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

풍요 속 빈곤에 흔들리는 그들

에드워드 호퍼, ‘Hotel Room’, 캔버스에 유채. 1931. 미국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는 과학문명의 발달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을 공허하고 외로운 모습의 인물과 풍경으로 옮겼다.


약 반세기 전만 해도 텔레비전을 구입하려면 ‘추첨’을 거쳐야 했다. 흑백에 불과한데도 쌀 스무 가마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소수의 부자들은 행여 도둑이라도 맞을까 봐 시청이 끝나면 서둘러 미닫이문을 닫은 채 고이 간직하곤 했다.


문 달린 텔레비전은 이제 생활사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지능형 기술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하여 상호 소통하는 시대로, 김일 선수의 한·일전 TV 중계를 보려고 집주인의 비위를 맞추던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네 삶의 환경은 많이 변했다. 모든 것이 풍족해졌고, 넉넉해졌다. 


지난 시간, 미술계 역시 천태만변했다. 예를 들어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은 기존 회화나 조각 외에도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표현의 지층에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의 발전에 따른 특유의 양방향 소통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과 정보, 조형언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미술교육 및 전시형식 또한 달라졌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198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유학을 다녀오며 서구 교육제도를 이식받았고, 이는 일종의 연구 활동에 가까운 작업을 잉태하는 데 중요한 균형추가 되었다. 


특히 글로벌리즘이 지배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화천을 이룬 전시형식은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기존의 공간에서 벗어나서 대안공간, 비엔날레, 임시공간, 임의공간으로까지 확대되며 작가들에게 폭넓은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같은 시기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자리 잡은 창작스튜디오는 미술 기반 조성에 일조했다. 


시장만 해도 그렇다. 1970~1980년대만 해도 시장에 그림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림을 판다는 것은 예술의 순수성을 갉아먹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잘 팔리는 작가가 좋은 작가인 양 대접받고 있다. 널리고 널린 게 아트페어이고 옥션이다.


상대적이긴 해도 동시대인들에겐 경제적 여유로움이 생겼다. 일상은 한결 편리해졌다. 적어도 외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에드워드 호퍼의 우려처럼 물질의 풍족함은 도시의 무미건조함과 인간 소외라는 내적 부작용을 낳았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 활성화될수록 현실 속 자신은 더욱 공허하고 허무해졌다. 진정한 소통 없는 관계로 인한 외로움도 심화됐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미술인들 또한 현실인과 예술인 사이에서 심적 갈등과 허무를 느끼며 산다. 여러 것이 변했는데 월평균 수입이 수십만원에 불과한 자신의 궁핍함은 전혀 개선되지 않음에 절망한다. 더 배우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해 없는 돈 끌어모아 석·박사에 유학까지 다녀왔건만 학연과 인맥에 치이는 현실에 좌절한다. 


절망과 좌절은 때로 마음에 상처를 낸다. 전시기회가 늘었다고는 해도 되레 작품전을 여는 것만으론 미술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레지던시가 숱하게 존치되고 있지만 1년마다 짐 싸는 ‘떠돌이’ 신세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 등이다.


다른 것은 전부 유동적인데 유독 고착된 작가들의 삶. 난 풍요 속 빈곤에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깊은 시름을 본다. 견디기 힘든 초조함을 장식품 생산 공장이 아니라 예술다운 예술을 하겠다는 이들에게서 읽는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