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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최초의 스토커는 누가 만들었나? 키클롭스(Cyclops)는 외눈박이 거인족이다. 키클롭스는 ‘둥근 눈’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키클롭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대지의 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라노스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추한 모습의 거인 아들이 역겨워 오랫동안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 뛰어난 대장장이이기도 했던 그들은 훗날 가장 강력한 무기인 번개를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치고 풀려난다. 이 키클롭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Polyphemus)는 오디세이의 모험 중 세이렌과 더불어 시각적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오디세이 일행을 잡아먹고, 결국 오디세이의 지략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 스토리의 주인공 말이다. 그 외눈박이 거인이 어느 날 바다의 님프인 갈.. 더보기
바그다드 호텔 영화 는 이라크가 아닌 캘리포니아의 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황량하고 낯선 그곳에서 표류를 시작한 독일인 자스민은 카페 여주인 브렌다를 만나 우정을 싹틔운다.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두 여성이 서로를 보듬어 가는 영화의 줄거리는 삶의 변두리에 선 이들을 향한 따듯하고 연민 어린 시선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모래바람이 잔뜩 일어나는 외딴 사막도 카페 이름만큼이나 이국적이다. 영화 제목과 비슷한 그랜드 바그다드 호텔은 상상이 아닌 실제의 공간이다. 이곳 또한 바그다드에 있지 않다. 대신 술라이마니야라는 이라크 북부 도시에 있다. 이 호텔과 인근 숙소에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을 피해 도망쳐 나온 난민들이 산다. 말이 호텔이지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 쪽방에 가깝지만, 그들은 그나마 목숨만은 건질 수 있.. 더보기
깨어나기 어려웠던 여자의 양심 빅토리아왕조시대는 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당대는 여성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순결하고, 모성적, 순종적인 결혼한 여성과 창녀와 더불어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 말이다. 특히 후자는 비정상적인 쾌락으로 가정을 파멸시키고 질병을 퍼뜨리는 존재로 간주됐다. 사회가 비난한 것은 창녀를 찾는 남성들이 아니라 창녀들이었다. 여성에게만 도덕성을 강요하던 왜곡된 성윤리의 사회였던 것이다. 이처럼 빅토리아시대는 겉으로 보면 상당히 경건하고 규범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엽기적이고 난잡한 스캔들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라파엘전파는 빅토리아시대의 이런 정조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집요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윌리엄 홀먼 헌트는 라파엘전파의 어떤 화가보다도 꼼꼼한 세부 묘사와 선명한 색채.. 더보기
한여름 밤의 악몽 한밤중의 침실, 한 젊은 여성이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상반신은 침대 아래로 크게 젖혀져 있고, 목은 활처럼 굽었으며,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고, 볼은 어렴풋한 홍조를 띠고 있다. 게다가 실루엣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잠옷으로 보태진 몸의 굴곡이 커튼과 휘장 그리고 분홍, 노랑, 붉은색 등의 겹겹이 늘어진 시트와 중첩되면서 우아미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헨리 푸셀리는 스위스 출신 화가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런던의 왕립아카데미 교수로 명성이 높았지만 사후 잊혀졌고, 현대에 와서 재평가되었다. 아직 정신분석학과 같은 무의식과 욕망이라는 개념에 천착한 학문적 연구가 부재한 시절, 푸셀리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같은 영국의 대문호에 영감을 받아 ‘꿈과 악몽’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1781년 ‘악몽.. 더보기
가족 앨범 중국 베이징 기차역 근처에 살고 있는 사진가 리우 지에는 매일같이 기차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부모를 따라 지방에서 도시로 이동한 자신처럼 그들 또한 새로운 삶을 찾아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현재 도시로 떠나온 중국의 이주노동자는 2억5000만명, 대신 시골에는 2000만명의 노인과 5800만명의 아이들이 남겨져 있다. 이런 아이들의 상당수는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지만, 심하게는 아이들끼리만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단 도시로 떠나온 이들은 쉽게 고향을 방문하지 못한다. 가진 기술이 없는 농군들이 찾을 수 있는 일자리란 공장이나 건설 현장 일용직이 고작이고, 주 6일을 근무해도 몇 푼 안 남는 월급으로 오가는 데만 이틀 걸리는 고향집 방문은 호사스러운 꿈일 뿐이다. .. 더보기
자극하다 마네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 중 모델은 빅토린 뫼랑이었다. 서양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작품인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의 모델이 바로 그녀다. 마네는 1860년대 쿠튀르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모델을 서던 그녀를 만났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그녀는 마네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마네는 어떤 여인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 여인이 주저하자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넘긴 빅토린 뫼랑이 헐렁한 분홍색 실내복을 입고 서 있다. 오른쪽 옆의 앵무새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사치와 퇴폐 혹은 성모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 이 그림은 인물화인지 정물화인지 모호.. 더보기
공상 영화처럼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인류의 어리석음 때문일까. 훨씬 진화한 신인류가 그렇게 멸망한 현생 인류의 흔적을 사진을 통해 발견한다면, 우리네 문명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까. 미국 사진가 피터 레이턴의 작업은 이런 상상에서 시작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극장에 떠맡기다시피 해서 관람한 공상 과학영화는 하필 인류가 핵폭발을 겪고 살아남는다는 내용이었다. 엉뚱한 상상력과 달리 레이턴은 꽤 나이가 많은 작가이니 그 영화는 오래전의 조잡한 영화였는데도 그때의 시각적 경험은 늘 그를 쫓아다녔다. 하필 인류는 그 영화의 예언처럼 핵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반드시 핵이 가져올 재앙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핵을 다룰 만큼 뛰어난 인류라 해도.. 더보기
건축과 장소, 그리고 시간 오만과 편견의 아베도 이 건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착공을 앞두고 있던 2020년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의 설계를 원천적으로 바꾸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 공사비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이유를 받아들였다지만 사실은 더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당선된 이 경기장은 그 크기나 모양이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일본이 자랑하는 건축가 단게 겐조가 설계한 기존의 경기장들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모습에, 건축계를 중심으로 건립 반대운동이 일었던 차였다. 점잖은 인품을 지닌 노건축가 마키 후미히코까지 그 선봉에 있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싫어하는 일본의 지식인과 건축가가, 남이 설계한 작품 그것도 공모형식을 통해 당선된 세계적 외국 건축가의 건축을 두고 안된다.. 더보기
탐서주의자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1886년 프랑스 파리로 옮긴 이후 꽃병 연작을 그렸다. 1886년부터 1888년까지 꽃 그림은 40점이 넘을 정도다. 아마 모델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으리라. 이후 남프랑스 아를에서 ‘해바라기’보다 더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정물을 그렸다. ‘협죽도가 있는 정물’이다. 남프랑스의 눈부신 햇빛에서 사물이 얼마나 밝고 화사하게 보이는지를 몸소 깨달은 반 고흐는 이 그림에 노란색, 붉은색, 밝은 녹색, 푸른색을 사용해 보색 대비효과를 나타내려 했다. 화면 중앙의 녹색 잎과 주황색 꽃은 서로 색채대비를 이루고, 꽃병의 푸른색은 배경과 탁자의 책에 쓰인 노란색과 상생하며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구도적으로 반 고흐는 테이블과 꽃병을 화면의 오른쪽에 약간 치우치도록 배치했다. 그렇지만 이파리를 왼.. 더보기
회색 하늘 2012년 파키스탄 집 마당에서 야채를 줍던 할머니가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아마존이 무인 배달 상용화를 선포하면서 드론이 새삼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드론의 가장 큰 역할은 군사용 무인 비행기다. 포격기의 사격 연습 대상이다가 나중에는 카메라를 달아 정찰을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적 깊숙이 들어가 포격을 감행한다. 이제 조종사들은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고도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드론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목숨을 앗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걸어야 했던 ‘거룩한’ 전쟁의 시대는 이렇게 해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자국의 군인을 보호하기 위한 이 똑똑한 폭격기 덕분에 누군가는 더욱 쉽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 벨기에 사진가 토마스 반 우트리베는 드론으로 미국을 겨냥한다. 그의 드론에는.. 더보기
사랑으로 살아남은 막달라 마리아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물이 살아남는 두 가지 조건에 대해 말했다. 사물이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져서 시간의 영향을 견디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 어느 편이 더 예술작품을 온전히 살아남게 만들겠는가. 1966년 르네상스의 보고인 피렌체에서 큰 홍수가 났다. 아르노강이 범람해 도심의 성당과 미술관의 작품들이 진흙 더미로 뒤덮여버렸다. 그중에서도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1457년경)는 구제되어야 할 최상위급 작품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였던 도나텔로는 한 세례당을 위해 막달라 마리아를 조각한다. 예수의 여제자이자 성녀인 막달라 마리아는 초기 기독교 미술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나 예수가 매장되는 장면 등 예수와 함께.. 더보기
비오는 날의 산보 인상파 작품의 컬렉터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부르주아의 독특한 시선으로 파리 풍경과 파리인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 ‘비 오는 날-파리의 거리’는 파리 생라자르 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을 묘사한 것이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성장한 남녀들은 스스로를 볼거리, 즉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가시화하기를 좋아하는 근대의 부르주아들이다. 보들레르는 보는 동시에 보여지는 도시의 이런 구경꾼들을 ‘플라뇌르(Flanuer)’, 즉 산책자라고 명명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오스망 남작에 의해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세의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3, 4층의 적당히 높고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한편 좁고 복잡한 중세의 길들이 넓고 반듯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게다가 하수시설이 개선되니 오물로 질척거리는 더러운 거.. 더보기
조경사진 집 앞 나뭇가지가 조금만 더 자라면 방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집 앞에 울창한 숲이 펼쳐져서가 아니라, 집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을 수 있을 만큼 여유 땅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다른 친구는 그런 나무가 없으니 앞집이 너무 훤히 보여서 어떤 반찬을 먹는지도 맞출 정도라고 부러워한다. 더부살이를 하듯 집과 집 사이에 끼여 가까스로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 건물을 모두 배치하고 남는 자투리 땅에 심겨 당산나무처럼 번듯하지도 않고, 시골 집 마당의 탐스러운 과실수처럼 눈길을 뺏지도 않는 초라한 나무들이 그렇게 일상의 대화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은근 존재감이 있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사진가 유리와는 이렇게 해서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경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더보기
살찐 여자의 꿈 “나는 작품이 모델들에게서 비롯되기를 바란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작품이 자신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가능한 한 모델들의 느낌과 감정에 동감하기를 바랐다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불어 영국 구상회화의 독보적인 존재다. 베를린 태생으로 나치하의 오스트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33년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런던은 그의 예술적 욕망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후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철학적 사유와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프로이트는 주로 인물초상을 그렸다. 누드가 아닌 벌거벗은 몸, 공허한 얼굴, 살찐 여자의 몸, 임신한 몸, 상처가 적나라한 조폭의 얼굴 등 그가 그려낸 얼굴과 몸은 .. 더보기
두 개이면서 하나인 벽에 걸린 팽팽한 빨강 풍선과 식탁 위에서 시들어가는 빨강 풍선은 전혀 다른 물리적 상태에 있지만 실은 같은 풍선이기도 하다. 원래 벽에 걸린 그림은 식탁 위 풍선의 과거 모습이었다. 작가는 사진 속에 보이는 세트를 만든 뒤, 그림을 걸 위치에 풍선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액자 속에 담을 만큼만 이미지를 오려내어 중국 그림 공장으로 보낸다. 익명의 어느 화가가 자신이 찍은 풍선을 그림으로 재현하는 동안, 그 실제 대상인 풍선은 자신의 ‘초상화’를 기다리며 서서히 늙어간다. 이윽고 중국에서부터 풍선 그림이 도착해 벽에 걸리면 과거의 풍선과 현재의 풍선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존 세르빈스키는 오히려 물리학자이기에 이런 고민을 시작했.. 더보기
우리는 위로받고 싶다 갑자기 미테랑 대통령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한, 금세기에서 가장 문화적인 대통령이었다. 우파 정권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도시 재생과 관련한 ‘그랑프로제’라는 정책을 바로 추진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그냥 지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예컨대 루브르박물관의 신관 설계를 중국계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에게 맡겨 놀라게 하더니, 이 동양인이 바로크 형식의 기존 박물관과 대비되는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안을 내놓아 많은 이들이 주저하자 대통령은 그 파격적 디자인을 적극 옹호하고 짓게 했다. 물론 그 결과로 루브르박물관은 현대적 아름다움도 같이 가지게 된다. 이뿐만인가. 가운데를 텅 비운 ‘그랑아르세’를 쇠락해가던 라데팡스 지역 끝에 지어 파리의 도시 중심축을 한껏 넓히게도 했고, 파리 외곽의 소.. 더보기
[시론]유명무실한 예술인복지법 생활고로 인한 예술인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연극배우 김운하씨가 성북구 한 고시원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되었다. 영화배우 판영진씨는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생활고와 지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자살을 한 예술인의 비극적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2011년), 인디뮤지션 이진원(2010년), 배우 정아율(2012년)과 김수진(2013년), 우봉식(2014년), 가수 김지훈(2013년) 등. 최고은씨가 전기와 가스가 끊긴 월세 방에서 며칠을 굶다 세상을 떠난 지 4년이다. 그 후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예술인의 연이은 죽음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문화예술인 실태조사(2012년)에 따르면, 예술인의 창작.. 더보기
궁극의 드로잉 케테 콜비츠의 드로잉은 ‘살아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전쟁의 상흔을 그만큼 미학적으로 묘사한 화가가 또 있을까. 여자를 성적인 매력이나 여성다움으로 치부하던 시대에 ‘여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 예술을 넘어선 경지의 예술을 보여준 이가 콜비츠다.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콜비츠는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을 대변한 여성이자 화가였다. 그는 평생 병든 사람들을 무료 진료한 의사인 남편과 동지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런 콜비츠에게 닥쳐온 비극은 시대적인 것이었다. “아기의 탯줄을 또 한번 끊는 심정이다. 살라고 널 낳았는데, 이제는 죽으러 가는구나!” 1차 세계대전 때 열여덟 살밖에 안된 둘째아들을 잃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었다. 그에게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슬.. 더보기
나폴리와 마릴린 먼로 이곳은 나폴리다. 동해안에 있는 카페. 도대체 마릴린 먼로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서 바닷바람에 치마를 날리고 있는 걸까. 저 흰 원피스를 날리면서 일약 섹시 스타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었던 샌들을 나폴리 지역 출신인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한국전쟁 때 강원도까지 찾아와 위문 공연을 해준 답례의 표시로? 이도 저도 아니면 나폴리다운 기분을 만끽하려면 적어도 마릴린 먼로와 황금색 말과 그리스 조각상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카페 주인장의 취향 덕분에? 이유야 어떻든 제 아무리 마릴린 먼로가 유혹한다 한들, 철조망을 넘어 돌격해 오는 용감한 병사가 함께 등장하는 이곳은 나폴리가 아니다. 김전기는 6년 동안 동해안을 따라 난 7번 국도를 누비며, 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만들어낸 ‘불편한 풍경’.. 더보기
퐁타벤과 고갱의 초록 “악당이야, 하지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기운이 느껴져. 한마디로 신의 예술이야!” 독설가로 유명한 드가가 고갱을 두고 했던 말이다. 주식중개인 출신의 고갱은 여느 화가들과는 다른 대범하고 마초적이며 로맨틱한 남자였다. 일요화가회를 전전하다가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만큼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던 고갱이 자주 찾았던 곳은 시골과 오지였다. 그가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나기 전 발견한 곳이 퐁타벤이었다. 사실 수년 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고갱의 타히티 그림을 보고 좀 실망했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탁한 화면, 아주 볼품없이 납작한 평면적인 화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퐁타벤에서 그린 고갱의 초기 그림은 달랐다. 아마도 인상주의적인 세심한 붓 터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