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김준기 신임 학예실장이 총감독을 맡은 ‘2017 제주비엔날레’는 너무 촉박하게 진행된 탓에 기획, 작품 선정, 담론 창출 등에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단순한 계약직 공무원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전시 계획에서부터 소장품 구입, 교육, 공공프로그램 등에 관한 연구 기획, 출판 운영까지 총괄하는 미술관의 핵심 요직이다.
그 자리에 최근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김준기씨가 내정됐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한 인물로, 서류상의 경력만 놓고 보자면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민중 색채 짙은 전시 이력이 민중미술계열 대표 인사인 현 윤범모 관장과 겹치는 데다, 이들의 남다른 친분 때문이다. 각종 행사와 전시에 바늘과 실처럼 이름이 등장하고, 심지어 윤 관장의 학교 정년퇴임 전시기획에 참여한 것도 김씨이니 호형호제인 양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향적 경향이 한국 대표 미술기관을 주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윤범모 관장과는 달리 내정에 있어 절차상의 하자는 없다. 민미협 출신인 윤 관장의 경우 2018년 관장 공모 때 역량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아 탈락했음에도 민예총 부회장을 지낸 당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재평가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임명을 강행해 절차의 정당성과 특혜 의혹 및 코드 인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코드 인사는 내 식구 챙기기, 즉 이념적 가족주의와 맞닿는다. 윤 관장이 동일 계열로 묶이는 김씨의 채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거나 윤 관장 주변에 늘 김씨가 있었기에 그가 학예실장이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추측과 의구심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치부한다. 현실을 텃밭으로 한 민중의 삶이 담긴 전시 이력을 관장과 공유하고, 친분이 두텁다 하여 향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들이 편향적일 것이라 예단하지도 않는다. 근본적으로 예술은 인간 삶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다만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끌 수 있을 만큼 식견과 능력을 겸비한 발군인재(拔群人才)인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저항과 행동주의를 통한 사회 참여와 개입으로 현실의 변화를 주장하지만 거의 제도권 내에 있었고, 과거 공공기관에 근무할 당시의 성과 역시 명징하지 않다.
그가 제주도립미술관장 재직 시절 야심차게 추진했던 ‘2017 제주비엔날레’는 너무 촉박하게 진행된 탓에 기획, 작품 선정, 담론 창출 등에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기대하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미술관에 새롭고 혁신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지, 색깔 없이 임기를 채울지는 결국 시간이 답할 것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pieta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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