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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옥인콜렉티브’ 작가 부부의 죽음

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라이브 퍼포먼스, 2014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는 지난 10년 동안 사회와 예술의 상관성을 넓은 맥락에서 가시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교육·노동·성·장애·지역 등과 얽힌 예민한 동시대 문제를 여러 작품과 전시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소환했고,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로 전치시키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다.


그 시작은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옥인아파트에서 진행된 1박2일 공공예술 프로그램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였다. 이후에도 그들은 미술과 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예술로 풀었으며, 그 궁극의 지점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더 나은 삶’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에 옥인콜렉티브의 구성원이었던 이정민, 진시우 작가 자신들의 삶은 들어 있지 않았다. 최근 ‘허망함’과 ‘죄송함’을 남긴 채 세상을 등지면서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미술언어로 위로하며 이웃의 사연을 공공의 기억으로 승화시켜온 그들의 작업 역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됐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미술계는 충격에 빠졌다.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생활고가 큰 원인이었음이 전해지면서 충격은 비통함으로까지 번졌다. 여러 굵직한 전시에 초대받은 경력을 지닌 데다, 지난해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에 오를 만큼 역량을 인정받은 작가들이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생활고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은 한둘이 아니다. 2011년 가수 이진원이 가난을 견디다 못해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5년엔 유학을 다녀와 왕성하게 활동하던 한 중견 미술인을 비롯해 연극배우 김운하, 영화배우 판영진씨 등이 빈곤한 형편을 극복하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해온 한 공연기획자가 생을 마감하는 등, 지금도 예술가들의 비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예술을 통해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추구했으나, 본인들의 나은 삶에선 소외됐던 옥인콜렉티브의 두 작가 역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미래를 위한 예술이 무엇인지 제시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경제적 궁핍함, 허약한 구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셈이다.


안타까운 건 이와 같은 비극이 특정인에 국한된 것도, 생활고만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잠재적 아사 위기에 놓여 있는 건 자본논리에 휩쓸리는 구조의 불균형, 저마다 다른 예술장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의 부재로 이해하는 게 옳다. 최소한의 민생고라도 해결할 수 있는 안전망을 통한 예술의 지속성 측면도 헐겁다.


이에 정부는 2011년 ‘예술인복지법’을 만들어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이른바 판매가 되지 않는 작품은 경제적인 보상이 낮다. 더구나 세금 값보다 소중한 ‘의미 값’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회인식과 예술의 효용성을 외면하는 교육,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창조산업으로 연결하는 고리의 희미함도 예술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험난하게 한다.


옥인콜렉티브의 이정민, 진시우 작가는 자신들의 죽음을 예고하는 예약 메일에 “바보 같지만 작가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예술이 예술가의 전부인 삶이 결코 ‘바보 같은’ 것은 아님에도 현실은 ‘바보 같은’ 짓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