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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은행에 갔다- 인천 개항 박물관(1) 올해가 가기 전에 내셔널 트러스트의 후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한 달에 만원씩 후원합니다. 큰 돈도 아닌데, 여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런 단체의 중요성이야 두 말할 것도 없고, 그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행동이 생각을 따라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셔널 트러스트는 자연과 문화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훼손 위기에 있는 자연물이나 문화 현장을 회원들이 후원금으로 매입하여 자산으로 만들고 그것을 직접 관리하는 단체입니다. 올 봄에 근대 건축 기행에 대한 책을 쓰면서 내셔널 트러스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책 수익금의 일부를 근대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써달라고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부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12월이 되자, 불현듯, 내 이름으로 지속.. 더보기
짬뽕과 인천 나들이-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장(2) 1890년에 세워진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나가사키에 근거를 둔 은행이지요. 인천이 개항할 무렵, 이곳에 있었던 독특한 건축물들을 모형과 자료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18은행까지 가면 이 여행의 절반은 둘러본 셈이 되지요. 18은행은 인천개항장 건축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천이 개항하던 시절, 청국인, 일본인, 서양인이 한 군데서 각각의 터를 잡고 살던 모습이나,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을 모형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죠. 지금 남아있는 건물 중에서 눈 여겨 볼 것은, 제물포 구락부, 일본 제일은행 인천지점, 인천 답동 성당, 인천우체국 등입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축물도 있어요. 그래서 인천 중구를 거닐면 백 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지요. 전시장을 둘러보면 자료가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더보기
짬뽕과 인천 나들이- 인천 개항장 건축 전시장(1) 그날은 기분이 울적해서 짬뽕이나 먹어볼까 하여 차를 움직였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꽤나 맛있는 짜장면집이 있지만 사람이란 자고로 가던 곳만 꼭 고집하는 버릇이 있기 마련이라, 늘 가던 향원으로 향했지요. 향원은 차이나타운과는 조금 떨어진 신포시장 입구에 있습니다. 일요일 오후, 신포동에는 거대한 나이트클럽이 어젯밤 과음을 호소하는 듯 거무스레한 몸집을 뒤틀고 있더군요. 거긴 늘 그렇지요. 항구 근처의 어수선한 분위기, 뱃사람들이나 뱃사람의 후예들이 하룻밤 놀다 갈 목적으로 들어가는 대형 클럽, 그리고 낡아서 손만 대면 먼지가 주룩 흐를 것 같은 오래된 건물들. 1924년에 지어진 인천우체국입니다. 이제 이런 건물을 보는 게 새롭게 느껴지는 거죠. 짬뽕과 탕수육을 기다리며 창 밖을 보니 오, 인천우체국.. 더보기
홍수연 _ 미지의 공간에 대한 탐닉 자꾸만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이 있다.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고 볼수록 한없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그런 그림 말이다. 홍수연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캔버스 속으로 조용히 흡수되는 것 같은,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홍수연을 알게된 건 대략 2002∼2003년이었던 듯하다. 뉴욕에 사는 한 친구가 "홍수연 씨 알지?" "홍수연 씨 있잖아…"라는 식으로 자꾸 말을 꺼내서 처음 이름을 들었고, 이미 알고 있는 작가라고 착각하기도 했다.(홍지연, 홍지윤, 홍주희 등 비슷한 이름의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러다 친구가 한국에 올 때마다 함께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대개 미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주로 건강유지법 -_-;;) 다소 '아줌마스러운' 관계로 굳어.. 더보기
3. 근대적인 미술시장의 탄생-해방과 속박의 경계에서 3. 근대적인 미술시장의 탄생-해방과 속박의 경계에서 글 정준모(국민대 초빙교수,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 예술이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예술이 종교적, 봉건적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해방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예술과 돈과의 관계를 멀리 유지하려했지만 결국 그들의 해방은 다시 경제적 세력과의 해방과의 싸움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렇게 돈과 예술이 결합하는 것이 오늘의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경제와 산업발전에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이들의 욕망은 예술에서조차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언제나 돈으로 거래되었다. 예술품에 대한 욕망은 이미 기독교가 공인을 받기 전인.. 더보기
리듬, 혹은 보이는 것 사이의 틈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큰 경기 할때만 열올리는 냄비 축구팬이지만, 축구를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축구가 무식한 경기처럼 보여서 관심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잘 하는 플레이를 본 적이 없어서였던 거 같다. 2002년 월드컵 때 불현듯 축구의 매력을 발견한 후 죽 축구팬을 자처하고 있다.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펼치는 경기에는 한 편의 발레 같은 우아함이 있다. 그것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수단인 몸을 통해서 구현되는 것이라 핵심을 꿰뚫는 것 같은 간결함과 깊이를 동반한다. 얼핏 보면 축구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해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질서가 작동하고 있다. 더 매력적인 건, 그 질서는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매순간 실현되면서 드러나는 질서라는 거다. 축구는 .. 더보기
붉은 벽돌에 촘촘하게 담긴 행복 - 풍수원 성당 가끔 성당에 간다. 기도를 드린다기 보다는 성당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위해서다. 성당 주변에는 작고 소박하더라도 나무 그늘이 있고 걸터앉을 만한 자리도 있다.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혀주는 성모상, 넉넉한 품이 느껴지는 아름드리 나무도 만나게 된다. 마음 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도 잦아든다. 사람의 소리는 모두 묵음이 되고 자연의 소리만 남아있는 곳. 성당을 거닐 때면 평범하지 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내 발 아래에서 마른 흙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머리카락을 헝클고 도망가는 바람 소리, 나뭇잎에 살짝 얹힌 풀벌레의 가냘픈 움직임. 그런 소리들. 날 좋은 가을날 풍수원 성당에 갔다. 강릉에 1박2일 여행을 떠나던 날, 자동차를 달려 여정을 중간쯤 되는 곳에 풍수원 성당이 있었다. 점심식사도 할 겸 잠시 쉬어간다고 .. 더보기
위대한 사진- <비주얼 어쿠스틱스>와 줄리어스 슐만 지난 주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건축사협회에서 주최한 제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는 그 개막작으로 선택된 작품이다. 건축영화제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건축물이나 건축가를 주제로 하지만 건물 하나하나, 건축가 한 명 한 명을 스터디하듯이 보여주는 영화는 없었다. 건물을 매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 건물이 있기에 존재하는 수많은 풍경들을 가감 없이 담으면서 그 속에서 건물의 역할, 건축가의 역할을 더듬어보는 작품들이 리스트에 가득했다. 예를 들면, 난해한 현대예술품처럼 생긴 건물을 배경으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스포츠맨이나, 혹은 벽에 창문을 내겠다며 소음을 일으켜 나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는 이웃의 이야기처럼... 더보기
빛이 머무는 곳,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아뜰리에 퀴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가의 작업실은 어디일까? · · · · · · · · · 정답은 바로 여기.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275번지에 있는 고(故) 오지호(1905∼1982) 화백의 작업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故) 오지호·오승윤 부자의 작업실이다. 왜냐하면 이 작업실은 1953년 오지호 화백이 지었지만 아들 오승윤(1939∼2006)이 물려받아 줄곧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젤 주변에는 오지호·오승윤 부자가 쓰던 색색의 유화물감이 오랜 세월의 더께처럼 남아있다. 파스텔 빛 물감은 아버지 오지호, 조금 진한 색은 아들 오승윤의 것이란다. 사실, 근대 이후 수많은 미술가들이 작업실을 사용했지만, 그들의 사후(死後) 작업실이 온전히 보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 더보기
2. 화가들 상인을 겸하다-최초의 화상은 화가 2. 화가들 상인을 겸하다-최초의 화상은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1475~1564)가 시스틴 성당에서 천지창조를 그리는 과정을 그린 영화 (The Agony and the Ecstasy, 1965)을 보면 그림을 주문한 율리우스 2세와 다투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다툼의 원인은 돈 때문이었다. 작업에 필요한 대금을 계약대로 주지 않고 지급일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인문학이 절정에 이르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가장 융성했던 르네상스 기에도 이런 일은 있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화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다음 소장가나 컬렉터를 찾는 대신 당시의 화가들은 주.. 더보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발 1000미터의 산을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치자. 누군가가,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결과는 0이군"이라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선물을 싸들고 누군가에게 갔다고 치자. 선물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극구 사양하면서 "마음만 받겠다"라고 딱 잘라 말해서 할 수 없이 그냥 들고 왔다. 이번에도 결과는 0인가? 물리적으로 보면 그렇다. 산에 올라갔다 온 것에 비해 별로 땀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탈리아 작가 지아니 모티(Gianni Motti)의 작품 에도 비슷한 종류의 아리송함이 있다. 이 작품의 모티브는 단순하다.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 더보기
어떻게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이 되는가 얼마전 막을 내린 광주 비엔날레. 막시밀리아노 지오니라는 스타 큐레이터가 총감독을 맡아서 맥락 풍부한 세련된 전시를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서구 미술계의 이른바 '핫한' 스타 작가들이 꽤 참여해서 관심을 끌었는데, 기획자로도 활동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과 올해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서른 네 살의 나이로 대대적인 개인전을 연 독일 작가(정확히 말하면 인도-독일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도 그런 작가들이다. 이 두 작가를 특별히 묶어서 거론하는 건 이번 광주 비엔날레에서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산전수전 다 겪은 관객들도 당황시킨 상당히 묘한 매치였다. 우선 이것. 텅 빈 바닥에 티셔츠.. 더보기
찻집 리하쿠(李白)를 아시나요 지난 번 포스팅에 이어서... 일본민예관과 리하쿠(李白)는 별로 멀지 않아서 함께 묶어 다녀올 만하다. 리하쿠는 조금 찾기 어려우니 잘 따라가 보자. 다시 고마바토오다이마에(駒場東大前) 역에서 시모키타자와(下北沢) 역으로 간다. 3분 소요. 시모키타자와에서 오다큐(小田急) 선을 오다하라(小田原) 방향으로 갈아타고 교오도오(経堂) 역으로. 4분 소요. (지금 보니 표지판에 한글로도 표기가 되어 있네요.^^) 교오도오 역에서 표지판을 보고 스즈란도오리(すずらん通り) 쪽으로 건널목을 건넌다. 스즈란도오리 상점가로 들어서서 10분 정도 길을 따라 걷는다. 도쿄 외곽 쪽이어서인지, 도심처럼 복작거리지 않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상점가다.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앗,.. 더보기
빈 공간은 비어있지 않다 경복궁역 근처 원서동에 있는 공간화랑 건물은 붉은 벽돌색 외장재가 멋들어진 곳이다. 이곳이 특이한 것은 내부벽도 붉은 벽돌로 마감돼 있다는 것. 넓지는 않지만 들어서는 순간 운치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곳에 작품을 설치하는 건 흰 벽의 보통 갤러리보다 훨씬 더 까다롭지만, 성공할 경우 아우라도 더 상승한다. 이곳에는 중견 조각가들의 좋은 개인전들이 많이 개최된다. 올 봄에 열렸던 김기철의 역시 그 중 하나다. 어둑하게 조명이 밝혀진 갤러리에 들어서면 단촐한 비주얼이 펼쳐진다. 정면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둥근 원통, 그리고 벽에 걸린 두 개의 직육면체 상자 같은 것들. 나무색의 원통과 직육면체 상자 표면에는 작은 검은색의 사각형과 원형이 보인다. 하지만 그 외에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볼거리는.. 더보기
덕수궁 중명전-그날 중명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중명전. 덕수궁에 속해있는 궁궐 건물이다. 한자 명자는 날일(日)이 아니라 눈 목(目)자를 썼다. 더 밝게 보겠다는 의지가 들어간 이름이라고 한다. 길고긴 복원의 시간이 끝나고 중명전이 문을 열였다. 유난히 무덥던 올해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인 8월 말의 일이었다. 나는 중명전이 문을 열기를 꽤 고대했던 사람이다. 를 쓸 때 꼭 보여주고픈 건물이었건만,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라 먼 발치에서 사진만 찍었던 그 건물. 중명전. 중명전은 대한제국 시기의 중요한 역사를 목격한 장소다. 1899년 왕실 도서관으로 문을 연 중명전은, 1904년 원인 모를 화재가 나서 덕수궁의 전각 대부분을 태웠을 때부터 정치 무대의 중심에 섰다. 온통 서양식으로 꾸며진 중명전에서 외교관을 맞아들이며 임금과 그의 측근들은 나라의 앞날.. 더보기
일본민예관 찾아가기 크로스 지킴이 윤민용 기자가 〈필진열전〉에 쓴 ‘오싹한’ 세로드립을 보고 단풍구경 갈 짐을 싸다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쓰고 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실은 지난 달 말, 잠시 도쿄에 다녀왔다. 목적은 일종의 휴가. 다녀와서 바로 재미있는 글을 올리겠다는 말로 순진한 윤 기자를 안심시키고 ‘튀었다’. 아니, ‘날았다’. 문득 달력을 보니, 다녀온 지 스무날도 더 지났다. 뭐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백수 과로사” 라고, 결코 노느라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아니라고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해본다. (미안, 미안~) 이번 도쿄 행에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과 리하쿠(李白)라는 오래된 찻집. 십 여 년 전부터 벼르던 곳들인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 더보기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부순 까닭은? 백남준 하면 흔히 미술관이나 대기업 로비에 설치돼 있는 비디오 설치작품을 떠올린다. 여러 대의 모니터가 쌓여 있고 스타카토 같은 영상이 번쩍거리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도 백남준의 이름은 알고, '백남준 스타일'이 이렇다는 건 안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돌아서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백남준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겠다" 유명한 미술가라는 건 알겠는데 작품이 그냥 쉬워 보이고 어떤 점이 대단한지 모르겠다는 거다. "당신이 미술을 모르니까 그렇지!"라고 일축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단, 업계 비밀(?)을 좀 누설하자면, 실제로 백남준 작품 치고는 범작인 것들이 있다. 어디 있는 뭐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런게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미켈란젤로나.. 더보기
no limit - prologue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도무지 외우기도 힘들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이다. 얼마전까지 나도 '아칫파퐁'이라고 알고 있었을 정도. 이 난해한 이름이 얼마전부터 심심찮게 잡지나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등을 만든 태국 영화감독 이름이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졌고 얼마전 한국을 방문해서 일간지 인터뷰 기사까지 났다. 정성일씨 같은 영화평론가들 입에나 오르내릴 정도로 극소수 애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아트영화 감독이 이 정도면 인기인이 되었다고 할만 하다. 거기다 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바꿨다. 태국 영화라면 같은 액션물이나 같은 공포물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낯선 나라였던 태국이 갑자기 이 감독 덕분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정작 본인은 이런 .. 더보기
1. 들어가며-화가와 화상, 그 애증의 관계 1. 들어가며-화가와 화상, 그 애증의 관계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명멸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름이 붙어있는 많은 화가들과 사조들이 미술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미술사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미술가 무리를 넘어선 자들만 우선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우리 곁에 남았을 뿐이다.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한 점 밖에 팔지 못했던 시절, 당시 사람들은 그림을 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고흐의 동생 테오가 형의 작품을 단돈 100프랑에 팔던 시절 같은 화랑에서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드 뇌빌(Alfred de Neuville, 1852~1941)의 그림은 15만 프랑에 팔렸다. 화가들의 경제적, 세속적 성공은 그가 살아있.. 더보기
일타홍의 노래를 들어라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근대 가요를 듣다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노래가 있다. 여가수의 새침한 목소리 속에 앙탈과 애교가 가득 묻어있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몰라잉 난 몰라잉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이면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 난 시려잉, 난 시려잉 내 편지 남 몰래 보는 것 난 시려 양취자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띵허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뭐 오빠는 모주꾼이야 뭐 난 몰라잉 난 몰라잉 밤 늦게 술취해 오는 것 난 시려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