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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67건

  1. 2018.12.07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2. 2018.11.30 가장 멀리 간 사진
  3. 2018.11.23 남산 사진사
  4. 2018.11.09 하얀 원피스, 검은 다리털
  5. 2018.11.02 여기, 그를 보라
  6. 2018.10.22 그릴수록 사라지면
  7. 2018.10.19 강력한 열망
  8. 2018.10.12 80년생 아파트
  9. 2018.10.05 아는 얼굴
  10. 2018.09.28 동물원과 권총
  11. 2018.09.21 서울의 목욕탕
  12. 2018.09.14 검은 장갑
  13. 2018.09.07 로우-컷
  14. 2018.08.24 장면과 날짜
  15. 2018.08.17 빛나지 않아도
  16. 2018.08.10 떠나는 시선
  17. 2018.08.06 빛났던 목소리
  18. 2018.07.27 겉과 속
  19. 2018.07.20 제2의 조국
  20. 2018.07.13 노동자의 가면

그런 밤들이 있다. 라디오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목소리가 연이어 흐르는 밤. 짙은 어둠 속에 퍼지는 죽은 자의 노래가 산 자의 입으로 옮아가는 밤. 입술이 더듬은 노랫말에서 오래된 이미지가 쏟아지는 밤. 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 편집 1, 2018, 사진과 텍스트 프로젝션 ⓒ김주원

 

330장의 사진과 67페이지의 문장 그리고 60분의 음악으로 구성된 김주원의 ‘과거가 과거를 부르는 밤’은 죽은 자와 산 자, 말과 이미지, 기억과 과거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고 ‘수신되지 않는 신호’처럼 끊어진다. 가령, 첫 조카의 생일축하를 위해 풍선을 매달던 아버지가 다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조카의 생일을 기념하는 사진은 돌연 죽음을 환기하는 이미지가 된다. 아버지가 숨을 거둔 후에도 풍선에는 그의 숨이 남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풍경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안겨준다.

 

가까운 이들의 추억부터 뭘 먹고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 촛불집회를 비롯한 사회적 풍경까지 다양한 사진과 글이 연속되지만, 이는 결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야기의 완성보다 데이터를 수집하듯 낱장의 사진마다 최대치의 기억과 검색을 링크시키는 데 관심을 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설 속 주인공이 연상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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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듀크가 달에 남긴 가족사진, 1972년 4월20일 ⓒNASA

 

1972년 4월16일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열 번째 유인우주선 아폴로 16호를 발사했다. 우주선에는 선장인 존 영, 사령선 조종사 켄 매팅리, 달 착륙선 조종사 찰스 듀크까지 모두 세 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우주선 추진계의 수평유지 장치에 문제가 생겨 달 착륙이 중단될 뻔했지만, 무사히 발사 4일 후 달에 안착했다.

 

승무원들은 달의 데카르트 고지를 3일간 탐사했고, 월면차량의 성능 테스트를 했다. 이때 월면차량이 도달한 시속 18㎞는 달 표면에서 바퀴 달린 탈것이 낸 최고속도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월면활동은 20시간14분으로 최장시간을 기록했고, 95㎏의 월석도 채취했다. 그러나 아폴로 16호는 화려한 기록보다 소박한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된다.

 

승무원 중 찰스 듀크는 가족사진을 비닐백에 담아 달 표면에 남겨두었다. 사진 뒤에 메모도 적었다.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 듀크의 가족, 1972년 4월 달에 착륙함.’ 지구로 돌아온 그는 “달에 남긴 건 발자국만이 아니다. 가족사진도 함께 남겨뒀다”고 말했다. 2013년 이 사진이 처음 공개될 때, NASA는 “많은 우주비행사가 달에 개인적인 기념품을 남기고 온다”며 “듀크는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광대한 우주에 남아 강한 태양빛을 맞는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비록 사진은 새하얗게 바래도,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가장 멀리, 가장 오래 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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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사진사 소송윤씨와 김한식씨의 모습, 1987년 5월14일, 경향신문사

 

두 남자가 똑같은 모자를 쓰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 소송윤씨와 김한식씨, 두 사람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산 사진사이다. 80년대 초 팔각정, 분수대, 야외음악당 등 구역을 나눠 남산에서 영업했던 사진사는 90여명이었다. 당시 서울 관광의 필수 코스인 남산은 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남산 사진사가 되려면 ‘남산사진협회’에 가입하고, 자릿세를 내야 할 정도였다.

 

남산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창경궁, 어린이대공원 등 전국의 유원지마다 사진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입학식, 졸업식, 소풍, 운동회 등 한 가정의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에도 등장했다. ‘사진’ 또는 ‘촬영’이라고 쓴 완장을 팔에 차고, 필름 사진과 즉석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차려’ 자세를 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카메라와 사진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손에 카메라(스마트폰)를 들고, 수시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올리고 보내는 시대가 되면서 남산의 사진사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의 완장처럼, 그 시절의 ‘차려’ 자세처럼 무언가 특별했던 사진은 이제 흔하고 흔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사진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다. 입학사진에서 결혼사진까지, 증명사진에서 영정까지, 우리의 생애주기마다 깃드는 사진의 특별한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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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장식이 달린 하얀 원피스를 입고, 벨벳 소재의 폴라넥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립스틱 색까지 핑크빛으로 맞췄다. 가지런한 단발머리에 화려한 귀고리까지 여성스럽다. 손목에는 투박한 쇠팔찌를 차고, 팔뚝에는 엉성한 문신이 있다. 다리를 벌리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 거뭇한 다리털까지 전혀 여성스럽지 않다.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상반된 특징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그런데 둘 사이를 나눴던 나의 기준은 과연 어디서 비롯되는가.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아디다스 광고. 인스타그램 캡처

 

스웨덴의 사진작가 겸 모델인 아르비다 비스트룀이 출연한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광고 사진이다. 비스트룀은 인스타그램에서 다리,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의 털을 드러낸 셀피로 유명하다. 신체 부위와 체모의 노출, 생리혈 등 인스타그램에서 필터링하는 사진을 의도적으로 올리며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그의 예술 작업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이미지를 검열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통념에 의심을 던진다.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젖꼭지가 있고, 털이 나고, 피를 흘리는데, 왜 여성의 경우만 필터링되는가. 어쩌면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둘을 나눴던 나의 기준 또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에 공조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해 비스트룀은 이 광고 사진을 찍은 후 성폭행 위협을 받았다. 여성이 ‘여성스럽지 않음’을 선택할 때 가해지는 검열과 규제는 21세기에도 이렇게 흉포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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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레임 안에 여러 얼굴이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다. 다중노출과 장노출로 얼굴의 윤곽이 뒤섞이고, 이목구비가 허물어진 형상은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초상화를 닮았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형상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존재가 분열하거나 해체되는 고통의 순간이 가시화된다면,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The Portrait 2, Archival Pigment Print, 110x90cm, 2018 ⓒ권순관

 

일반적으로 선명한 얼굴이 담긴 초상 사진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연동된다. ‘그는 누구인가?’ 사진 속의 그가 어떤 존재인지 식별하려는 인식 능력이 발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뼈와 살이 마구 뒤엉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얼굴을 분별하기 어려운 권순관의 초상 사진은 우리의 인식 능력을 무력화시킨다. 이 사진을 바라볼수록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원초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그 얼굴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또는 ‘그는 과연 볼 수 있는 존재인가?’ 대답은 뭉뚱그려진 얼굴처럼 불확실하다. 다만 확연한 게 있다면, 사진 속 존재의 고통이기에 베이컨의 그림을 볼 때처럼 또다시 마음이 서늘해진다.

 

사진 속의 그는 장기 복역한 양심수이다. 이념의 논리에 따라 반대쪽 체제에는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인 셈이다. 국가에 의해 투명 인간 취급되는 그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사진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여기, 그를 보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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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검은 그림, 흰 그림(feat. 부원희 작가의 시 ‘부동시’), 2018, 캔버스에 유채, 50.5×60.8㎝, ⓒ박세진 누크갤러리 제공

부원희의 시구절처럼 ‘자꾸만 갸웃대며/뒤뚱거리는’ 날들을 보내면서 화가 박세진은 검은 그림을 그렸다. 애초에 검은 캔버스는 물감을 올려 색과 형태를 표현해봐야 그저 삼켜버렸고, 반복적으로 쌓은 유화물감의 반사층만 남아 간혹 반들거렸다. 박세진은 검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릴수록 사라지는 지난 1년의 노력과 고생 끝에 깨닫고 말았다. “흰색 바탕에서 시작했으면 쉬웠겠다.” 검은 화면에서 형태는 뭔가 지나가고 난 뒤의 흔적처럼, 어쩌다 남은 얼룩처럼 있었다. 애초에 흰색 바탕을 선택하지 못한 그는, 흔적과 얼룩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위한 다른 통로가 필요하다.

 

화가는 햇빛 찬란한 여름날 역광 안으로 들어가 그 한때의 어두움을 캔버스에 담았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인물인 듯, 돌인 듯 무언가를 앉혔다. 어쩌면 ‘구도’ 중일지도 모를 ‘이것’은 흔들림이 없이 꽤 고요하다. 그림 바깥에서는 여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작가는 역광 한구석에 오리 무리와 앉았다. 어둠 속에서 하얀 오리들은 꽤 역동적이고, 화가도 그렇다.

 

그는 자기 발밑에 흰 그림과 (보이지도 않는) 검은 그림을 던져놓은 채,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회고하고, 지인이 보내온 박경리 선생의 오리 사진을 생각하고, ‘공간이 움직이는 순간을 들려주는 힘’을 가진 시인의 시구절도 떠올려보느라 그 나름 분주하다. 그는 약속된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지도 못했으면서, 두리번거리기를 멈추지 못하고 그림 바깥 오른쪽 공간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다. 얼룩처럼 어둠에 깃든 채, 약속된 시간을 유예하는 그는 지금, 이 어둠이 고마울지도 모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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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8월 어느 달 없는 밤, 해양생물학자 루이 부탕은 프랑스 남부 바뉼쉬르메르 지역의 바닷가에서 배에 짐을 싣고 있었다. 산소를 채운 커다란 나무통과 수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램프 등 온갖 장비를 싣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대단한 해양탐사가 시작되는 낌새를 풍겼던 루이 부탕의 목표는 당연히 미지의 해양생물일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바닷속에서 연구한 대상은 바로 ‘사진’이었다.

 

에밀 라코비차, 1899년 ⓒ루이 부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중사진’이 바로 그날의 연구 결과다. 루이 부탕은 수심 50m에서 루마니아의 해양학자 에밀 라코비차를 촬영했다. “Photographie Sous Marine(수중사진)”이라고 쓰인 팻말을 든 모델과 촬영자는 사진 한 장을 위해 수심 50m에서 30분 동안 질소마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신식 장비를 갖춘 현대의 스쿠버다이빙이라도 수심 50m에서는 3분 이내로 잠수 시간을 제한한다. 이를 감안하면 루이 부탕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그 무모함은 강력한 열망의 방증이기도 하다.

 

“너무나 아름답고 낯설어서, 그 장면을 그대로 스케치하고 싶었다. 늘 바닷속에서 본 풍경을 수면 밖으로 건져내기를 갈망했다.” 루이 부탕이 했던 말에서 어떤 힌트를 얻는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달라져도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말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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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들은 녹색 파도처럼, 아파트는 떠다니는 하얀 배처럼 보인다. 녹색 바다를 이루는 나무들은 아파트의 나이테 역할을 한다. 몸집의 크기로 아파트 연령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흔을 앞둔, 1980년생 둔촌주공아파트는 철거를 진행 중이다.

 

둔촌주공아파트, 2016년 ⓒCDAPT

 

오래된 아파트가 허물어진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도시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해야만 도시는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기까지 생애주기를 아파트 단지와 동기화한 이들에겐, 그저 ‘흔한 일’로만 단념할 수 없다. 이곳이 고향이자 기억의 뿌리인 80년대생 아파트 키드를 중심으로 둔촌주공아파트에 관한 기억을 간직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사진을 찍은 최종언 또한 아파트 키드이자 아파트 덕후다. 트위터에서 ‘CDAPT’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찍은 아파트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CD’는 그가 살고 있는 창동의 약자이며, 우연한 계기로 아파트 단지를 순례하면서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통적으로 또는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와 풍경을 수집하고, 이를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분류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철거 예정일에 맞춰 사라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를 확인하는 그의 사진은 사적인 애호로 출발했지만, 국내 아파트 생활과 문화의 공적인 기록·기억으로 자리 잡기에도 손색이 없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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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코닐리어스, 셀프 포트레이트, 미국회도서관 소장

 

한 사내가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1839년에 촬영된 낡은 사진은 비록 유령처럼 희미하지만 헝클어진 곱슬머리와 오뚝한 콧날, 진지한 눈빛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코닐리어스, 미국 사진술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럼, 이 사진의 촬영자는 누굴까? 바로 코닐리어스 자신이다. 프랑스에서 사진의 발명을 공표한 1839년과 같은 해에 벌써 셀카 사진이 등장한 셈이다. 코닐리어스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버지의 램프 가게 뒤편에 설치한 카메라 앞에서 10분가량 꼼짝 않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얻었다. 최초의 사진술인 다게레오타이프로 촬영된 이 사진은 세계 최초의 셀프 포트레이트로 간주된다.

 

170여년 전 코닐리어스의 첫 장 이후, 오늘날 셀카 사진은 하루에 3억5000장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이미지라 그런지 별의별 사건도 발생한다. 위험천만한 곳에서 셀카를 찍다가 사망하거나, 한 10대 소년은 셀카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셀카 중독 등의 부작용이 언급되는 요즘이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의 역사를 움직인 중요한 욕망이다. 사진이론가 존 택은 “사진이란 그저 자신들이 아는 이들의 얼굴 사진을 획득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아는 얼굴, 또는 알고 싶은 얼굴이라면, 그 무엇보다 자신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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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롱크스 동물원의 오타 벵가, 1906년, 미의회도서관 소장

 

1906년 이색적인 구경거리를 준비한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은 흥행 중이었다. 나이 23세, 키 150㎝, 몸무게 45㎏, 난생처음 본 동물 앞에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던져주며 환호했다. 몇몇 구경꾼들은 내심 기대했던 눈요깃거리가 못 되자 야유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격렬한 환호와 야유를 한몸에 받은 새로운 구경거리는 바로 인간이었다.

 

아프리카 콩고의 피그미족 오타 벵가(Ota Benga)는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전시됐다. 그는 1904년 콩고를 침략한 벨기에군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후 생포되어 노예 상인에게 팔렸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만국박람회와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됐다. 동물원에 온 이후, 처음에는 사육사를 도와 침팬지에게 먹이를 주며 동물들을 돌보기도 했지만, 차츰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다.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구경거리이자 동물원에 갇힌 신세라는 것을. 1910년 인권운동가들의 항의로 풀려난 벵가는 교육을 받고 담배공장에 취직하는 등 평범한 삶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1916년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타향에서 비극적인 생을 살다간 오타 벵가가 처음 전시됐던 박람회의 전시명은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사진 속의 청년 벵가가 우리를 응시하며 묻는다.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과연 어느 쪽인가?” 그는 자살하기 전, 홀로 피그미족 전통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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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낡은 목욕탕 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물함과 텔레비전, 냉장고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손님이 줄었거나 혹은 자판기라도 들여와서 퇴역했을 냉장고는 본연의 임무 대신 텔레비전 받침대로 사용된다. 플러그가 꽂혔던 왕년에는, 목욕을 마친 꼬마들이 저 냉장고에 뽀얀 얼굴을 들이밀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바나나 우유와 딸기 우유 사이에서.

 

서울의 목욕탕, 산호탕 ⓒ박현성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6699프레스, 2018)에 담긴 장면 중의 하나다. 책은 서울에 위치한 30년 이상 된 목욕탕 10곳의 일상적인 풍경과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집해 전달한다. 시간의 무게에 부서지고 허물어지는 목욕탕의 외관에서, 대야와 앉은뱅이 의자 등 더 이상 새것으로 바뀌지 않을 목욕탕 기물에 묻은 손때까지 모두 사진에 살뜰하게 담겼다. 그 이미지들은 이곳이 내일 사라질 것이다, 현실을 일러주는 동시에 이곳이 어제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 같다, 환상을 부풀린다.

 

그러나 내일의 현실이든 어제의 환상이든, 개의치 않을 서울의 목욕탕은 오늘도 ‘목욕합니다’와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 사이에서 변함없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러한 목욕탕의 일상을 가만히 멈춰 보여주는 데 주력하는 사진책에는 특별한 일화도 없고,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바람 잘 날 없는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 맨몸으로 홀가분하게 들어서는 목욕탕의 미덕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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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17일 멕시코 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200m 시상식이 열렸다. 미국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영광스러운 자리인 시상식에는 기쁨과 환호 대신 한숨과 야유가 터져나왔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시상식 장면. AP

 

아프리카계 미국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시상대에 맨발로 올랐다. 미국 국가가 나올 때 고개를 푹 숙이고 검은 장감을 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른바, 흑인 저항운동 ‘블랙파워’에 지지를 표시하는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였다. 스미스의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는 흑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며, 카를로스가 지녔던 묵주는 희생당한 흑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이후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고 선수촌에서 추방됐다.

 

50년 전의 그들을 닮은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최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광고에 등장하면서 미국이 시끄럽다. 2016년 그는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기립 대신 무릎 꿇는 행동을 했다. 이듬해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은 괘씸죄로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해 선수 활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그가 광고에 나오자 뜨거운 지지와 함께 나이키 매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도 SNS에 올라온다. 아직도 백인 중심의 세상에는 여전히 ‘검은 장감’이 불편한 이들이 있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용기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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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로우-컷 #07, 피그먼트 프린트 위에 흰 먹선, 140x180cm, 2018 ⓒ김천수

 

김천수의 사진전 <로우-컷, 로우-패스>(일우스페이스, ~10·2)는 강북의 한 고급아파트를 독특하고 기묘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작가는 개발 당시 갈등과 논란이 빚어졌던 그 아파트를 다양한 거리와 앵글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아파트가 완공되기 이전의 풍경들 또는 설계도와 평면도에서 차용한 아우트라인을 사진 위에 흰색 먹줄로 튕겨 중첩시켰다.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탐색하려는 문제는 ‘현대 도시의 과밀성’이다.

 

도시는 한정된 공간 안에 다양한 편의 시설과 많은 인구를 집중시키며 발전한다. 고층 건물, 주차 타워, 상업 지역, 역세권 등 또한 효율성의 논리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작은 폭탄이 터져도, 잠시 정전되어도 도시에서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효율을 극대화한 도시 재개발이 심각한 갈등을 낳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효율성이 오작동되는 도시를 디지털 이미징 프로세스와 견준다. 최신 기술이 집약된 고해상도의 디지털 카메라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이미지는 유령을 닮았다. 사진마다 건물의 형체가 보이지만, 어느 것도 온전한 이미지는 없기 때문이다. 흐릿하거나 휘어진 건물의 형상은 어둡고, 선명하고 곧게 뻗은 실선은 희다. 흐릿하거나 선명하고, 휘어지거나 곧고, 검거나 하얀 대비 속에서 온전히 보이지 않는 유령 건물을 바라볼수록 환시처럼 불길하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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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대통령 경기도 김포의 모심기 참석. 1980년 5월 28일. 정부기록사진집 11권.

 

논 옆에 밀짚모자를 쓰고 바지를 걷어붙인 남자가 걸어간다. 농부라고 하기에는 밝은색 점퍼 안에 입은 셔츠와 뿔테 안경이 어색하다. 아무리 봐도 농부가 아니라 관료에 가까운 남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모심기에 참석했다. 매년 봄 신문에 등장할 만한 사진으로, 특별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촬영된 날짜를 살펴보면 모멸감이 치밀어 오른다. 1980년 5월28일, 5·18민주화운동이 진압된 다음날이다. 27일 새벽 3시 광주에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진입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애절한 가두방송이 채워지고, 오후 4시10분 계엄군은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들에게 사격했다. 무려 2만5000여명의 군인이 투입되어 오후 5시10분 진압 종료가 선언되었다. 5월29일 망월동에서는 129구의 장례식이 일제히 진행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또 수많은 시민들이 슬픔에 빠졌던 27일과 29일 사이 국가의 수장은 모심기에 참석했다. 모를 심으면서 정종택 농수산부 장관에게 전남 및 광주의 모내기 작업 현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날의 모습은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이 단 한 장도 수록되지 않은 정부기록사진집에서 1980년 5월의 시간을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사진에 보이는 현실보다 숨겨진 현실, 사진에 기록된 장면보다 배제된 장면에서 비롯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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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Untitled_hawon1695, 2013 ⓒ김옥선

 

사진에는 눈부신 제주도의 하늘이나 싱그럽게 푸른 야자수가 없었다. 햇빛이 표백된 회색빛 하늘, 활력 없이 타들어가는 야자수, 모든 것은 볼품없이 회색빛으로 말라갔다. 사람의 얼굴마저도 회색빛으로 보였다. 남성도 여성도, 원주민도 이방인도 아닌, 모두 생기가 빠진 회색인일 뿐이었다. 하늘과 야자수, 사람들까지 사진 속에서는 모두 빛을 잃어가는 회색의 존재였다.

 

빛나는 백(白)으로 태어나 빛을 잃고 어두운 흑(黑)으로 향하는 회색. 백과 흑, 어느 쪽도 아니면서도 둘을 동시에 지닌 회색. 흙과 먼지가 묻고 점점 녹아가면서 다시 하얗게 빛날 수 없는 눈사람의 회색. 그런 회색빛만 가득한 사진은 ‘모든 존재는 빛난다’거나 ‘저마다 빛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빛나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인지 환기한다. 회색 사진은 오히려 빛을 잃어도,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회색의 존재라고, 모두 빛을 잃어가며 점점 녹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생이란, 눈사람이 빛을 잃고 더러워지며 녹는 과정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로 애써 반짝거릴 장면을, 빛나는 순간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그것이 잠깐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빛을 잃지 않거나 녹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색의 존재가 회색의 얼굴과 나무를 회색으로 수긍하는 회색 사진에는 결연한 의지와 산뜻한 체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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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기고 유능한 패션 사진가 로맹은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 어긋난 관계만 남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연인, 여동생, 아버지 등 모두 그에게 분명 소중한 이들이지만,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조차 털어놓지 못할 만큼 관계가 소원하다. 유일하게 할머니에게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한 그는 홀로 담담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한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의 한 장면.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타임 투 리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죽음 앞에서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매우 사진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영화는 죽음을 선고받은 후, 콤팩트 카메라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로맹을 자주 보여준다. 화해하지 못한 연인, 여동생, 아버지 앞에서도 카메라를 드는 그의 모습은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모두 기록하려는 것만 같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그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지만, 계속 죽음을 앞둔 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든다.

 

로맹은 마지막으로,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어린 시절처럼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일광욕과 수영을 한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카메라를 들고 주변 풍경을 알뜰하게 찍는다. 모래사장에 누워 조용히 눈물 한 방울을 흘린 후 눈을 감은 그는 무엇을 바라봤을까?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떠나야 하는 시간 앞에서.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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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추도식, 연세대 대강당, 2018년 7월26일 ⓒ김흥구

 

솔직히 노회찬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그를 좋아했다면, 결국 그가 했던 말을 좋아한 것이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 가장 알아듣기 쉽게 말했던 그의 화법은, 정치 고수로 통용되던 김종필식 선문답과 매우 대조적이다. 고도의 복선이 깔렸다는 김종필씨의 말에서 무엇을 했다는 건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파악할 수 없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화법으로,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에 유용한 방식이다. 고수끼리는 통한다는 이 화법에는 시민은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특권의식이 숨어 있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식 동문서답도 노회찬의 화법과 대비된다. 기자의 질문에 횡설수설했던 박 전 대통령의 대답에는 논리가 없다.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면 논리가 필요하며, 그래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지시와 명령에 익숙하다면, 레이저 눈빛을 쏘거나 헛기침으로 심경 경호를 받아왔다면, 굳이 논리적으로 생각을 전달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알아들을 비유를 구사하고, 누구의 잘잘못인지 분명한 노회찬의 화법은 자기 발언에 책임지는 말하기 방식이다. 상대가 누구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대화 방식은 수평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특권의식과 권위의식에 젖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노회찬의 목소리가 빛났던 이유다. 그의 말을 너무 오래 공짜로 들었던 우리의 마음은, 안녕을 고하는 건지 붙잡는 건지 모를 사진 속의 손처럼 검고 쓰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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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아주 옅은 살색 벽면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미묘한 차이로 빛난다. 그 한가운데 알 수 없는 네모난 구멍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왜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는 판이 벽면의 겉과 속을 가로지른다. 색감과 재질로 보아 벽면과 같은 자재로 보인다. 벽면의 겉이 되는 판이 벽면의 속을 침투한 모양새라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구멍을 통해 벽 속에 다양한 자재가 숨겨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얇디얇은 판 하나를 경계로 눈에 보이는 ‘겉’과 보이지 않는 ‘속’이 나뉜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정지현의 사진 연작 ‘CONSTRUCT’는 건물이 완성된 이후에는 마감재의 표면에 가려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감춰지는 건축 자재와 공법 등을 가시화한다. 그동안 건물의 해체 과정에서 신축 현장까지 건축의 생애주기와 도시의 변화를 기록했던 작가는 최근 건축 공정의 신속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얇고 가벼워지는 건축 자재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건축 과정에서 건축물의 일부로 변화하는 자재들을 수집하고 재배치하면서 사진으로 기록했다.

 

건물의 속살이 드러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거대하고 육중한 건물에는 보이진 않지만 얇고 가벼운 소재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하나의 건물이 생성-소멸하듯이 변화하는 도시에서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겉과 속’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상상하게 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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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명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이부터 중년의 어른들까지 앞사람의 얼굴이 뒷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포즈를 취했다.

 

그들 앞에는 이민 가방을 포함해 크고 작은 짐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굳이 자기 앞에 둔 짐들이 그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무거운 짐 뒤에서 그들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온 베트남 난민들, 1982년 5월20일, 경향신문사

 

1982년 5월20일, 베트남 난민 중 41명이 서울역에 도착했다. 부산 난민보호소에 수용됐던 이들은 세 차례에 걸쳐 부산항으로 들어온 베트남 난민 168명 중 일부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전 재산이었을 이민 가방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머물던 부산 난민보호소는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재송동 1008번지에서 운영됐다. 이곳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거나, 미국과 뉴질랜드 등으로 떠났다. 1993년 역할을 다한 부산 난민보호소에서는 난민 환송식과 현판 하강식이 열렸다.

 

그날 뉴질랜드로 떠날 한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인정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제2의 조국’에서 요즘 난민법 폐지 국민청원자가 70만명이 넘는다는 걸 알까? 70만 숫자 앞에서 41명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오래전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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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볼펜을 손에 들고 서류를 검토하거나 자를 대고 표를 그리는 모습이 생경하다. 책상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는 사무실의 모습은 어색하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직원들이 가면을 쓰고 일하는 모습이다. 넥타이를 맨 양복차림에 가면을 쓰고, ‘요구관철’ 구호가 적힌 머리띠까지 한 모습은 이상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1971년 가면을 쓰고 감원반대 시위를 하는 한국전력 노조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배격한다! 우리는 횡포 기업주를.” 1971년 한국전력 노조원들이 내건 노동운동 슬로건이었다. 이른바 ‘관료자본주의시대’로 일컬어졌던 박정희 시대에는 기업주들이 관을 등에 업고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횡포를 자행했다.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면서도 노동자들이 무단해고, 불법 연장노동, 임금체불 등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권력은 ‘경제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기업의 불법행위를 암묵적으로 눈감아주었다.

 

그랬던 1970년대 시절의 노동운동 중에서 특이한 장면은 파업의 일환으로 가면을 쓰고 태업하는 모습이다. 비록 태업이지만 양복 차림으로 기어이 출근해 일하는 모습은 당시 노동자들의 서글픈 현실 같다. 그러나 더 서글픈 것은,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여 기업주의 횡포에 저항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이다. 한편, 30명의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잃어도 복직이 되지 않는 냉혹한 노동 현실은 그야말로 괴기스럽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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