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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썩은 사회에 대한 냉소

마우리치오 카텔란, 프리즈 프로젝트 뉴욕(Frieze Projects New York) 2016, Tribute to Daniel Newburg Gallery 1984-94 ⓒ Photo courtesy: Tim Schenck


다소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화제를 몰고 다녀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예술성과 아무 상관 없는 석·박사 종이쪼가리는커녕 제대로 된 정규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 가구디자이너, 간호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자신에게 ‘좀 더 나은 대우’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술계로 입문했다.


애초 거룩한 미술사적 계보를 잇겠다는 생각 따윈 내다 버린 카텔란은 1980년대 데뷔 당시부터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조롱했다. 운석에 짓눌린 교황을 묘사한 90년대 작품 ‘아홉 번째 계시’를 통해 종교의 역할에 대해 되물었고, 고상한 샹들리에가 달린 공간에 살아 있는 당나귀를 넣는 작업으로 미술계의 폐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샹들리에 공간은 허례허식과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는 미술관 및 갤러리이고 오도 가도 못한 채 울부짖는 당나귀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작가들이다.


이뿐 아니다. 그는 한 지방 갤러리에서 통째로 훔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예술적 소재의 허용 범주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으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자신에게 허용된 전시공간을 향수 광고 에이전트에게 팔아넘겨 충격을 주었다. 이름도 재밌는 캐리비언비엔날레를 창설해 참여 작가들을 모두 캐리비언 해안에 휴가를 보내는 등의 기발한 이벤트는 상당히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최근 영국 블레넘 궁전에서 전시 중이던 작품 ‘아메리카’를 도난당해 대중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미국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물론, 그의 작품 ‘행복한 눈물’까지 덩달아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도둑질로 사라진 황금변기로 인해 또 한번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작가와 작품으로 등극한 셈이다. 실제로 무려 70억원에 달하는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지금도 매우 높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변기가 황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술이 선사하는 풍자의 맛과 작품 속에 내재된 메시지이다. 즉, 동시대인들이 늘 체감해온 물질만능주의와 부(富)의 불균형에 대한 카텔란식 비판의식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제목이 ‘아메리카’이긴 해도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이 낯설지 않은 현실,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할 것 없이 소수의 자본권력이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몫, 기회, 파생권력까지 모두 쥔 채 사회적 자본의 세습까지 이뤄지는 구조를 생각하면 부의 불균형에서 열외될 나라는 없어 보인다. 특히 작금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 장관을 둘러싼 의혹은 한국의 자본권력이 정의로운 기회를 앗아가고 계급주의와 신분주의, 음서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읽게 한다.


믿음에 대한 무례함이라는 가톨릭 국가들의 반발을 사긴 했어도 교황 역시 인간일 뿐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아홉 번째 계시’처럼 ‘평등’ 또한 ‘아메리카’에 담긴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한 끼 식사로 10만원짜리 호텔 뷔페를 먹건, 2000~3000원 하는 김밥 한 줄을 먹건, 배설은 동일하다고 말하니 말이다.


유머러스함 뒤에 숨겨진 진지함을 특징으로 하는 카텔란의 모든 작업은 부조리한 것과 금기시되는 것들에 관한 냉소적 진술이며, 그 발언의 결과는 습속되어온 사회의 폐단과 부패한 상류의식에 금을 낸다. 반대로 우리가 카텔란의 작품에 짙은 공감을 표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썩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국민감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