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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7.09.15 토마토와 손가락
  2. 2017.09.08 얇지만 깊은
  3. 2017.09.01 짓궂은 운명
  4. 2017.08.25 키스의 뒷면
  5. 2017.08.21 마음의 준비
  6. 2017.08.11 85번의 절망
  7. 2017.08.04 119시45분
  8. 2017.07.28 승자의 손
  9. 2017.07.21 내가 모르는 내 사진
  10. 2017.07.14 스피릿, 오퍼튜니티

Invisible Vision, 2016-17 ⓒ한경은


한동안 토마토를 먹지 못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토마토의 살을 베려던 부엌칼은 미끄러져 손가락을 파고들었다. 토마토보다 붉은 액체가 하얀 도마를 흥건히 적셨다. 신발 끈으로 동여매도 멈추지 않던 피는 기억에도 진득하게 들러붙었다.

 

몸에 새겨진 고통보다 기억력이 강한 것은 드물다. 의식적으로 망각하려고 해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게 토마토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이 시리고 아렸다. 고백하자면 토마토가 무서웠다. K와 M이 서로의 벗은 몸을 촬영한 한경은의 ‘비가시적인 전망(Invisible Vision)’을 바라보면서 토마토와 아린 손가락이 떠올랐다. K와 M은 고통이 새겨진 몸을 서로 바라보며 아렸을까. 또 무서웠을까.

 

K와 M은 버디무비 <델마와 루이스>처럼 여행을 떠났다. 둘은 얘기하며 울고 웃다가 말하기를 멈추고, 옷을 벗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아리고 무서운 기억을 마주하며 더욱 몸을 움직였을 것이다. 땀이 나고 숨이 차고 심장이 요동치는 몸을 통해 시린 기억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서로의 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토마토를 똑바로 쳐다보려 노력하면서 뒤늦게 알게 된 건, 그 칼이 결국 내 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기억보다 고통을 더 많이 지니고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몸의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몸인 저주, 그 고통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일은 아린 손 맞은편에 칼을 쥔 손마저도 ‘나’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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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압축과 팽창, <허니 앤 팁> 전시 전경(아카이브봄).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는 자신의 감방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화가 난 교도소장 노튼은 손에 잡힌 돌멩이 하나를 벽에 던진다. 그 돌멩이는 여배우 리타 헤이워스가 나온 핀업걸 포스터를 향해 날아가다가, ‘툭’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노튼 소장이 포스터를 걷어내자 앤디가 교도소 탈출을 위해 오랜 시간 팠던 구멍이 드러난다.

 

이 장면에서 리타 헤이워스의 사진은 의미심장하다. 얇은 종이로 감춰진 어떤 구멍의 깊이감이 묘하고, 어두운 현실(감방)과 밝은 이상(탈출)의 간극에 사진 한 장만 존재하는 것이 흥미롭다. 모두를 속이기 위해 얇은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한 것이다. 얼마 전 ‘압축과 팽창’(안초롱과 김주원)의 사진전 <허니 앤 팁>을 보면서 영화 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전시장 2층에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거나 한 대상에 천착한 작품들이 있다. 주제나 형식 등 기존에 중요시되는 사진 문법을 따른 것이다. 반대로 3층에는 기존의 형식에서 이탈한 사진들이 있다. 다채롭게 출력되고, 설치된 사진들은 모두 이미지 라이브러리에서 구매한 것이다. 이 사진들이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벽과 바닥에 마감재처럼 덧씌워진 3층 전시장은 이케아 쇼룸을 연상시킨다. 어떤 집에 살든 당신에게 맞는 인테리어 팁을 제시하는 이케아처럼, <허니 앤 팁>은 그동안 전시장에선 경험할 수 없던 사진의 모양새를 제공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진적 확장은 익숙했던 사진의 얇은 깊이감에 구멍을 낸다. 노튼 소장이 던진 돌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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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승무원들. NASA 아카이브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은은한 자신감이 스며 있다. 부드러운 미소에는 단단한 자부심이 머문다. 7명 모두 완벽한 표정이 나올 때까지 공을 들여 수차례 촬영했을 것이다. 우주를 탐사하는 막중한 임무와 우주비행사라는 영광스러운 명예에 걸맞게 말이다. 곧 다가올 성공을 대비해 촬영됐을 이 사진이 훗날 비극적인 실패를 상징하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2003년 2월3일, 사진 속의 그들을 태운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폭발해 산산조각이 된다. 이 사건은 최악의 참사로도 꼽힌다. 비행사들의 죽음이 예견됐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NASA의 발사책임자들은 컬럼비아호의 발사장면을 찍은 비디오를 관찰하다가 우주왕복선 방열판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때 무사히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정작 당사자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비행책임자 존 하폴드는 말한다. “공기가 떨어질 때까지 비행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승무원들이 즐겁게 비행하다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죽는 것이 낫지 않겠어?”

 

도대체 뭐가 더 낫다는 걸까. 다만 성공에서 비극의 상징으로 곤두박질친 이 사진처럼 우리의 삶과 죽음도 순식간에 교차된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증명사진이 영정이 되는 걸 상상하지 못하듯이 눈앞에 놓인 죽음을 몰랐던 비행사의 운명 앞에서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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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파리 시청 앞 거리에서 젊은 남녀가 키스를 나눈다.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절묘하게 포착된 순간은 파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전 세계에 수십만 장의 포스터와 엽서로 팔려나간 ‘시청 앞의 키스’는 모델을 구해 연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을 산다.

 

최근 이 사진을 찍은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그 비난은 온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 사진의 감동은 상당 부분 ‘실제 연인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연출됐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이 촬영된 때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떠올리면 복잡한 심사가 된다. 195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이 완연한 시절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유태인 학살과 드레스덴 폭격 그리고 나치 부역자를 처단하기 위한 길거리에서의 조리돌림 등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젊은 연인의 낭만적인 키스로 기억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시절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진에서 배신감을 느낄 부분은 ‘키스의 연출’이 아니라 키스로 가려진 현실이 아닐까?

 

“내가 볼 때 현실은 없다.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면만 보여줄 뿐.” 영화 속에서 두아노는 말한다. 연출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이 사진이 인기를 끄는 건, 두아노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진에서 ‘좋아하는 면만’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는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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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Mother Series, 2015 ⓒ양동민


환자복을 입은 중년 여인의 몸 위에 사진들이 올려져 있다. 오른쪽 어깨 위의 사진에서 여인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다. 가슴 위의 사진에선 딸과 함께 장난을 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산소 호스를 연결한 채 힘겹게 눈감은 여인의 얼굴에서 더 이상 사진 속의 눈웃음을 볼 수는 없다. 힘겨운 여인의 얼굴과 한때 즐거웠던 순간의 사진들 사이에 놓인 산소 호스는 가느다랗게 삶과 죽음의 간격을 잇는다.

 

사진가 양동민은 악성 뇌종양을 진단받은 엄마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엄마의 몸에 사진을 올려놓고 편지를 읽었다고 한다. 병실에 종일 누워 있는 엄마가 행여 외로울까 봐 곁을 지키며 사진과 편지로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려는 요량이었다. 작가는 그로부터 2주를 더 버텨낸 어머니를 지켜보았고,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삶과 죽음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훔치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제 사진은 너무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담긴다는 점은 여전히 특별한 것이다. 사진이 귀했던 시절, 시골집 대청마루에는 결혼·출산·성장·졸업 등 가족의 대소사가 알뜰하게 모인 사진 액자를 걸곤 했다. 엄마의 몸에 모여 있는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시골집 대청마루의 사진 액자가 떠올랐다. 부디, 엄마의 명복을 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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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한 장으로 겹친, 85명 열사의 영정들 #01, 2011 ⓒ홍진훤 강경대 강상철 고정자 권미경 김경숙 김기설 김동윤 김병구 김상진 김성애 김성윤 김수배 김순조 김영균 김용갑 김윤기 김의기 김종수 김종하 김진수 김철수 김태환 김학수 남태현 노수석 도예종 류재을 민병일 박래전 박봉규 박상윤 박성호 박승희 박일수 박종철 박태순 배달호 서도원 석광수 송광영 송석창 신건수 신연숙 심광보 안동근 양용찬 여정남 오원택 오한섭 원태조 유재관 윤창녕 이경환 이길상 이덕인 이병렬 이상남 이석구 이성도 이영일 이원기 이정순 이한열 이현중 임종호 장이기 장현구 전응재 정경식 정상국 정상순 정태수 조경천 조정식 천덕명 최대림 최동 최성묵 최윤범 최태욱 하재완 한상근 허세욱 홍덕표 황보영국


한 명씩 호명하며, 각자의 얼굴을 더듬기 위해 눈에 힘준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다. 85명의 열사를 한 장에 합쳤다는 사진가의 속내가, 또 영정이 될 줄 몰랐을 사진의 운명이 얄궂다.

 

2011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의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보다 8년 전 같은 크레인에 올랐던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농성 129일째 되는 날, 스스로 목을 맸다.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죽음이 겹쳐질지 모른다는 절망이 김진숙과 연대하려는 ‘희망버스’의 연료가 되었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숫자 ‘85’와 연관된 작품을 모으는 ‘85프로젝트’에서 사진가 홍진훤은 85명 열사의 영정으로 사진을 만들었다.

 

작가는 대학생 시절, 학회방에서 김주익의 추도사를 영상으로 보며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 추도사를 읽은 김진숙이 김주익을 이어 85호 크레인에 올랐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용산에서 허공에 매달린 망루가 불타며 사람이 죽는 걸 목격했던 사진가가 바라본 85호 크레인은 아득한 높이의 절망은 아니었을까.

 

모니터 창에 85개의 죽음을, 그렇게 85번의 절망을 불어오는 클릭 소리를 상상하면 아득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85개의 죽음이, 85번의 절망이 쌓인 이미지는 묘하게도 ‘살아달라’ 온몸으로 외친다. 이제, 아무도 그들처럼 죽지 말라고.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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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기억된 사진들

119시45분, Pigment print, 100×70cm, 2012 ⓒ유영진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쪽빛과 보랏빛이 물먹은 잉크처럼 번진다. 서서히 밤이 내려오는 무렵으로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하늘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제야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사진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낮처럼 보이는 하늘과 밤처럼 보이는 땅의 부조화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떠올린다. 공존할 수 없는 낮과 밤처럼 사진 속 그림자도 무언가 개운치 않다. 금세 농구대와 철조망 그리고 건물까지 그림자의 방향이 제각각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유영진의 연작사진 ‘Nowhere’ 중의 일부인 이 사진은 다양한 시간대에 촬영한 여러 사진을 한 장으로 조합한 것이다. 작가는 폴란드 그단스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풍경을 일주일 동안 여러 차례 나눠서 촬영했다. 그리고 13시5분, 18시15분 등 각각 촬영된 시간대를 모두 더한 ‘119시45분’을 제목으로 삼았다. 한 곳을 여러 차례 방문해 빛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촬영해 조합하는 과정은, 작가에게 어떤 장소를 사적인 기억 안에 자리매김하는 의미로 간직된다. 하지만 그런 의도와 별개로 흥미로운 것은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시제가 공존한다는 점이다.

 

흔히 순간 포착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사진은 보통 단일한 ‘과거형’ 시제만을 지닌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마치 영어의 ‘대과거’처럼 다층적인 과거형 시제가 공존한다. 과거의 한순간이 아니라 여러 순간의 빛이 중첩된 사진은 묘한 울림을 준다. 마치 저마다 다른 시기에 이미 사라졌을 별들이 지금 여기 내 눈앞의 밤하늘에서 동시에 반짝이는 것처럼. 그 점멸하는 빛들을 바라보면, ‘과거-현재-미래’ 선형적으로 다가오고 사라진다는 시간관념이 과연 온전한 것인지 곱씹게 된다. 어쩌면 시간이란, 이 사진처럼 그 어딘가에 겹겹이 쌓여 제 빛깔을 스스로 그려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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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카메라가 이 세계를 미화하는 본연의 역할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한 탓에, 이 세계가 아니라 오히려 사진이 아름다운 것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미국의 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이 떠오른 건 최근 열리고 있는 ‘라이프 사진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본 사진 한 장 때문이다.

 

Photo by Hugo Jaeger/Timepix/The LIFE Picture Collection/Getty Images ⓒ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나치의 상징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을 뻗어 경례한다. 좌측 아래 책상 끝에 아돌프 히틀러가 보인다. 옆에는 히틀러의 심복으로,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받아 적었다는 루돌프 헤스도 서 있다. 같은 줄의 양복을 입은 사람 옆에는 ‘나치당의 브레인’으로 불린 요제프 괴벨스도 있다. 1939년 4월28일, 베를린 크롬 오페라 극장에서 촬영된 사진이다. 이날 회의에서 히틀러는 폴란드와의 불가침 조약 철폐를 선언하는 기조연설을 한다. 전쟁에 관한 독일의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난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홀로코스트를 비롯해 5000만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그 숫자를 헤아리면서 사진 속의 저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으리라 예상했을지 궁금해진다. 만일 조금이라도 상상했다면 저렇게 맹목적으로 오른손을 뻗을 수 있을까?

 

그 집단적 광기만큼 오싹하고 서늘한 것은 그마저도 미화하는 사진 ‘본연의 역할’이다. 히틀러의 전속사진가 휴고 예거가 촬영한 사진은 다분히 나치의 승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오른손을 뻗을 때마다 함께 오른손을 뻗어 카메라를 들었던 전속사진가를 떠올려본다. 그렇게 승리의 그날을 장식하기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결국, 승자의 손에 들어간다. 독일 패전 후 사진을 숨겨왔던 예거는 승전국 미국의 대표적인 잡지 ‘라이프’에 그 사진들을 판매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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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단편영화 <어떤 죽음>(1995)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그린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폴은 자신의 오르가슴 순간을 촬영할 만큼 에고가 강하다. 그런 그에게 오랜 시간 연이 끊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누나에게 이끌려 억지로 병원을 찾지만 아버지와 마주한 그는 도망친다. 그리고 몰래 다시 병실을 찾아 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복수라도 하듯이 죽어가는 얼굴과 몸을 마구 찍어댄다.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하던 그는 아버지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사진에서 자신에게 향했던 아버지의 눈을 도려낸 뒤 그 사진을 마스크처럼 쓴다.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이 포개진 자신을 거울 앞에 비춘다. 얼마 후 장례식에조차 나타나지 않은 폴에게 누나가 아버지의 유품인 작은 상자를 건넨다. 그 안에서 아버지가 어린 폴을 안고 다정하게 입맞춤하는 사진이 나온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표정이 변하는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폴과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내가 모르는 내 사진’이 있다. 그 사진에는 당신이 나오지만, 정작 ‘언제-어디서-왜’ 찍혔는지 모를 것이다. 당신의 기억이 닿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유년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주로 앨범 앞부분에 꽂힌 그 사진들을 당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건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이야기해줬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카메라를 향하며 조금씩 알게 되었듯이, 폴 또한 아버지를 원망하던 카메라가 아이에게 향할 때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해피엔딩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르는 내 사진’ 속 장면과 순간을 나 대신 기억하는 누군가 있다는 걸 무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에 남은 사진이 나를 살뜰히 기억했다는 표시로 반짝인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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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오퍼튜니티가 바라본 자신의 궤적 (C)NASA/JPL-Caltech/Cornell University

누군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빌리면 그곳엔 아무도 없고, 사방엔 온통 모래뿐이다. 막막한 지평선을 바라보면 그의 고된 모험이 뚜렷한 궤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상상이지만, 온당치 않은 일이다. 화성탐사 로봇이 찍은 사진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2003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화성탐사 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우주로 보냈다. 화성에서 물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그들에겐 4쌍의 입체 카메라, 광각/어안 카메라가 장착됐다. 당초 3개월 정도 작동하리라 예상했지만, 스피릿은 무려 2011년 5월까지 작동됐고, 놀랍게도 오퍼튜니티는 현재까지 임무 수행 중이다.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수십만 장의 사진 중에는 자신의 궤적을 바라보는 장면도 있다. 일교차가 100도를 넘는 화성의 겨울을 견디고, 모래폭풍과 사구에 빠진 위기에서 탈출한 일화를 떠올리면 그 사진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스스로 재부팅해 시스템을 연장한 일화까지 더해지면 그 궤적은 적막하게 눈물겹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눈물겨움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그 사진이란 결국, 기계의 프로그램에 불과하지 않은가. 지구에서 입력한 명령어를 수행한 것 이상의 의미는 과하지 않을까. 어쩌면 사진마다 그 둘레에는 아름다움이나 눈물겨움을 장전시키는 크고 작은 신화들이 에워싸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 모든 걸 걷어내고 맨눈으로 바라본 사진은 그저 납작한 표면일 뿐이다. 그 서늘함과 적막함은 가공된 신화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지금도 오퍼튜니티는 매일 아침 태양이 전지판을 비추면 잠에서 깬다. 그리고 누가 응답하지 않더라도 지구로 신호를 보낸다. 이를 아름답고 눈물겹게 여기는 건 내 생각과 감정이 단지 신경세포와 호르몬에서 비롯되지 않으리라는 투박한 믿음과 통한다. 스피릿, 오퍼튜니티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박지수 |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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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