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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사람에게 사진을 권하다 근래 들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다. 대학 강단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고 사회의 그늘진 자리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과 함께하는 통합사례관리사들, 또는 여러 예술강사들 그외 사진을 매개로 삼고자 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사진은 자신의 몸을 들여 무언가를 바라보는 창문이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느낌을 담아내는 수많은 ‘창’들 중에서 사진은 몸을 들여야만 가능하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자신만의 눈으로 읽어 전하기 위해서는 상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대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몸이 있어야 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풍경이든, 어느 타인의 삶이든 하다못해 군침 돋는 음식 앞에서든 마찬가지. 직접.. 더보기
말없이 ‘말’이 되는 순간 얼굴은 말을 한다. 가만히 서서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기쁘거나 슬퍼서 그리고 화가 나거나 우울해서 등의 굴곡이 있는 감정 상태일 때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더 많은 무언가가 담겨 있다. 살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쌓이거나 거기에 공감을 이룰 만한 인연이 덧대어지면 얼굴은 광활한 우주가 된다. 한 생명의 고고한 삶이 내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살아온 세월이 말을 건네고 살아갈 희망이 웃음을 던지며 고단한 현실이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품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의 상황이 되어 내 어깨에 닿은 그의 체온에 힘을 얻을 때도 많다. 그의 얼굴이 말을 하고 나의 얼굴이 말을 하는 것은 서로 마주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의 얼굴에.. 더보기
낡은 열차가 준 풍경 오랜만에 무궁화 열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이 정겨웠다. 약속된 시간이 빠듯한 탓에 다소 조급한 마음이었는데 널찍한 좌석에 앉는 순간 왠지 편안한 느낌이 쑥 들었다. 가는 시간 동안 겨울 끝자락의 들녘을 눈으로 즐겼다. 지역에 갈 일정이 있으면 예외 없이 고속열차를 타는 일이 잦았다. 시간을 줄이고 줄이는 일상이 늘 되풀이되었고 하루 중 또 다른 일정을 끼워 넣기 바빴다. 그래서일까. 오래되어 낡은 데다 느리기까지 한 무궁화 열차 안에서의 느낌이 생경하면서 반가웠다. 모처럼 얻은 여유를 부리며 잠시 후에 서게 될 ‘자리’를 생각했다. 여러 이유로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어찌 보면 연단에 홀로 서서 불특정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거나 생각과 관점을 나누는 자리. 열차의 .. 더보기
진실이 있는 자리 “저게 뭐이냐믄 나를 의자에 앉혀 묶어놓고 몇 시간씩 벽을 보게 하고 고문하던 그 자리요. 암튼 밤낮으로 맞고 터지고 그랬으니께! 참말로 나도 여그서 죽겄구나 싶응거이 반항은 생각도 못혔제.” 한 낡고 오래된 건물 지하계단에 내려선 이성전씨(70)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당시의 기억을 토로했다. 몇 해 전 자신을 고문했던 ‘505보안대’를 처음 찾아간 그는 훼손되고 억압되던 ‘자기’를 직면했다. 칠성판에 묶인 채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으로 몸서리치던 자신을 36년 만에 다시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80년 오월 당시 시민군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들을 오가며 온갖 고문수사를 받았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고문에 의한 뇌졸중으로 몸의 반쪽까지 마비된 상황에서도 5·18민.. 더보기
사진 한 장 느낌 둘 상황 하나. 사진 속 누군가의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거나 한 점 잡숴 봐아! 배고프잖여어?” 오랜만에 만난 옛 지인을 향한 반가움 가득하게 건네셨을 말인사가 그대로 들렸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우셨던 듯 쑤욱 팔을 내밀어 가래떡 한 점을 권하시는 어머니의 온정이 방앗간의 후끈한 열기를 더욱 채워주었다. 한 장의 사진이 가진 기운이 모락모락 따사롭기만 했다. 상황 둘. 이 사진을 찍은 당사자이자 주인공 어머니 아들의 마음도 말을 걸어왔다. “아휴! 초점도 나가고 빛 노출도 안 맞고. 엉망이네요.”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을 놓다가 부랴부랴 셔터부터 눌렀다는 그는 내심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나 엉망일 이유도 잘 못 찍은 사진도 아닌, 사진 자체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눈길이었음을 충분히 .. 더보기
천 개 언덕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 ‘천 개 언덕의 나라’로 불리는 곳이 있다. 해발 1500m의 고지대에 있는 대부분의 국토가 수많은 산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데다 그 모습이 구름언덕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에 콕 끼어 있는 이 작은 나라 ‘르완다’의 역사는 기구하다. 서구 열강의 분열적 식민지배로 심각한 민족 간 갈등을 겪으며 수백만명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던 가슴 아픈 내전의 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몇 장의 사진들은 송곳처럼 가슴에 박혀 오래도록 남아 있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처음 이 나라에 발을 딛게 된 날 아련한 감흥이 먼저 일렁였다. 얼굴을 스치는 사람들마다 같은 느낌이 반복되었다. 과거의 상처에 기댔던 아픈 마음은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떨쳐낼.. 더보기
나의 방 38년 만에 다시 바라본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취조실 창문. 지난주 이야기의 주인공 고 김태룡씨가 생전에 직접 찍은 사진이다. 처음에 그는 자신에게 고문수사가 행해졌던 취조실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욕조와 세면대, 침대 등 고문도구로 쓰인 내부 시설 일체가 대부분의 모든 취조실에서 사라져 있기 때문이었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곳으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509호를 자신의 방이라 ‘우기는’ 촌극도 있었다. 그는 기억을 계속 더듬었다. 당시 수사관이 자리를 비웠을 때에 겨우 주먹 하나 들어갈 넓이의 저 창문에 얼굴을 댔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가늠할 길 없는 이곳이 전철역 어디쯤이구나 싶었다던 기억. 열다섯 개의 취조실 중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은 서쪽 끝부분에만 있었.. 더보기
남영동 대공분실의 숨겨진 주인공 영화 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지 않을까. 알려진 바와 같이 이곳은 32년 전 대학생인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사망한 곳이면서, 오래도록 민주화운동가들에게 수사를 빙자한 고문으로 극심한 고통이 가해진 비극의 현장이다. 평소 찾는 이들이 극히 드물었던 이곳은 영화가 ‘뜬’ 후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개봉 이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 1979년 삼척고정간첩사건 피해자 고 김태룡씨. 그는 군부정권 시기 수도 없이 조작된 간첩사건의 한 희생양이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받은 실제 당사자다. 간첩이라는 사회적 매장의 그늘 아래 모진 삶을 살아온 그는 2017년 2월 38년 만에 다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았다. 치욕스러운 당시의.. 더보기
따뜻한 겨울 국내외 여기저기 인연 닿는 대로 다닐 때 종종 누군가의 어머니들과 수다를 떨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만히 숨을 교환하며 그들의 나직한 음성과 몸짓에 집중하다 보면 눈과 귀부터 들뜨기 마련이다. 어머니들은 낯선 이방인이 쑥스럽게 내민 손을 넉넉하게 품어주기 마련이었고 나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자식이라도 된 듯이 아기웃음을 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만난 누군가의 어머니들을 내 어미 못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상황에 따라 함께 기뻐하거나 아파하기도 하고 웃거나 울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숨소리를 듣는다. 1월은 참 춥다. 겨울 한가운데이니 당연한 소리인데 몇 겹의 옷을 껴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몸보다는 가슴에 고인 찬바람이 더 시린 이유는 그리움 탓이다. 2년 전 이맘때 어.. 더보기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 잠시 걸음을 멈췄다. 홀리듯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 양손에 낡은 사진앨범을 든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앨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과 탄식의 숨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세월 가득한 당신의 뺨도 발그레 웃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사진앨범 빼곡하게 가족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무에 그리 즐거우셨던 걸까. 내친김에 옆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방긋 웃어댔더니 여든세 해를 살아오셨다는 ‘플로라 링가하르’ 할머니의 얼굴에 반가움이 더해진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847㎞ 떨어진 ‘사말 바시아오’ 마을에 사는 할머니는 2013년 태풍 ‘하이옌’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새로이 조성된 이곳에서 홀로 살아가신다.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도시로 모두 나갔고 가끔 찾아온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