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가격과 관련하여 한국 미술계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호당 가격제’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작품의 크기가 크면 작품 가격도 상승하는 가격 산정법이다. 예를 들어 캔버스 1호(우편엽서 2장을 합친 것보다 약간 작은 크기)가 10만원이라면 10호는 100만원이다. 규격화된 캔버스의 순서를 의미하는 호(號)의 개념상 10호가 1호의 10배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가격은 10배로 뛴다.
박수근, ‘산’, 1959, 국민화가 박수근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작품 가격은 최고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 박수근미술관 소장·정기용 기탁
예술성보다 물리적 크기에 값을 매기는 ‘호당 가격제’ 외에도 납득하기 불가능한 가격 산정요소는 또 있다. 바로 ‘학력’과 전공 유무 등이다. 그리고 이런 황당한 기준이 자칫 세금으로 구입한 작품에 적용될 상황에 놓였다.
최근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하기 위한 용역을 받아 연구·진행한 결과로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을 내놨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꽤나 괴상하다. 작가가 대학·대학원을 졸업했는지, 전공 유무에 따라 통상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상 경력, 언론보도 내용 등도 모두 점수로 매겨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계산법이라면 미술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반 고흐의 작품 한 점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현실은 설명하기 어렵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박수근이나 공식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브 클라인, 장 뒤뷔페, 앙리 루소와 같은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설사 시장에 선보인 적 없는 작가의 작품에 한정해도 모양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 넘치는 ‘실기박사’들의 작품은 가격 면에서 상대적 우위에 선다. 박사 학위가 있다 하여 작품 수준도 반드시 박사급일 리는 없는데도 말이다.
협회의 미술품값 산출 근거에는 개인전 개최 횟수를 포함한 초대전, 대관전 유무 등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허점이 많다.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1년에 10번이든 100번이든 개최할 수 있는 게 개인전이고, 초대전이란 이름으로 대관전을 여는 작가도 드물지 않다. 상도 상 나름이며, 언론보도 내용 또한 비중이 제각각일 수 있다.
사실상 작품 가격 산정에 있어 가장 유의미하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미술사적 선구성 및 미학적 가치, 사회적 역학성을 포함한 ‘작품성’이다. 박수근, 마르셀 뒤샹, 피카소 등의 작품 가격이 상당한 것도 미술사에 남긴 기념비적 작품에 기인하지, 학력 및 경력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매자의 취향과 소장 욕망이 즉시 작동하는 미술시장에선 작품성 자체도 절대적 척도가 되진 않는다. 특히 전문가들이 혹평하는 작품이라도 ‘지불의사’가 강하면 가격은 얼마든지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잘 팔리는 게 곧 우수한 작품성을 뜻하진 않는 이유다.
그동안 미술품 가격은 작가에 의해 제시되고 유통채널과의 조율을 거쳐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연스럽게 운영되어 왔다. 반면 작가 제시 가격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미술품 가격 결정 모형’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졌다. 난해한 미술품 가격에 대한 해답을 이끌어내려 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가격 산정 근거로 제시한 학력, 경력, 작품 크기 등의 정량화 요소들은 설득력이 약하다. 무엇보다 이런 엉성한 잣대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소장품 가격을 재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시간을 갖고 더 연구할 일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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