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육효진 작 ‘4430_TOY ORANGE HOUSE’,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격리가 일상화됐다.


나라 전체가 웅크려 있다. 미술계 또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동면 상태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답답하다”라는 형용사 속에는 애달픔과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다. 이대로 가다간 예술인을 포함한 경제적 취약계층의 삶이 허물어질까봐 걱정이다.


나 역시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놓였다. 예전 같으면 꽤나 분주했을 3월이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예정되어 있던 강의는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각종 세미나와 회의, 심사, 평가 등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2주에 한 번씩 진행하던 방송도 중단됐다. 국공립미술관을 비롯한 전시공간들도 대부분 휴관에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전시마저 드물다.


집에 틀어박힌 채 갈 수도 없고 갈 곳도 없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 무료한 상황은 그 자체로 적잖은 초조와 불안을 유발했다. 어느 땐 한참을 미동도 않은 채 뚫어져라 허공을 응시하다가 그런 자신에게 놀라 부러 자발스럽게 뭔가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거나, 괜스레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는 이상행동까지 생겼다.


심지어 그토록 좋아하던 자연 속 삶도 시들해졌다. 엄동설한을 뚫고 싹을 틔운 생명의 경이로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이건만 우울함 탓인지 무심히 스치고 만다. 마을을 지나는 철새들의 날갯소리, 늘 살구나무 반상회를 여는 참새들의 조잘거림에도 감동이 덜하다.


이처럼 비자발적 격리가 만든 일상은 기존의 삶과 거리가 있다. 특정인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별로 체감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실상이다. 그러나 고생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며 이 혼돈의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또 다른 형태의 답답함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려운 환경일수록 우리는 다른 무언가와 연대하고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나도 그렇다. 이 시간 이후 의식의 영역이 아닌 느낌과 감각, 무의식적 생명활동에조차 감사하기로 했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 보다 더 유익하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내년쯤 성가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래 연습도 추가했다. 꼭 해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일과를 핑계로 미뤄둔 것들이다.


그래,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다. 인생사가 그렇듯 뜻하지 않은 계기로 그동안 못한 일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런데 음치에다 악기라곤 학창 시절 만져본 피리가 전부인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누가 아는가, 도밍고나 라흐마니노프 뺨칠지.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