

1982년 5월20일, 베트남 난민 중 41명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부산 난민보호소에 수용됐던 이들은 세 차례에 걸쳐 부산항으로 들어온 베트남 난민 168명 중 일부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전 재산이었을 이민 가방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머물던 부산 난민보호소는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재송동 1008번지에서 운영됐다. 이곳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거나, 미국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났다. 1993년 역할을 다한 부산 난민보호소에서는 난민 환송식과 현판 하강식이 열렸다.

 

그날 뉴질랜드로 떠날 한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인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제2의 조국’에서 요즘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자가 70만명이 넘는다는 걸 알까? 70만 숫자 앞에서 41명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오래전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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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볼펜을 손에 들고 서류를 검토하거나 자를 대고 표를 그리는 모습이 생경하다. 책상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는 사무실의 모습은 어색하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일하는 모습이다.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에 가면을 쓰고, ‘요구관철’ 구호가 적힌 머리띠까지 한 모습은 이상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1971년 가면을 쓰고 감원반대 시위를 하는 한국전력 노조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배격한다! 우리는 횡포 기업주를.” 1971년 한국전력 노조원들이 내건 노동운동 슬로건이었다. 이른바 ‘관료자본주의시대’로 일컬어졌던 박정희 시대에는 기업주들이 관을 등에 업고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횡포를 자행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면서도 노동자들이 무단해고, 불법 연장노동, 임금체불 등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권력은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기업의 불법행위를 암묵적으로 눈감아주었다.

 

그랬던 1970년대 시절의 노동운동 중에서 특이한 장면은 파업의 일환으로 가면을 쓰고 태업하는 모습이다. 비록 태업이지만 양복 차림으로 기어이 출근해 일하는 모습은 당시 노동자들의 서글픈 현실 같다. 그러나 더 서글픈 것은,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여 기업주의 횡포에 저항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이다. 한편, 30명의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도 복직이 되지 않는 냉혹한 노동 현실은 그야말로 괴기스럽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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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오래된 것이 허물어지고, 순간 새로운 것이 자리잡는 도시의 역사는 깊다. 그러한 변화의 파도에 따라 순간 오래된 세대가 밀려나고, 순간 새로운 세대가 밀려드는 도시의 층위는 넓다. 이처럼 깊고 넓기에 인간의 맨눈으로 도시의 역사와 층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얇고 납작한 사진의 표면 안에 도시를 가둘 때, 그렇게 기계의 눈을 빌리면 깊고 넓은 도시의 단면이 한눈에 잡히기도 한다. 물론 찍은 사람도 보는 사람도 도시를 면밀하게 관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뉴타운 시리즈, 2014~2015 ⓒ이재욱

 

사진가 이재욱의 ‘뉴타운’(2014-2015) 연작 중 한 작품은 도시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경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건설 현장이 보이고, 그 뒤로는 오래된 주택가의 저층 건물이 보인다. 또 뒤로는 십수 년 전쯤 건설되었을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최근에 지어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보인다. 마치 겹겹이 싸인 퇴적층에서 각기 다른 시대의 화석을 발굴하듯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도시를 이루는 서로 다른 역사와 층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찍은 이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은 보는 이 역시 함께 관찰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관찰은 사유를 촉발시킨다. 그동안 지나쳤던 장면의 단면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알던 또는 몰랐던 도시에 관하여.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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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가, 도로에서 운전 중에 스쳐지나가는 옥외광고판은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 풍경의 한 부분처럼 자리잡았다. 언제나 도시 풍경 속에서 배경처럼 묻혀 있던 옥외광고판이 카메라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빌보드 별곡, 서울, 2015 ⓒ조재무

 

사진가 조재무의 연작 ‘빌보드 별곡’은 전국 각지에서 옥외광고판을 촬영한 것이다. 지하철 입구의 작은 광고판에서 거대한 빌딩 옥상의 대형 광고판까지 각양각색의 옥외광고판을 모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두 광고가 없는 빈 광고판이라는 것이다. 텅 빈 여백만 가득하거나 ‘광고 문의’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남은 옥외광고판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왠지 초라해 보인다.

 

옥외광고는 고대 이집트에서 노비매매를 위한 공고로 사용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간판광고로 추정되는 것이 발굴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기금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평균 20% 이상 성장을 지속했던 옥외광고는 경제 불황과 매체효과에 대한 근거자료의 부족으로 기피하게 되었다. 이처럼 경제 호황과 고성장의 상징이었던 옥외광고판이 불황과 저성장의 지표로 전락한 장면은 씁쓸하다. 옥외광고판을 증명사진 찍듯 담아낸 ‘빌보드 별곡’은 침체된 우리 현실의 증명사진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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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아래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다. 옹기종기 모여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 떼 같다. 그들은 일제히 중앙에 자리잡은 흰색 연단을 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것일까?

 

6·25 반공궐기대회에 참석한 서울시민들. 1974·6·25 경향신문사

 

사진을 확대해 보면, 연단에 ‘상기하자 6·25’라고 쓰여 있다. 그 위에 ‘6·25 반공궐기대회’라는 문구도 보인다. 1974년 6월25일 오전 10시, 6·25를 맞아 한국반공연맹 주최로 북한의 대남적화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6·25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의도 5·16광장에 무려 백만 인파가 몰렸다.

 

이제 남북 정상, 북·미 정상이 차례로 만나서 악수를 나누는 마당에 반공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반공궐기대회에 강제 동원했던 시절이다. 유시민의 &lt;나의 한국현대사&gt;에 따르면 “반공백일장을 하고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짓고 반공웅변대회와 반공궐기대회를 하면서 자랐다”고 회상하는 시대다. 또 “옆집에서 오신 손님 간첩인지 다시 보자”라는 당시의 반공표어를 미루어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이웃을 간첩으로 의심하도록 권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반공을 궐기하고, 반공을 권하던 옛 세상은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보기 좋게 어울리는 시절 앞에서 민망한 기억으로 잊힐 것이다. 아직도 반공으로 표를 모으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어느 정당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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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된 선거 포스터의 원본이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찍은 이 사진은 패션 사진가 김현성이 촬영했다. 이 사진 위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문구를 더하고 배경을 녹색으로 바꿔 선거벽보가 완성됐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당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는 호응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그중에서 박훈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격렬한 반응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찢어 버리고 싶은” 등의 표현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만 놓고 보면, 그런 격한 반응이 수긍될 정도로 도발적이지 않다. 상반신에 반측면 얼굴을 담은 전형적인 인물사진으로,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벽보 사진은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기 위해 친근감과 자신감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이 비춰지는 포즈나 눈빛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진 또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진을 두고도 각자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에 대고 공손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탐탁지 않다. 왜 사진마저 공손해야 하는가? 사진 속 인물이 어린 여성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년 남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전자라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시선, 후자라면 시선의 권력에 의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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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한국인이 프랑스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스스로 야근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몸에 밴 습관 탓이리라. 이를 지켜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얻어낸 우리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어.”

 

민주노조 인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울산의 거리를 가득 메운 현대그룹 7개 계열사 노조원들. 1987·8·18 경향신문사

 

 

프랑스 동료의 말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날 ‘1일 8시간’ 노동 환경이 마련되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지금 당연하게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실현된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법 개악이 매우 씁쓸한 이유는 그동안 치열한 투쟁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동자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인텍 노조원들은 굴뚝 위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며,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장 일가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고 있다. 또한 KTX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달린 재판이 정권을 위해 거래됐다는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또 다른 한편에선 악화 중인 노동 환경을 목격하면서 묵직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울산에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가두시위를 벌인 그들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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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본 전일빌딩 ⓒ윤성희

 

감은 눈처럼 새까만 창문의 숫자를 세어본다. 아무리 세어봐도 창문에 불빛이 켜질 기미는 없다. 물 먹은 눈처럼 번진 간판의 흔적을 따라 그려본다. 아무리 그려봐도 글자를 읽을 수는 없다. 끝내 불빛이 켜지지 않는 창문은 씁쓸하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끝내 읽을 수 없는 흔적은 서글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건물은 아무 말이 없다. 깊은 밤처럼 점점 어둡게 번지는 쓸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제 몸을 뒤튼다.

 

사진 속의 전일빌딩은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채 광주 금남로에 서 있다. 이곳에서 3차례 조사를 마친 국과수는 총탄 흔적을 분석해 “헬기 사격이 유력하다”고 결론 냈다. 30여년 전 이 건물에서 벌어진 일을 상상할수록 씁쓸하다. 1980년 5월 신군부가 전일빌딩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만행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아무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비극을 증명하는 건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헐리고 주차타워가 될 뻔했던 사연은 서글프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영영 어두워지는 씁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반짝거린다. 이곳에서 씁쓸하고 서글프게 죽어간 삶을 기억하라는 듯이.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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