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

미장센 광장에는 무수한 말들이 떠돈다. 절실함으로 가득 찬 이들이 찾는 이 열린 공간에서는 설령 혼자서 말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외침이지 독백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광장 자체는 말이 없다. 극우 기독교 단체의 구국 기도회와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같은 장소에서 돌림노래처럼 퍼져나간다. 백만명을 끌어모은 나치의 정치쇼도 북한의 화려한 매스게임도 월드컵을 뜨겁게 물들였던 붉은악마의 응원도 모두 광장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라면 한번쯤 찾아오기 마련인 집회장에서 노기훈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아니라 장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뜨겁지만 멀리 퍼지지 못하는, 혹은 서로 다른 말들이 부딪치며 아수라장이 되는 그곳이 그에게는 마치 연극 무대 같았다. 광장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며 신고된 일정에 .. 더보기
슬픈 전설의 역사 천경자 화백(1924~2015)은 ‘슬픈 전설’과 화려한 작품으로 살아간 20세기 한국화의 전설이다. 그의 부고 역시 전설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슬픈 전설’을 놓지 않은 삶이다. 천경자의 전설은 20세기 한국에서 예술가로, 여성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한국의 역사다. 정치사가 한국 근현대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예술과 삶으로 방증한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는 50대에 22살을 기억해낸 자화상이다. 그녀가 22살이던 1945년에서 70년이 지난 올해 ‘슬픈 전설’은 역사가 되었다. 천경자의 슬픈 전설은 의 뱀과 장미를 떠올리게 한다. 욕망의 뱀. 머리에 뱀 4마리가 오글거린다. 뱀은 어린왕자에게 “사람들이 있어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야”라.. 더보기
쇼룸 아날로그 시절의 앨범 사진은 기술적으로만 보면 거의가 B컷이다. 초점은 흔들리고 신체의 일부는 구도 밖으로 잘려나가기 일쑤다. 그럼에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이나 꽤 진지했다. 똑딱이 수준의 카메라여도 필름을 사고 사진으로 뽑아내는 데는 값을 내야 했기에 촬영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그만큼 카메라를 쥔 사람의 주문이란 절대적이었다. 의욕이 클수록 모두가 얼어붙은 자세로 나오는 정반대의 결과가 허다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같아진 셀피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불편함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누르면 그뿐이다. 엉뚱한 표정, 흔들리는 동작이 담긴 B컷을 일부러 즐긴다. 네덜란드 사진가 윌렘 포펠리에는 이런 표정들을 수집한.. 더보기
[선승혜의 그림 친구]‘부드러움의 힘’ 한국문화에서 ‘곱은옥’은 부드러움의 상징 원형이다. ‘곱은옥(曲玉)’은 누에고치가 살짝 구부러진 듯한 모습으로 옥을 깎은 꾸미개다. ‘곱은옥’은 길을 상상하게 한다. 곱은옥은 아시아대륙 가운데 한국, 만주,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다. 곱은옥은 한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를 풍미했다. 중국의 홍산문화에 ‘C’자형 옥기가 있지만, 곱은옥과 모양도 크기도 다르다. 손에 쥐면 쏙 들어오는 크기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상징적 표시물로 어울린다. 긴 이동의 여정에서 곱은옥을 가진 자가 우리의 지도자라는 상징 같다. 곱은옥으로 연결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시아의 고대 미감을 상상해본다. 곱은옥의 모양은 부드러움이다. 비정형 윤곽선은 각지지 않고 흐르듯 부드럽다. 표면은 부드러운 촉감을 위해 정성껏 갈려 있다. 손에 .. 더보기
구름 그림자 영혼 구름과 그림자와 영혼은 각각 이름이다. 짧고도 깊은 의미를 품은 인디언의 이름인가 싶은데, 모두 반려동물을 부르던 이름이다. 금혜원은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이 이름들을 아예 작업의 제목으로 삼았다. 듣고 보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몽실한 애완견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는 하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 반려동물을 둘러싼 문화 현상은 이제 비켜갈 수 없는 질문이다. 키우던 개의 죽음을 아버지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동일시하던 친구의 말이 작가로 하여금 반려동물의 장례 문화를 추적하게 만들었다. 의식으로서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람과 같은 지위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금혜원은 한국은 물론이고 반려동물의 장례 문화가 오래되었다는 일본과 미국까지 찾았다. 반려동물과의 이별.. 더보기
“붉은 먼지와 황금빛” 문화는 빛으로 이어진다. 빛은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시대의 빛이다. 빛은 먼지투성이의 세상마저 붉게 단장시켜, 빛으로 물든 속세를 ‘붉은 먼지(홍진·紅塵)’라고 부르게 한다. 빛은 볕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로애락으로 뒤엉킨 응어리를 녹여내 영원에 닿게 한다. 빛은 마음속에 곱디고운 비단결을 보는 순간을 선사한다. 빛의 아름다움은 붉은 먼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성스럽다. 각 시대의 빛은 세속의 홍진과 어우러져 제 빛깔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귀고리’, 신라 6세기, 경주 합장분 출토, 국보 90호 10월에는 경주로 가자. 신라로 가자.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은 빛을 찾는 순례다. 신라의 황금빛은 권력의 군림이 아닌 자연과 사람, 성과 속의 연결빛이다.. 더보기
붉은 실 일본에는 이런 옛이야기가 있다. 천생연분은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서로의 손가락을 묶고 있다는. 그러나 운명의 신도 실수는 하는 법이라서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실 또한 살다 보면 끊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후지 요시카쓰의 부모님도 그렇게 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 이럴 때 문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묶인 붉은 실이다. 이 실은 연인 사이보다 단단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란스럽던 후지 요시카쓰는 이 붉은 실을 작업 대상으로 삼아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작업은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으로 시작해 자신과 동생의 등장이 잦아지는 두툼한 가족 앨범을 한 축으로 삼는다. 여기에 독립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홀로서기를 촬영해 덧보탠다. 이 과정에서 서먹했던 아버지와의 느슨한 관계.. 더보기
건축은 부동산이 아니다 지난달 말 베이징 디자인위크라는 행사의 개막식에 기조강연을 요청받아 가게 되었다. 6회를 기록하는 행사지만 그 수준을 몇 해 전에 경험한 적이 있어 올해의 행사도 만만히 보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기조강연인데도 다른 일을 핑계로 처음부터 참석하지 않고 내 순서가 닥쳐서야 강연장에 입장하는 오만을 부렸다. 게다가 중국 땅에서 건축설계 작업도 15년째 하고 있으니 중국의 건축과 도시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솔직히 말하면 낮춰본 게다. 근데 이 모든 게 오산이었으며 이 행사로 끝내 적잖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예컨대 중국의 건축가 100인을 불러모아 펼쳐놓은 전시회는 모두가 대단한 질적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소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왕슈만큼 혹은 그보다 더.. 더보기
당문화는 다시 깨어나는가? 역사는 순간마다 문화기억을 축적하고 되살린다. 최근 중국은 당나라의 문화기억을 부활시키고 있다. 한국인에게 당나라는 정치적으로 신라의 나당연합으로, 인물로는 당에 조기유학을 가서 외국인 과거시험에 합격한 최치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21세기 더 다양하고 복잡한 국제관계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시야에 당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다. 당의 수도였던 시안(옛 이름 장안)은 무왕이 통치한 주나라의 서주,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 한나라의 전반부인 전한, 당나라까지 1000여년 동안 수도였다. 시안은 20세기 중국이 수도를 정하는 투표에서 베이징과 경합해, 한두 표 차이로 베이징에 수도를 내어주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도시다. 현재 시안은 신(新)실크로드의 핵심도시로서 시진핑 주석이 주목하는 지역이다. 시안은 당문화를 주제로.. 더보기
모이세스 마리엘라 산카리와 그의 쌍둥이 언니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다. 우리가 흔히 모세로 알고 있는 작가의 아버지 ‘모이세스’는 어느 날 스스로 생을 마쳤다. 안타깝게도 어른들의 만류로 어린 자매는 아버지의 마지막 주검을 보지 못했다. 유대인의 전통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의 방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별 의식을 생략한 채 상실감을 견뎌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자매는 사춘기를 거쳐 어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내내 의심했다. 아버지는 현실 세계에서는 사라졌지만, 마리엘라의 마음속에서는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아버지의 환영과 마주쳤고, 카페 한쪽에서도 아버지를 봤다고 착각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속 아버지도 같이 늙어갔다. 결국 작가는 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아버지.. 더보기
혼자가 아니다 김홍도가 ‘취한 다음 꽃을 본다(醉後看花)’라는 글을 쓴 그림이다. 무엇에 취해 꽃이 보일까? 송나라의 시인 임포가 서호에서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삼아 혼자 살았다는 은유를 그리면서, 친구도 그려 넣었다. 조선시대에 작은 집에서 친구 한둘과 이야기를 즐기는 ‘은일’은 지혜의 문화였다. ‘은일’은 고립이 아니다. 은일은 나만의 시공간을 가져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방법이다. 은일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산은(山隱), 시은(市隱), 조은(朝隱)이다. 은일은 어디서든 가능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정치의 격돌에서 틈새 시간을 이용한 마음의 은일이다. 한·중·일의 은일은 강조점이 다르다. 중국은 나라가 큰 만큼 복잡한 권력투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치적 은일이 발달했다. 일본은 .. 더보기
한 조각 조각 이 땅의 문화 오세창(1864~1953)은 ‘삼한일편토(三韓一片土)’(1927)로 문화란 이 땅에서 한 조각 한 조각 무명(無名)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록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삼한의 한 조각 흙’이라는 ‘삼한일편토’는 상단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와당 탁본을 오려서 콜라주처럼 붙이고, 하단에 촘촘하게 해설을 쓴 작품이다. 글의 마지막에 삼한의 한 조각의 와당, 그 흙이 우리 땅의 보배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병상에서 약탕 화로를 곁에 두고, 먹을 갈고 탁본해 겨우 그 형태를 보존하고 그 연유를 기록한다고 썼다. 탁본을 오려서 운율감 있게 배치하고, 어울리는 인장으로 강약을 더해준 조형감각이 세련되다. 오세창은 시대전환기에 한국미학의 정초자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인물이다. 조선말 중인의 역관으로, 일제강점.. 더보기
살갗의 무게 사진에서 잉크를 녹여낸다는 말을 이해민선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 몹시 낯설었다.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사진의 끈적거림이나 물 한 방울에도 얼룩이 번지는 사진의 표면은 익숙한 일이었으나 사진이 애초에 액체 상태였다는 사실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 잉크라는 물질 없이는 눈에 비친 이미지들은 제 아무리 카메라 렌즈에 빛으로 맺혀도 종이에 닻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해민선의 섬세함은 우리가 보는 이미지가 빛과 액체와 고체라는 물성의 전환 과정임을 놓치지 않는다. 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 세상 모든 이미지는 비록 허상일지라도 부피와 무게와 질감을 갖는다. 그는 잡지 사진이나 직접 촬영해 출력한 사진의 표면에 특수한 약품을 처리해 잉크를 녹여낸다. 그리고 이렇게 녹여낸 잉크를 질료 삼아 애초 사진.. 더보기
오아시스의 마음가짐 둔황(敦煌)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곳으로 사막지대의 오아시스 도시다. ‘모래가 우는 산’(鳴沙山)과 ‘초승달 샘물’(月牙泉)의 오아시스를 가진 둔황은 깨달음의 가치공간으로 시간을 초월한다. 돈독한 빛이라는 지명은 상징적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막고굴(莫高窟)이라는 수많은 굴을 파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몇몇이 모여서 명상과 담론으로 마음의 가치를 잃지 않았던 태도가 둔황을 만들었다. 막고굴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지친 이에게 쉼을, 여행을 다시 떠나는 이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화해의 장소다. 둔황은 나와 너의 경계가 없다는 점에서 탈경계를 경험한 곳이다. 21세기 국경을 넘어서서 신(新) 실크로드의 부활을 도모한다면, 그 시작은 인본가치여야 한다. 미래형 비단길은 오아시스의 길로 부르.. 더보기
천사로 산다는 것 프랑스 오통의 생라자르 대성당은 중세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귀중한 보고다. 문맹인이었던 대다수의 신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소박하고 단순하게 표현된 것이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더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이런 독특한 이미지 중에서도 유달리 시선을 고정시키는 형상이 있다. 전혀 압도적이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지만 은근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 작품은 천사가 동방박사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장면이다. 동방박사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동쪽에서부터 온 현인 혹은 점성가이다. 이 장면은 동방박사들의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저 별을 따라가라. 왕이 나셨다”고 계시하는 모습이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마치 한 몸처럼 한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삼위일체의 메타포.. 더보기
[여적]미완성곡과 김광석 예술작품에서 미완성작은 완성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이 그 대표적인 예다. 두 작품은 모두 작곡가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했지만 그 어떤 완성곡보다 음악애호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이 유명해지기까지 큰 차이가 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남편 사후 생활고에 찌든 아내의 부탁으로 제자 쥐스마이어가 완성해 의뢰인에게 완성품처럼 건네졌다. 반면 건망증이 심했던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은 2개 악장이 빠진 채 사후 37년 만에 발견돼 미완성곡 그 자체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미완성’이라는 표제가 붙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과 달리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제자의 도움으로 미완성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 더보기
[기고]공연 부가세 과감히 면제하길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공연예술분야 지원을 위해 창작 공연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를 검토한다고 한다. 어려운 공연계 현실에서 이러한 세제 혜택은 가뭄에 단비가 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창작 공연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근래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창작 공연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국산’ 창작 공연이라고 하면 국내 제작자와 국내 작가진(작곡가를 포함한)이 만들고 그 소재는 국내의 이야기 소재여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창작 공연들을 보면 이러한 범주를 벗어난 작품도 많다. 한국의 원작을 가지고 해외 작가진이 만든 공연도 있고, 해외 원작을 토대로 국내 작가들이 만든 .. 더보기
존재에 접속하는 놀라운 시선 ‘보데곤(bodegon)’은 스페인의 정물화를 일컫는 말이다. 영어와 프랑스에서는 정물화를 각각 ‘스틸 라이프(still-life)’, 즉 움직이지 않는 생명 혹은 ‘나튀르 모르트(nature morte)’, 즉 죽은 자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선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가(bodega)에서 비롯된 ‘보데곤’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니까 보데곤은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다. 원래 그것은 술집이나 요릿집을 묘사하거나, 즐비하게 놓인 음식을 배경으로 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그렇듯이 외면상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종종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장르는 펠리페 3세(재위 1598~1621) 치정하의 세비야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했다. 세비야.. 더보기
증거 아랍의 봄 때,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졌다. 다이애나 마타는 처음으로 남편의 고국 리비아의 땅을 밟았다. 소년 시절에 나라를 등진 후 처음 찾아가는 남편에게도 감회가 새로운 여행이었다. 40년이 넘는 카다피 독재 정권 동안 수많은 이들이 투옥되고 실종되었다. 그 명단 속에는 다이애나가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시아버지, 자발라 마타도 포함되어 있다. 반정부 지도자였던 자발라는 1990년 망명지인A 카이로에서 납치된 뒤 여전히 실종 상태다. 납치 5년 후 가족들은 그가 리비아 감옥에서 몰래 부친 편지 한 통을 받았으나 마지막 소식이었다. 고은사진미술관의 ‘두 개의 달’ 전시에서 소개하는 다이애나의 ‘증거’는 이렇듯 실종된 시아버지에 관한 작업이다. 다이애나는 과거 시아버지가 머물던 이집트와 이탈리.. 더보기
‘포촘킨파사드’와 도시의 속살 18세기 중엽, 프러시아 출신으로 러시아의 절대군주가 된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인 표도르 3세를 축출하면서 제위에 오를 만큼 권력지향적 인물이었다. 그녀의 러시아는 폴란드 분할과 크림반도의 합병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내부로는 행정개혁과 문예부흥을 성공적으로 이뤄 절정의 시대를 구가한다. 이방의 여인임에도 러시아의 전통과 풍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러시아 국민들의 사랑을 얻은 그녀는 예카테리나 대제로도 불렸으니 성공한 통치자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당나라의 측천무후와도 곧잘 비교되는데, 특히 남성편력에서 둘은 막상막하였다. 그녀의 많은 정부 중에 크림반도 총독으로 임명된 그레고리 포촘킨이라는 인물이 있다. 1787년 여제가 크림반도를 시찰하겠다고 하자, 조잡하고 낙후된 마을 풍경이 마음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