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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3건

  1. 11:31:33 승자의 손
  2. 2017.07.21 내가 모르는 내 사진
  3. 2017.07.14 스피릿, 오퍼튜니티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이 떠오른 건 최근 열리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이다.

 

Photo by Hugo Jaeger/Timepix/The LIFE Picture Collection/Getty Images ⓒ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나치의 상징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을 뻗어 경례한다. 좌측 아래 책상 끝에 아돌프 히틀러가 보인다. 옆에는 히틀러의 심복으로,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다는 루돌프 헤스도 서 있다. 같은 줄의 양복을 입은 사람 옆에는 ‘나치당의 브레인’으로 불린 요제프 괴벨스도 있다. 1939년 4월28일, 베를린 크롬 오페라 극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이날 회의에서 히틀러는 폴란드와의 불가침 조약 철폐를 선언하는 기조연설을 한다. 전쟁에 관한 독일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홀로코스트를 비롯해 5000만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그 숫자를 헤아리면서 사진 속의 저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 예상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상상했다면 저렇게 맹목적으로 오른손을 뻗을 수 있을까?

 

그 집단적 광기만큼 오싹하고 서늘한 것은 그마저도 미화하는 사진 ‘본연의 역할’이다. 히틀러의 전속사진가 휴고 예거가 촬영한 사진은 다분히 나치의 승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오른손을 뻗을 때마다 함께 오른손을 뻗어 카메라를 들었던 전속사진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승리의 그날을 장식하기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결국, 승자의 손에 들어간다. 독일 패전 후 사진을 숨겨왔던 예거는 승전국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 ‘라이프’에 그 사진들을 판매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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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1995)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폴은 자신의 오르가슴 순간을 촬영할 만큼 에고가 강하다. 그런 그에게 오랜 시간 연이 끊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누나에게 이끌려 억지로 병원을 찾지만 아버지와 마주한 그는 도망친다. 그리고 몰래 다시 병실을 찾아 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복수라도 하듯이 죽어가는 얼굴과 몸을 마구 찍어댄다.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던 그는 아버지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사진에서 자신에게 향했던 아버지의 눈을 도려낸 뒤 그 사진을 마스크처럼 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포개진 자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 얼마 후 장례식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폴에게 누나가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상자를 건넨다. 그 안에서 아버지가 어린 폴을 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사진이 나온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내가 모르는 내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당신이 나오지만, 정작 ‘언제-어디서-왜’ 찍혔는지 모를 것이다. 당신의 기억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유년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주로 앨범 앞부분에 꽂힌 그 사진들을 당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건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이야기해줬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카메라를 향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듯이, 폴 또한 아버지를 원망하던 카메라가 아이에게 향할 때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르는 내 사진’ 속 장면과 순간을 나 대신 기억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무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에 남은 사진이 나를 살뜰히 기억했다는 표시로 반짝인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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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오퍼튜니티가 바라본 자신의 궤적 (C)NASA/JPL-Caltech/Cornell University

누군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빌리면 그곳엔 아무도 없고, 사방엔 온통 모래뿐이다. 막막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그의 고된 모험이 뚜렷한 궤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상상이지만, 온당치 않은 일이다. 화성탐사 로봇이 찍은 사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2003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우주로 보냈다.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그들에겐 4쌍의 입체 카메라, 광각/어안 카메라가 장착됐다. 당초 3개월 정도 작동하리라 예상했지만, 스피릿은 무려 2011년 5월까지 작동됐고, 놀랍게도 오퍼튜니티는 현재까지 임무 수행 중이다.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는 자신의 궤적을 바라보는 장면도 있다. 일교차가 100도를 넘는 화성의 겨울을 견디고, 모래폭풍과 사구에 빠진 위기에서 탈출한 일화를 떠올리면 그 사진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스스로 재부팅해 시스템을 연장한 일화까지 더해지면 그 궤적은 적막하게 눈물겹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그 사진이란 결국, 기계의 프로그램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구에서 입력한 명령어를 수행한 것 이상의 의미는 과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진마다 그 둘레에는 아름다움이나 눈물겨움을 장전시키는 크고 작은 신화들이 에워싸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 모든 걸 걷어내고 맨눈으로 바라본 사진은 그저 납작한 표면일 뿐이다. 그 서늘함과 적막함은 가공된 신화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지금도 오퍼튜니티는 매일 아침 태양이 전지판을 비추면 잠에서 깬다. 그리고 누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이를 아름답고 눈물겹게 여기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이 단지 신경세포와 호르몬에서 비롯되지 않으리라는 투박한 믿음과 통한다. 스피릿, 오퍼튜니티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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