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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8.08.10 떠나는 시선
  2. 2018.08.06 빛났던 목소리
  3. 2018.07.27 겉과 속
  4. 2018.07.20 제2의 조국
  5. 2018.07.13 노동자의 가면
  6. 2018.07.06 장면의 단면
  7. 2018.06.22 빌보드 별곡
  8. 2018.06.15 잊힐 기억
  9. 2018.06.08 시선의 갑질
  10. 2018.06.01 분노의 거리
  11. 2018.05.25 러브 라이프
  12. 2018.05.21 세이프 컨덕트
  13. 2018.05.18 꼭꼭 숨어라
  14. 2018.05.11 장면의 단면
  15. 2018.05.04 새까맣게 태워도
  16. 2018.04.20 컵의 숫자만큼
  17. 2018.04.13 사이의 무게
  18. 2018.04.06 세상이 바뀔 때마다
  19. 2018.03.30 다시, 작은 세계
  20. 2018.03.23 로스트 앤드 파운드

잘생기고 유능한 패션 사진가 로맹은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 어긋난 관계만 남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인, 여동생, 아버지 등 모두 그에게 분명 소중한 이들이지만,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조차 털어놓지 못할 만큼 관계가 소원하다. 유일하게 할머니에게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한 그는 홀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죽음 앞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매우 사진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영화는 죽음을 선고받은 후, 콤팩트 카메라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로맹을 자주 보여준다. 화해하지 못한 연인, 여동생, 아버지 앞에서도 카메라를 드는 그의 모습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모두 기록하려는 것만 같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지만, 계속 죽음을 앞둔 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로맹은 마지막으로,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처럼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일광욕과 수영을 한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카메라를 들고 주변 풍경을 알뜰하게 찍는다. 모래사장에 누워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린 후 눈을 감은 그는 무엇을 바라봤을까?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떠나야 하는 시간 앞에서.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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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노회찬 의원 추도식, 연세대 대강당, 2018년 7월26일 ⓒ김흥구

 

솔직히 노회찬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좋아했다면, 결국 그가 했던 말을 좋아한 것이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 가장 알아듣기 쉽게 말했던 그의 화법은, 정치 고수로 통용되던 김종필식 선문답과 매우 대조적이다. 고도의 복선이 깔렸다는 김종필씨의 말에서 무엇을 했다는 건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파악할 수 없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화법으로,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에 유용한 방식이다. 고수끼리는 통한다는 이 화법에는 시민은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특권의식이 숨어 있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식 동문서답도 노회찬의 화법과 대비된다. 기자의 질문에 횡설수설했던 박 전 대통령의 대답에는 논리가 없다.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면 논리가 필요하며, 그래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지시와 명령에 익숙하다면, 레이저 눈빛을 쏘거나 헛기침으로 심경 경호를 받아왔다면, 굳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알아들을 비유를 구사하고, 누구의 잘잘못인지 분명한 노회찬의 화법은 자기 발언에 책임지는 말하기 방식이다. 상대가 누구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대화 방식은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특권의식과 권위의식에 젖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노회찬의 목소리가 빛났던 이유다. 그의 말을 너무 오래 공짜로 들었던 우리의 마음은, 안녕을 고하는 건지 붙잡는 건지 모를 사진 속의 손처럼 검고 쓰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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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기억된 사진들

 

아주 옅은 살색 벽면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미묘한 차이로 빛난다. 그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네모난 구멍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왜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판이 벽면의 겉과 속을 가로지른다. 색감과 재질로 보아 벽면과 같은 자재로 보인다. 벽면의 겉이 되는 판이 벽면의 속을 침투한 모양새라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구멍을 통해 벽 속에 다양한 자재가 숨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얇디얇은 판 하나를 경계로 눈에 보이는 ‘겉’과 보이지 않는 ‘속’이 나뉜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정지현의 사진 연작 ‘CONSTRUCT’는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는 마감재의 표면에 가려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감춰지는 건축 자재와 공법 등을 가시화한다. 그동안 건물의 해체 과정에서 신축 현장까지 건축의 생애주기와 도시의 변화를 기록했던 작가는 최근 건축 공정의 신속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얇고 가벼워지는 건축 자재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건축 과정에서 건축물의 일부로 변화하는 자재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면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건물의 속살이 드러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하고 육중한 건물에는 보이진 않지만 얇고 가벼운 소재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하나의 건물이 생성-소멸하듯이 변화하는 도시에서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겉과 속’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상상하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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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40여명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부터 중년의 어른들까지 앞사람의 얼굴이 뒷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포즈를 취했다.

 

그들 앞에는 이민 가방을 포함해 크고 작은 짐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굳이 자기 앞에 둔 짐들이 그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무거운 짐 뒤에서 그들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온 베트남 난민들, 1982년 5월20일, 경향신문사

 

1982년 5월20일, 베트남 난민 중 41명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부산 난민보호소에 수용됐던 이들은 세 차례에 걸쳐 부산항으로 들어온 베트남 난민 168명 중 일부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전 재산이었을 이민 가방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머물던 부산 난민보호소는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재송동 1008번지에서 운영됐다. 이곳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거나, 미국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났다. 1993년 역할을 다한 부산 난민보호소에서는 난민 환송식과 현판 하강식이 열렸다.

 

그날 뉴질랜드로 떠날 한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인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제2의 조국’에서 요즘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자가 70만명이 넘는다는 걸 알까? 70만 숫자 앞에서 41명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오래전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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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모나미 볼펜을 손에 들고 서류를 검토하거나 자를 대고 표를 그리는 모습이 생경하다. 책상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는 사무실의 모습은 어색하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일하는 모습이다.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에 가면을 쓰고, ‘요구관철’ 구호가 적힌 머리띠까지 한 모습은 이상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1971년 가면을 쓰고 감원반대 시위를 하는 한국전력 노조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배격한다! 우리는 횡포 기업주를.” 1971년 한국전력 노조원들이 내건 노동운동 슬로건이었다. 이른바 ‘관료자본주의시대’로 일컬어졌던 박정희 시대에는 기업주들이 관을 등에 업고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횡포를 자행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면서도 노동자들이 무단해고, 불법 연장노동, 임금체불 등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권력은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기업의 불법행위를 암묵적으로 눈감아주었다.

 

그랬던 1970년대 시절의 노동운동 중에서 특이한 장면은 파업의 일환으로 가면을 쓰고 태업하는 모습이다. 비록 태업이지만 양복 차림으로 기어이 출근해 일하는 모습은 당시 노동자들의 서글픈 현실 같다. 그러나 더 서글픈 것은,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여 기업주의 횡포에 저항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이다. 한편, 30명의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도 복직이 되지 않는 냉혹한 노동 현실은 그야말로 괴기스럽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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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순간 오래된 것이 허물어지고, 순간 새로운 것이 자리잡는 도시의 역사는 깊다. 그러한 변화의 파도에 따라 순간 오래된 세대가 밀려나고, 순간 새로운 세대가 밀려드는 도시의 층위는 넓다. 이처럼 깊고 넓기에 인간의 맨눈으로 도시의 역사와 층위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얇고 납작한 사진의 표면 안에 도시를 가둘 때, 그렇게 기계의 눈을 빌리면 깊고 넓은 도시의 단면이 한눈에 잡히기도 한다. 물론 찍은 사람도 보는 사람도 도시를 면밀하게 관찰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뉴타운 시리즈, 2014~2015 ⓒ이재욱

 

사진가 이재욱의 ‘뉴타운’(2014-2015) 연작 중 한 작품은 도시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경에는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드는 건설 현장이 보이고, 그 뒤로는 오래된 주택가의 저층 건물이 보인다. 또 뒤로는 십수 년 전쯤 건설되었을 고층 아파트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최근에 지어진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보인다. 마치 겹겹이 싸인 퇴적층에서 각기 다른 시대의 화석을 발굴하듯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도시를 이루는 서로 다른 역사와 층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찍은 이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만들어진 장면은 보는 이 역시 함께 관찰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관찰은 사유를 촉발시킨다. 그동안 지나쳤던 장면의 단면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가 알던 또는 몰랐던 도시에 관하여.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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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거리를 걷다가, 도로에서 운전 중에 스쳐지나가는 옥외광고판은 우리가 바라보는 도시 풍경의 한 부분처럼 자리잡았다. 언제나 도시 풍경 속에서 배경처럼 묻혀 있던 옥외광고판이 카메라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빌보드 별곡, 서울, 2015 ⓒ조재무

 

사진가 조재무의 연작 ‘빌보드 별곡’은 전국 각지에서 옥외광고판을 촬영한 것이다. 지하철 입구의 작은 광고판에서 거대한 빌딩 옥상의 대형 광고판까지 각양각색의 옥외광고판을 모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두 광고가 없는 빈 광고판이라는 것이다. 텅 빈 여백만 가득하거나 ‘광고 문의’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남은 옥외광고판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왠지 초라해 보인다.

 

옥외광고는 고대 이집트에서 노비매매를 위한 공고로 사용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간판광고로 추정되는 것이 발굴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기금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평균 20% 이상 성장을 지속했던 옥외광고는 경제 불황과 매체효과에 대한 근거자료의 부족으로 기피하게 되었다. 이처럼 경제 호황과 고성장의 상징이었던 옥외광고판이 불황과 저성장의 지표로 전락한 장면은 씁쓸하다. 옥외광고판을 증명사진 찍듯 담아낸 ‘빌보드 별곡’은 침체된 우리 현실의 증명사진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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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태극기 아래 대규모 인파가 운집했다. 옹기종기 모여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 떼 같다. 그들은 일제히 중앙에 자리잡은 흰색 연단을 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것일까?

 

6·25 반공궐기대회에 참석한 서울시민들. 1974·6·25 경향신문사

 

사진을 확대해 보면, 연단에 ‘상기하자 6·25’라고 쓰여 있다. 그 위에 ‘6·25 반공궐기대회’라는 문구도 보인다. 1974년 6월25일 오전 10시, 6·25를 맞아 한국반공연맹 주최로 북한의 대남적화야욕을 분쇄하기 위한 ‘6·25 반공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의도 5·16광장에 무려 백만 인파가 몰렸다.

 

이제 남북 정상, 북·미 정상이 차례로 만나서 악수를 나누는 마당에 반공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반공궐기대회에 강제 동원했던 시절이다. 유시민의 &lt;나의 한국현대사&gt;에 따르면 “반공백일장을 하고 반공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짓고 반공웅변대회와 반공궐기대회를 하면서 자랐다”고 회상하는 시대다. 또 “옆집에서 오신 손님 간첩인지 다시 보자”라는 당시의 반공표어를 미루어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이웃을 간첩으로 의심하도록 권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반공을 궐기하고, 반공을 권하던 옛 세상은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가 보기 좋게 어울리는 시절 앞에서 민망한 기억으로 잊힐 것이다. 아직도 반공으로 표를 모으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어느 정당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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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이 사진은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된 선거 포스터의 원본이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찍은 이 사진은 패션 사진가 김현성이 촬영했다. 이 사진 위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문구를 더하고 배경을 녹색으로 바꿔 선거벽보가 완성됐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당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는 호응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그중에서 박훈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격렬한 반응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찢어 버리고 싶은” 등의 표현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만 놓고 보면, 그런 격한 반응이 수긍될 정도로 도발적이지 않다. 상반신에 반측면 얼굴을 담은 전형적인 인물사진으로,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벽보 사진은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기 위해 친근감과 자신감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이 비춰지는 포즈나 눈빛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진 또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진을 두고도 각자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에 대고 공손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탐탁지 않다. 왜 사진마저 공손해야 하는가? 사진 속 인물이 어린 여성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년 남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전자라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시선, 후자라면 시선의 권력에 의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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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한국인이 프랑스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스스로 야근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몸에 밴 습관 탓이리라. 이를 지켜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얻어낸 우리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어.”

 

민주노조 인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울산의 거리를 가득 메운 현대그룹 7개 계열사 노조원들. 1987·8·18 경향신문사

 

 

프랑스 동료의 말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날 ‘1일 8시간’ 노동 환경이 마련되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지금 당연하게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실현된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법 개악이 매우 씁쓸한 이유는 그동안 치열한 투쟁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동자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인텍 노조원들은 굴뚝 위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며,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장 일가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고 있다. 또한 KTX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달린 재판이 정권을 위해 거래됐다는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또 다른 한편에선 악화 중인 노동 환경을 목격하면서 묵직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울산에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가두시위를 벌인 그들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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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본 전일빌딩 ⓒ윤성희

 

감은 눈처럼 새까만 창문의 숫자를 세어본다. 아무리 세어봐도 창문에 불빛이 켜질 기미는 없다. 물 먹은 눈처럼 번진 간판의 흔적을 따라 그려본다. 아무리 그려봐도 글자를 읽을 수는 없다. 끝내 불빛이 켜지지 않는 창문은 씁쓸하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끝내 읽을 수 없는 흔적은 서글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건물은 아무 말이 없다. 깊은 밤처럼 점점 어둡게 번지는 쓸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제 몸을 뒤튼다.

 

사진 속의 전일빌딩은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채 광주 금남로에 서 있다. 이곳에서 3차례 조사를 마친 국과수는 총탄 흔적을 분석해 “헬기 사격이 유력하다”고 결론 냈다. 30여년 전 이 건물에서 벌어진 일을 상상할수록 씁쓸하다. 1980년 5월 신군부가 전일빌딩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만행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아무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비극을 증명하는 건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헐리고 주차타워가 될 뻔했던 사연은 서글프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영영 어두워지는 씁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반짝거린다. 이곳에서 씁쓸하고 서글프게 죽어간 삶을 기억하라는 듯이.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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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검색대 앞에 서면 분주하다. 일단 검색대 트레이 안에 가방을 놓는다. 이때 노트북과 액체류는 따로 꺼내야 한다. 재킷을 벗고, 허리띠를 빼고, 시계를 풀고, 때로는 신발을 벗는다. 몸에 지닌 어지간한 쇠붙이는 모두 꺼내 놓은 뒤 검색대 게이트에 들어선다. 양팔을 위로 들고 서 있으면, 기계가 나를 한 바퀴 스캔한다. 그 사이 검색대 위 나의 짐도 스캔 당한다. 어디론가 누군가를 향해 위협을 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비로소 나는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에드 앗킨스, 세이프 컨덕트, 2016, 3채널 비디오 ⓒ 에드 앗킨스

 

틀에 박힌 시간, 소셜 미디어에 의해 결정되는 자아의 모습을 탐색하면서 기술이 매개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슈를 다루어 온 에드 앗킨스는 공항의 검색대 앞에서 안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절차가 백인 서양 남성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끔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전을 위한 검열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나’는 어디까지 위험하고, 어디부터 안전한 것인가.

 

그는 마치 공항 검색대 앞 풍경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세 대의 모니터를 천장에 매달았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은 공항의 안전 프로토콜을 안내하는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애니메이션 속 인물은 재킷을 벗는 대신 얼굴을 반복적으로 벗겨내고, 코를 떼어내고, 간을 꺼내고, 피를 뽑고, 뇌를 꺼낸다. 안전 검색대와 장기은행 사이 어디인 것만 같다.

 

그는 공항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처럼, 매번 단지 하나의 모티브만을 지독하게 반복하는 볼레로의 선율을 흥얼거리며 위험하지 않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를 포기하는 중이다. ‘보안’의 이름으로.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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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거리 골목에 잠복하고 있는 계엄군. 1980년 5월27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만약 사진 속에서 누군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림자 밑에 매복한 군인들이 달려나오는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상상은 곧 소리로 바뀐다. 달려가는 군인의 거친 군화 소리, 휙 개머리판을 내리치는 소리, 퍽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으악 차마 끝까지 못 내지른 비명, 푹 맥없이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 입이 없는 사진에서 이렇게 처참한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 이미 창백한 흑백사진은 흥건한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1980년 5월27일 광주 충장로에서 찍힌 사진이다. 손글씨처럼 투박한 간판을 살펴보면, 오락실, 당구장, 고전 음악실, 생맥줏집 등 이곳은 젊은이들의 거리로 짐작된다. 저 멀리 삼복서점 간판까지 보일 정도로 맑고 화창한 오월이지만, 거리에는 군인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차마저 한 대도 없고, 상점들은 모두 셔터문을 굳게 내렸다. 이날 새벽 다섯 시 십 분, 진압 작전 종료를 선언한 국가는 시민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다. 무려 2만5000의 군인을 투입하고 난 뒤고, 시민들은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목격한 이후였다. 그 결과, 이 거리를 채워야 할 젊은이들은, 시민들은 죽거나 집에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국가가 국민을 죽였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된 80년 광주. 그날이 담긴 사진에서 숨어 있는 군인을 세다가, 이 텅 빈 거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게 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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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철 펜스 위에 남과 북 두 정상의 얼굴이 나란히 걸려 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한 프레임 안에 함께하는 모습 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 2018년 5월5일 ⓒ주용성

 

실제로 만나기 전부터, 각 언론사에서는 역사적인 만남을 예견하는 자료사진이 보도됐다. 판문점을 배경으로 두 정상이 함께 있는 이미지는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순간을 합성해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런 만남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27일,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났던 꿈같은 하루는 현실로 생중계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악수하고 농담을 나누며, 가볍게 군사분계선을 뛰어넘고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지난 5월5일,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그날 이후 달라진 분단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신도시 오피스텔 광고 현수막에 두 정상의 미소 띤 얼굴이 등장할 만큼 화해와 평화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나 사진이 찍힌 날, 같은 장소에서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김정은의 위선 평화공세’라고 주장하며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이처럼 두 정상의 얼굴과 종전선언 그리고 부동산 광고와 대북전단이 함께하는 장면은 분단 현실의 생생한 단면일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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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청년이 오른팔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는 사진은 대신 벽에 적힌 구호를 보여준다. “노조인정”, 글자 아래에는 창업주로부터 80년간 ‘무노조경영’ 방침을 이어온 회사의 이름이 보인다. ‘삼성’, 한 글자는 이미 새까맣게 타버렸다.

 

1989년 1월19일 서울 삼성본관에서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 소속 노동자 5명과 고려대 등 8개교 대학생 20명은 낮 12시부터 삼성본관 3층 베란다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들을 해산시키려고 경찰이 접근하자 삼성중공업노조 홍보부장 변성준 등 5명은 극약을 먹거나 몸에 시너를 뿌리고 극렬하게 반항하다 경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삼성본관을 점거하고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1989·1·19. 경향신문사

 

 

이제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조금 더 나아졌을 테니 극약을 먹거나 시너를 뿌리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은 불필요할 것만 같다. 그러나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의 최종범은 노조활동을 하다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었고, 노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33세, 첫돌을 앞둔 딸이 있었다.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염호석은 노조 설립 후 사측의 압박을 받다가 최종범을 뒤따랐다. 그의 죽음은 ‘마스터플랜’ ‘그린화 작업’ 등으로 불린, 이른바 노조와해 공작의 실적으로 포함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계일류니 또 하나의 가족이니, 기만적인 구호는 새까맣게 태워도 시원찮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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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매우 무섭고 섬뜩하다. 테이블에 놓인 수저통과 양념통, 주전자, 양옆의 컵까지 모두 무섭다. 뒤에 걸린 태극기와 양옆에 쓰인 ‘자조’, ‘자립’이라는 단어 또한 섬뜩하다. 도대체 이것이 왜 무섭고, 섬뜩하단 말인가? 사진 속의 이곳은 형제복지원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대규모 식당 전경, 1981년. 경향신문사 자료사진

 

형제복지원은 1960년대 문을 열어 1987년까지 3164명을 수용했던 전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던 이곳에서 513명이 사망했다.

 

사진 속에 가지런한 도구들은 513명에서 3164명까지 악몽을 겪었을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켜준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식당에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물을 마셨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저 많은 컵만큼, 저 커다란 식당을 채웠을 만큼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각성시켜준다.

 

그들은 이유 없이 끌려와 갇혔고, 이유도 모른 채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었다.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대학병원의 해부학 실습용으로도 팔려갔다.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513명이 죽었지만, 정부 당국의 수용 정책과 시설 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일치되면서 무려 12년 동안 진실은 은폐되었다. 이처럼 끔찍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지만, 1989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는 고작 징역 2년6월. 관계 당국의 직무유기, 부정과 비리행위 없이도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사진 속 태극기가 무섭고 섬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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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volume ⓒ이민지


물기 먹은 바닥에서 팔과 다리가 돌과 물병에 붙잡힌 비닐 우의는 사람의 허물 같다. 바람이 불자 투명한 허물은 진짜 사람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신기하게도 그 어떤 무생물도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숨을 멈추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숨이 있고 없고, 이 얄팍한 차이로 삶과 죽음의 아득한 간격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판가름된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사진에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만 숨을 쉬는 몸뚱이는 역설적으로 살아 있었지만 숨을 멈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민지의 ‘라이트 볼륨’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숨이 있고 없고, 그 사이와 차이에 머문다. 그 눈길은 마치 ‘혹시 숨을 쉬지 않는 걸까’ 싶어 코 주위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마음과 닮았다. 문득 너무나 가까워진 죽음 앞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조심스러움이 교차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눈길과 마음으로 포착한 할머니의 임종 전후의 풍경과 사물은 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처럼 막막한 불안감과 투명한 체념이 묻어 있다. 막막함과 투명함 사이, 숨이 있고 없고의 차이, 그 간격의 무게는 과연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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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오른팔을 들어 팔뚝질을 한다. 사진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바라보면 함성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불끈 쥔 주먹과 구호가 향하는 곳은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적힌 커다란 걸개그림이다.   

 

 

큰 규모의 시위나 집회, 장례 행렬마다 대형 걸개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인 연유를 시각적으로 요약하는 걸개그림의 모티프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사진에서 비롯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그랬고, 1989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노동해방도’도 그랬다.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어머니 영정을 끌어안은 상주 전태일의 모습이 담긴 걸개그림이 앞장섰다.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이 투쟁의 현장에서 구심점이 되는 걸개그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오른 젊은이의 사진 한 장이 커다란 투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 추모제, 1989년 6월9일 ⓒ박용수

 

그러나,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꾼다’고 쉽게 흥분하지는 말자.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바꾸는 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에 반응한 사람들의 힘이다.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그건 사진 마음대로 또는 사진가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함께 반응하고 움직여야 생기는 결과인 셈이다. 세상이 바뀌는 고비마다 사진이 함께 깃들어 우리의 기억과 망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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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기억 #여름방학2, 2017 ⓒ권도연 (제공_갤러리 룩스)


간신히 책의 몰골로 남은 종이 뭉치들이 재처럼 바스라질 것 같다. 영안실의 시신처럼 표본실의 표본처럼 창백한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드러낸다. 플래시의 강한 섬광과 함께 방부된 종이 얼굴에서 책의 영정을 떠올린다.

 

개인전 <섬광기억>(갤러리 룩스, ~4월22일)을 열고 있는 권도연 작가가 연출한 장면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작가의 아버지는 헌책방에서 사온 책들로 집 지하실에 작은 도서관을 꾸며줬다. 작가는 이곳을 자기만의 놀이터로 삼아 내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홍수로 지하실이 침수되는 걸 목격했다. 물이 차오르고 빠져나가는 과정 속에서 뭉개지고 찢어지고 분해된 것은 단지 책만이 아니었다. 현실과 독립된 채 완벽한 문장들로 둘러싸인 작은 세계가 그의 눈앞에서 붕괴된 것이다.

 

작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성장한 뒤에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 기억(이미지)을 사진으로 불러온다. 도서관에서 기증받은 헌책에서 낱장을 분리해 나무선반 위에 배치하고, 물리적·화학적 처리를 거쳐 기억 속 이미지에 더 다가간다. 어제 속절없이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장면을 이제 손으로 복원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다시 자기만의 작은 세계에 인도하는 일일 것이다.

 

이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보다 현실에서 사라진 장면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빛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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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앤드 파운드 프로젝트


표면이 지워지고 부식된 사진 속에 두 사람이 있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얼굴에는 코와 입이 지워졌고 눈만 간신히 보인다. 반대로, 다른 이는 눈 주위가 지워졌고 간신히 입만 보인다. 둘은 연인 사이일까, 아니면 부녀일까?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다정한 한때가 담긴 사진은 그들에겐 분명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발견된 사진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재해 현장에서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비록 망가진 사진이지만, 누군가의 추억이기에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사진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로스트 앤드 파운드(Lost and Found)’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수집된 사진들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재촬영해 색인파일 시스템으로 만들어 검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진의 주인을 찾아주는 게 프로젝트의 요지였고, 무려 1만9200장의 사진이 주인을 되찾았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 집과 도로 등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쌓은 시간과 기억들도 함께 부서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게 무너진 가운데 사진을 되찾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은 마법처럼 옛 기억 속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그 모든 것이 떠내려가도, 붙잡아야 할 소중한 추억이 사진 속에 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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