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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오늘하루

가을에 기대어

전깃줄에 앉은 채 가을하늘을 품고 있는 잠자리들. 2019. 충남 천안시 북면 운용이리. ⓒ윤지영


가을이 아주 깊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이내 가슴에 들어와서 눌어붙으니 뻥 트인 가슴에 파란 물이 줄줄줄 흘러넘친다. 


품 넓은 가을하늘이 성큼 내 안에 들어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두 눈을 감고는 모처럼의 평온함에 몸을 기댔다. 버거운 세상살이에 마침 지쳐 있던 참이었다. 


허겁지겁 달려온 시간의 궤적이 잠깐 눈에 밟힌다. 목표를 두었으니 이루려고 매달린 시간이 안쓰럽게 쌓여 있었다. 제대로 성과를 낸 것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기만 했던 날들이다. 더 할 노릇도 안되니까 그만 포기하자는 체념이 한숨으로 토해지는 요즘이었다. 


감은 눈에 질끈 힘을 주고는 다시 눈을 떠 하늘을 바라본다. 짙게 푸른 가을하늘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듯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내 맘을 읽은 때문일까. 옆에 있던 아내가 손가락으로 하늘 한편을 가리켰다. 때마침 전깃줄에 앉아 쉬고 있는 몇 마리의 잠자리들이 쑤욱 눈에 들어왔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에 살살 흔들거릴 뿐 잠자리는 별다른 요동 없이 가만히 쉬고 있었다. 그래. 너희도 힘이 들면 잠시 날갯짓을 멈출 때가 있어야지. 곧 다시 날아갈 수 있을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웃음이 절로 솟는다. 


각자 어딘가에 딛거나 기대어 앉은 가을 오후. 온몸에 흐르는 평화로운 기운에 용기를 얻어 오늘 이후의 삶을 헤아려 본다. 따사로운 햇살까지 더해진 가을하늘이 선물처럼 스며들었다. 참으로 깊은 가을이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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